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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트 Apr 03. 2024

혼자 거울앞에 웅크려 앉아있던 소녀에게 한 수 배우다

혼자 거울 앞에 앉아있던 소녀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헬스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놓인 사거리 밑 지하도. 지하도를 건널 즈음 중간 길목에는 좌우로 넓게 펼쳐진 와이드형 거울과 함께 청소년들이 마음껏 춤을 출 수 있는 '무대(?)'가 마련돼 있다. 항상 초등학생, 갓 중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앳된 어린 아이들이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아이돌들의 춤을 따라 추곤 한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딱 1명의 소녀가 무얼 하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 뭘까? 대체 뭘까? 흐느끼는 걸까? 아니면 무슨 고민에 빠진 걸까?


유투브에 빠진 소녀, 그녀도 어김없이...

춤 영상을 보고 있다. 자세히 보지 못해 누구의 것을 보는 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수업시간보다 집중한 채 춤 영상에 나오는 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소녀의 무서운 집중력이란. 학교에서는 쉽게 찾아보기 힘든 모습이다. 나를 포함해 주변에 지나가는 그 어떤 사람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다. 사실 그 넓은 무대에 혼자 앉아, 특히 지하철역과 연결돼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그곳이라면, 그렇게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행동에 집중하기란 여간 쉬운 게 아니다. '아랑곳하지 않는다', '무섭게 몰입한다'. 소녀는 아이돌의 춤이 그토록 좋아 보였다.


나도 어릴 땐, 그런 게 있었는데...

나도 있었다. 뭔가 하나에 무섭게 몰입하는 대상이 존재했다. 그게 pc게임이거나 운동이거나, 뭔가 생산적이지 않아 보이는 것들로, '논다'라는 2단어로 치환되어 언제든 내려 놓고 공부로 전환했어야만 했던 나의 관심사들. 평소 같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들' 이라고 혀를 차며 지나갔을 텐데, 오늘따라 쉽게 그 소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도 저럴 때가 있었는데...' 하면서, 외부와 남보다 나 자신에게 집중했던 과거의 시간을 회상하거나 지금을 자책하는 나를 반추한다.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먹고 살 수 없다지만...

이 말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을 온전히 인정해 버리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나의 강점과 역량, 직업으로 연결되지 않고, 온전히 좋아하는 '취미'의 수준에 머물고 만다. '그건 나중에, 너 커서 취미로 해. 지금은 학생이니까 공부할 때야' 라는 진부하고 당연해 보이는 논리로 설득당해 버리는 바로 그 순간. 문제는 그 좋은 대학을 보내준다는 학생 때의 공부가, 학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학생 때 몰아서 하는 공부란 남보다 좋은 대학 타이틀을 거머쥐기 위한 나의 청소년기의 희생에 불과하다. 공부는 평생해야 한다. 더 슬픈 건, 먹고 살기 위한 공부를, 그것도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평생' 해야 한다. 일반 사람들이, 직장인들이 하는 공부라는 게 그런 거다. 아닌 사람들도 분명 있겠지만...


나도 거울 앞에 앉고 싶다. 그 소녀처럼...

꼭 길거리에, 많은 사람들이 쳐다보는 그런 곳이 아니어도 좋다. 그냥 나 혼자, 스스로를 바라보는 거울 앞에 혼자 앉아도 좋다. 누가 보지 않아도 좋다. 그냥 나도 정말 좋아하는 것에 깊게, 몰입해 보고 싶다. 돈 걱정, 시간 걱정, 미래 걱정, 사회 걱정 하지 말고, 눈 앞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내 오감의 레이더에 들어온 내 관심사를 온전히 마주해 보고 싶다. 휴가를 떠나서도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 회사 이메일을 시도 때도 없이 관성적으로 켜며 새 메일함에 메일이 왔는지 체크하는 무서운 직장인의 병적인 습관을 보면서. 


소녀에게 한 수 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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