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명소라고 생각했는데, 단체관광 한국인들을 만났다.
2020년 1-2월 나는
프라하 뿐 아니라
10여 개의 다른 체코 도시들도 방문했는데,
구시가 광장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설명을 보고,
텔치(Telč)라는 도시에 가보기로 결심했다.
아래 지도에서 내가 핀으로 표시한
체코 남동쪽 도시가 텔치(Telč)다.
체코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로 나뉘어 있는데,
서로 다른 시대 체코 옛 왕국의 이름이라,
우리로 치면
크게 '고려'지방과 '신라'지방,
뭐 이런 식으로 나뉘어있는 셈이다.
(그 밖의 체코의 약식 역사)
텔치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접경지대에 있는
모라비아 지역 도시이고,
남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도 가까워서
오랫동안 이 세 지역의 교류 중심지였다고 하는데,
그 활발한 상업적 교류를 통해 쌓은 도시의 부요로,
"유네스코가 인정한"
구시가 광장을 아름답게 유지할 수 있었다.
Telč(텔치)라는 이름은
예전 문헌에 Teleč(텔레치)라고 기록되었다는데,
이건 옛 체코어에서
“어린 수소”를 의미하는 사람 이름 Telec(텔레츠)의
소유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 체코어를 비롯한 대부분의 슬라브어에서
어린 수소 또는 송아지는 tele(텔레),
러시아어에서는 아직도 телец(텔레츠)이며,
체코 남쪽의 오스트리아 남쪽의 슬라브 국가
슬로베니아에도
(참고로 슬로바키아는 체코 동쪽에 있다)
비슷한 발음의 지명 Teleče(텔레체)가 존재한다.
즉, 체코 텔치는
"어린 수소 같은 사람 텔레츠의 땅"이란 의미인데,
나도 이 이름을 듣고 "송아지"를 연상한 적 있으니,
다른 슬라브어 화자들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이든 예전이든
텔치는 그 어원의 소와는 별 관련이 없다.
이 지역 전설에 따르면
텔치는 11세기 말
실제 역사에 존재하는
모라비아 공후가 세운 도시라고들 하는데,
역사에 처음 기록된 것은 14세기이며,
당시 텔치를 소유했던
"작은 성 출신"이라는 의미의 영주 가문
즈 흐라드체(z Hradce) 가문에 대한 언급도
이때 등장한다.
이 복잡한 성(姓)의 귀족 가문 영주들이
성(城)도 짓고,
그와 함께 옆에 광장도 형성되면서
14세기부터 텔치는 본격적으로 발전되어 가는데,
14세기 몇 번의 대화재와
뒤이은 체코 신교 후스교도(Hussites)의 침입으로
목조 건축인 광장의 건물들과 성이
소실되고 파괴되었다.
그 후 소금 판매, 양조장, 기타 물물거래의 장소로
텔치라는 도시와 사람들은 부를 쌓아갔지만,
파괴된 구시가는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16세기 중반
이 지역 영주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Zachariáš z Hradce)
또는
흐라데츠의 자하리아슈(Zachariáš of Hradec)가
고딕 양식의 자기 가문의 성을 재건하면서
당시 유행하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성을 덧붙여 증축하고,
이탈리아 건축가들을 초빙하여
광장에도
아케이드로 서로 연결된
예쁜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을 건축했다.
그리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중세식 폐쇄 공간인
성과 구시가 광장 근처에
해자(moat)가 되어 줄
연못들도 만들었다.
그밖에 다른 개혁들을 시도한 그에게서부터
현재의 텔치가 시작되었고,
그래서 텔치 구시가 광장 이름도
Náměstí Zachariáše z Hradce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 광장)이다.
17세기 초반 종교전쟁인
백산 전투와 30년 전쟁에서
체코 신교가 패배한 이후
체코는 전반적으로 게르만화되고,
반종교개혁 분위기 속에 가톨릭으로 회귀했는데,
텔치도 예외는 아니어서,
광장 끝에 예수회 성당과 학교가 이때 세워졌고,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
Liechtenstein-Kastelkorn(리흐텐슈테인-카슈텔코온)의 통치 하에 들어간다.
이때 이 지역의 부유한 상인들은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광장의 자기 소유 건물의 전면부(facade)를
아름답게 유지, 보수, 리모델링하는 한편,
공동의 공간인 광장 중앙에도
분수, 기둥, 석상 등을 세우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텔치의 중심부는
1992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을 가진 마을로
흔히 평가된다.
그런 텔치의 광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해서
2020년 2월 나도 한 번 가 봤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텔치까지
지도 상으론 멀지 않은데
대중교통편이 매우 안 좋았었다.
7월인 지금은 검색해보니 그래도 꽤 있는데,
2020년 2월 초엔 비수기여서 그런지
편도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프라하와 텔치를 오가는 시외버스는
다들 프라하에서 너무 늦게 출발하고,
텔치에서 너무 일찍 출발해서
버스로 당일치기가 불가능해 보였다.
그래서 기차에 좀 더 오래 앉아 있는 걸 선택했다.
프라하-텔치 기차는
왕복 348코루나(약 19,000원)이고,
편도 3시간 30분이 걸리는데,
"하블리체크의 개울"이라는 의미의
Havlíčkův Brod(하블리츠쿠프 브로트)에서
기차를 한번 갈아타야 했다.
그렇게 2020년 2월 초 어느 토요일 나는
프라하 중앙역에서 새벽 6시 4분 출발하는
"프라하 - 하블리츠쿠프 브로트" 기차를 탔다.
프라하에서 하블리츠쿠프 브로트 가는 기차에서
안내방송이 안 나오길래,
그리고 딱히 달리 할 일도 없길래
기차역에 설 때마다 역 이름을 적었다.
Praha-Libeň
Kolín
Kutná Hora
Čáslav
Golčův Jeníkov
Světlá nad Sázavou
Havlíčkův Brod
그렇게 2시간 만에
하블리츠쿠프 브로트는 처음 들어보는 도시라
이 여행 중간에 시간 내서 좀 둘러볼까 했는데,
엄청나게 큰 기차역엔 화물 열차들이 가득하고,
풍경도 그냥 한국의 수도권 도시와 비슷한
공업 도시인 것 같아서,
하블리츠쿠프 브로트는 포기하고
그냥 텔치만 구경하고 오기로 했다.
기차는 환승역인 하블리츠쿠프 브로트에
7시 58분 도착 예정이었고,
다음 기차 환승할 여유 시간이 5분이었는데,
2분 늦은 8시에 도착했고,
8시 3분 출발하는 연계 기차가 바로 옆에 서 있다.
그리고 하블리츠쿠프 브로트- 텔치 기차는
8시 3분 출발인데
8시 2분에 벌써 출발했다.
결국 환승 시간이 단 2분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어리바리 환승한 기차는
지하철이나 교외 통근 열차처럼 생겼는데,
휴대전화 충전할 전기 콘센트는 없지만,
와이파이도 잡히는 현대적 기차였다.
그리고 이제는 안내방송도 나오는데,
그래도 나는 따로 할 일이 없으니,
역 지날 때마다 역 이름을 적어본다.
이번에는 자주 정차해서 역이 더 많은데,
역이 대부분 작고 아담한 시골역이고,
따로 벨을 눌러 요청해야 서는
Zastávka na znamen(요청 정거장)도 많다.
Jihlava
Jihlava město
Kostelec u Jihlavy
Kostelec u Jihlavy masna (요청 정거장)
Salavice (요청 정거장)
Jezdovice (요청 정거장)
Třešť
Třešť město
Hodice (요청 정거장)
Sedlejov
Myslibor (요청 정거장)
Telč
그렇게 시골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으로 천천히
1시간 30분을 가서
예정보다 1분 일찍 9시 30분에
텔치에 도착했다.
체코 지도 사이트에서 캡처한 아래 지도에서
2라고 표시한 부분에 기차역이 있고,
3이라고 표시한 빨강 테두리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된
텔치 구시가이고,
그 주변에 4, 5, 7로 표시한 3개의 큰 연못이 있다.
여기가 텔치의 가장 중요한 관광지다.
참고로 아래 지도에 내가 적어 놓은 번호는
이 포스트의 소제목 번호이다.
기차역에서 마을 중심까지 거리가 좀 돼서
10-15분 정도 걸어야 한다.
기차역에서 마을 중심까지 가는 길은
그냥 평범한 유럽 시골 마을 같다.
그렇게 걸어가던 중간에
역시나 매우 시골스런 느낌의 삼거리에서
심상치 않은 그림이 새겨진 건물을 발견했다.
나중에 검색해보니,
19세기 후반 시작된 체코 생활체조 센터
이 텔치 건물은 1922-1925년 건설된
100년 된 아르누보 건축이란다.
벽면 그림 주위를 둘러 쓰인 체코어는 이런 뜻이다.
Buďte svoji a věřte jen sobě. Jen láskou a svorností s vůlí železnou budete nepřemožitelní. Matky píseň buď vám pokladem. V síle práce a jasu ducha nedám zahynouti vám, ni budoucím.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고, 자신만을 믿으십시오. 강철 같은 의지, 사랑, 조화만이 여러분을 무적으로 만듭니다. 어머니의 노래는 여러분의 보물이 될 겁니다. 노동의 힘과 맑은 정신이 있다면 여러분도 그리고 미래도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텔치를 둘러보겠다.
텔치(Telč)의 구시가는
"오래된 도시(Old Town)"라는 의미의
Staré Město(스타레 메스토)가 아니라,
"내부 도시(Inner Town)"라는 의미의
Vnitřní Město(브니트르즈니 메스토)라고 부른다.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중심가를
"내부 도시"라는 의미의
Innere Stadt(이너레 슈타트)라고 부르니까,
17세기 이후 오랫동안
오스트리아의 영향을 받으면서
이렇게 표현하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텔치 구시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Staré Město(스타레 메스토)라는 마을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 마을 이름과 혼동되지 않게 할려고
빈(Wien)식 "내부 도시"라는 표현을 쓰나 보다.
하지만 영어로는
텔치 구시가를 보통 Old Town이라고 하니,
이 포스트에서도 "구시가"라 표현하겠다.
나는 텔치를 여행 비수기인 한겨울에 방문한 데다가
마침 또 간 날이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비수기에 아예 문 닫은 명소가 많았고,
여행안내센터는 토요일 휴무라서,
텔치 지도나 브로셔도 못 구했다.
그래서 그냥 스마트폰에 구글 지도 켜고,
텔치 홈페이지 보면서 둘러봤다.
이 포스트에서는 Mapy.cz에서 스캔한
아래 지도에 네가 써넣은 번호 순서대로
시계 방향으로 둘러보겠다.
텔치 성은
14세기 즈 흐라드체(z Hradce) 가문에서
고딕 양식으로 처음 만들었고,
대화재와 후스교도들의 침입으로 손상된 후
16세기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Zachariáš z Hradce)가
기존의 성을 재건하면서,
자신이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마음에 들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을 가미했다.
텔치 성의
개방시간은 5월-8월 10:00-16:00.
입장료는 일반 150코루나(약 8천원),
할인 120코루나, 60 코루나.
(텔치 성 방문 관련 링크)
텔치 성은
구시가 서북쪽 연못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여기는 연못가에서 텔치 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성과 성 밖을 연결하는 통로는
아래 문(Dolní brána)이라고 불리는데,
예전에는 이 문 밖에 해자가 있었고,
통로에는 접어들어 올렸다가 펼쳐 내리는
도개교가 달려 있었다고 한다.
현재는 위 사진처럼
해자도 도개교도 없이 그냥 육로로 연결된다.
텔치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재건한 연도로 보이는
1579라는 숫자가
아래 문 위 빨간 지붕 밑에 쓰여 있다.
그 아래 문으로 들어가면 커다란 광장이 나온다.
그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 광장
(Náměstí Zachariáše z Hradce)에서
텔치 성을 바라보면 이런 모습이다.
이건 아래 문을 통해 광장으로 걸어 들어와
서쪽을 바라본 풍경.
이건 동쪽을 바라본 풍경이다.
(동영상 1: 텔치 구시가 광장 1)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 광장은
서북쪽과 동남쪽으로 길게 뻗은
불균형한 네모 모양인데,
폭이 10m 정도 되는 2-3층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그 광장 위에 줄 지어 서 있고,
그 건물들은 긴 아케이드로 연결되어 있다.
즉 비가 와도 우산 없이
여러 건물들 사이를 이동할 수 있다는 얘기다.
건물 1층에는 모두 르네상스식 열린 공간
로지아(loggia)가 있는데,
그 로지아 모양,
로지아의 아치 개수,
건물과 지붕의 모양,
장식,
색깔,
크기가 다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고,
그런데 그것들이 너무 조화로워서,
첫눈에
"아, 예쁘다"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알기로
1층의 로지아, 아케이드,
그리고 모양을 낸 정면이 납작한 지붕이
바로 르네상스 양식의 중요한 특징인데,
나중에 세월이 흘러 건축 양식 유행이 바뀔 땐
바로크 양식으로 전면을 바꾼 건물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광장의 건축들이
이 르네상스 양식의 기본 틀을 유지하고 있고,
그런 건축적 의미 때문에
텔치 구시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 되었다.
이렇게 역사적, 건축적 의미가 있으면서
예쁘기까지 한 텔치 구시가 건물들 중에서도,
광장 북쪽이 제일 길게 연결되어 있고,
가장 다양하고,
그래서 가장 예쁘고,
알려진 건축적, 역사적 가치나 사연도 풍부하다.
그 광장 북쪽 풍경은 이렇다.
그 건물들을 왼쪽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면,
아래 사진 가장 왼쪽의 갈색 건물은
텔치 성의 일부로서
16세기부터 수세기 동안 곡물저장소였는데,
현재는 시 도서관과 Basic Art School이다.
여기 지하에
중세식 지하 창고와 통로로 연결된
텔치 구시가의 지하세계 탐험을 시작하는
입구가 있다고 한다.
그다음 네 건물에 대한 설명은 못 찾았다.
그다음으로 넘어가서
아래 사진에서 왼쪽 첫 번째 노란 건물은
대장간이었고,
그것과 관련된 장식이 그 건물 내부에 있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최근까지는 저축은행이었단다.
왼쪽 두 번째 흑백 건물은
16세기 제빵사 출신으로 나중에 시장이 된
Michal(미할)이라는 인물이 구입해서
그리스도교 성경 구약의 장면을 그린 그림을
스그라피토(sgraffito)로 새겨 넣게 했다고 한다.
그때 봤을 때 그림이 성경 이야기인지 몰랐고,
지금 봐도 모르겠다.
아무튼 특이하고 예쁘다.
현재는 Galerie U Michala(미할 갤러리)라는
미술관이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 연분홍 건물
지붕 장식 가운데에는 성모가,
그 둘레로는 남자들과 꽃병이
대칭을 이루며 장식되어 있는데,
이건 바로크식 디테일이라고 한다.
아래 사진 왼쪽의 두 건물은
전형적인 르네상스 건축이다.
벽면의 작은 직사각형 스그라피토,
지붕의 박공(gable)과 흉벽(battlement)이
그 중요한 특징이라고 하는데,
2020년 2월 초에는 공사 중인지,
그 중요한 박공과 흉벽은 볼 수 없었다.
이 중 왼쪽 건물은 19세기
당과, 진저브레드 제과제빵사 출신의
텔치 지역 민족주의자 샤셰치(Filip Šašecí)가
살았던 건물이고,
(즉 과자와 케이크를 만드는 집이었던 거다.)
오른쪽 건물에는
텔치 박물관 수집의 선구자였던
18세기 의사 출신 빌렉(Jan Pavel Bílek)이
살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여기는 당시 개인병원이었을 거다.)
아래 사진 왼쪽에서 첫 번째 하늘색 건물은
18세기 초 광장의 역병 기둥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호도바(Zuzana Hodová)부인이 살던 곳이다.
왼쪽에서 두 번째 눈에 띄는 빨간색 건물은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서점이다.
아래 사진에서 왼쪽에서 첫 번째 분홍색 건물은
소용돌이 모양의 단일 박공 지붕과
사제복 같은 모양의 다락 창문이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전형이라고 한다.
왼쪽에서 두 번째
높이가 좀 더 높은 노란색 건물은
원래 이 지역 양조장이었는데,
19세기에 여학교로 바뀌면서,
한 층을 더 올려서
지금과 같은 모양을 가지게 됐단다.
19C말 20C초에는 출판사였다는데,
현재는 옷가게다.
그렇게 북쪽 건물들을 쭉 돌아보고 나서
빨간색 서점 건물쯤에서 왼쪽을 바라보면
이런 풍경이다.
이제 광장 동쪽.
아래 사진 가장 오른쪽 노랑 건물은
바로크 장식의 르네상스 건축인데,
체코 시인 브르제지나(Otokar Březina)가
19세기 이곳에 살았다고 한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그 시인의 집 옆 좁은 통로 건너편 건물 중에서
주황색, 살구색이 섞여 있는
세모 지붕의 큰 건물은
19세기 미혼의 젊은 지역 관료들을 위한
식당으로 사용되었는데,
매년 부활절 전 성 목요일에는
가난한 자들에게 죽을 나눠주던 곳이었다고 한다.
현재는 피자 가게다.
그 옆의 흑백 건물은
텔치 하우스(Telč House, Telčský dům)라는
박물관이다.
체코인을 위한 텔치 역사와 전설 박물관인 것 같다.
그 오른쪽에 보이는 첨탑은 성령 교회(Kostel sv. Ducha, Church of the Holy Spirit)다.
성령 교회는 텔치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으로
13세기 후기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다.
(유럽 가톨릭 건축에서 가장 오래된 스타일이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이 건물은 가톨릭 성당으로
수백 년간 텔치의 역사와 함께 했고
교회의 첨탑은 오랫동안 도시 방어의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19세기엔 극장이라는 세속적 용도로 사용되고,
20세기 초부터 현재까지는
개신교 종파인 체코 형제단 복음 교회(Evangelical Church of Czech Brethren)로 사용되고 있다.
교회 첨탑의 전망대에 오르면
텔치 구시가 전체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입장 시간은 비수기, 성수기에 따라 다르다.
광장 남쪽에도 역시나
아기자기하고 알록달록한
르네상스식 건물이 줄지어 있는데,
광장 남쪽에는 중간에 길이 하나 나 있고,
그 길의 동쪽은
특별한 역사적 설명을 찾을 수 없는
서로 비슷하게 생긴 건축들 안에
카페, 레스토랑 같은 상업적 시설이 자리 잡고 있고,
그 길의 서쪽에는
서로 많이 다르게 생긴 다양한 건축들 안에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 있다.
아래 사진은 좀 더 상업적인 광장 남동쪽.
이건 광장 남쪽의 중간 통로인데,
그 통로를 통해 연못으로 갈 수 있다.
그리고 여기는 건축적으로 보다 다채로운
광장 남서쪽이다.
광장 남서쪽 부분 가장 왼쪽의,
초록색 바탕에 스그라피토가 그려진 건물은
모서리의 돌출된 고딕 창문이 특징적이다.
스그라피토는 성경 속 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데,
수태고지와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보인다.
광장 남서쪽 중간쯤에 있는,
매우 현대적으로 보이는 커다란 벽돌 건물은
시청(Radnice, City Hall)이다.
매우 현대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고딕 건축이고,
현재의 모습을 갖춘 건 16세기라고 한다.
원래 이 건물 1층에 여행안내소가 있는데,
내가 간 날은 토요일이라 닫혀 있었다.
위 사진에서 시청 왼쪽에 있는
폭 좁은 연두-하늘색 건물은
쉐니글 저택(Dům U Šeniglů)으로,
여러 종류의 수공업자들이 살던 집이었고,
현재의 텔치의 기반을 닦은
16세기 이탈리아 건축가가 살기도 했다고 한다.
텔치 시청에서 오른쪽 2번째,
검은 독수리 (U Černého Orla) 호텔 바로 왼쪽,
아래 사진 가운데 황토색 건물의
두 번째, 세 번째 아치 연결 기둥에는
푸줏간 칼이 그려져 있는데,
예전에 여기에 푸줏간이 있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 옆의 세 건물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못 찾았는데,
아마 이 건물들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사연을 가지고 있을 거다.
광장 중앙에는
2개의 분수, 펌프, 역병 기둥이 서 있는데,
내가 갔을 때는 겨울이라
분수는 뚜껑으로 덮여 있었다.
광장 중앙 쯤에 자리잡은
아래 분수(Lower fountain)는
16세기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 시절에
목조 분수로 처음 만들어진 것이
17세기 초 석조 분수로 바뀌었고,
분수 위에는 텔치의 수호성인 중 하나인
성 마르가리타(St. Margaret) 조각이 서 있는데,
17세기 후반에 덧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광장 동쪽의 위 분수(Upper Fountain)도
처음에는 나무로 만들어졌다가,
19세기 초에 지금 모습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분수 위 조각은 그리스 신화가 모티브여서
어린 디오니소스를 손에 든 실레노스라고 한다.
나는 아래 분수는 마리아,
위 분수는 아기 예수와 요셉인 줄 알았다.
두 분수 사이
마리아 기둥(Marian Column)은
18세기 초 건설된 역병 기둥이고,
아래쪽에는 가톨릭 성인들과 천사들,
꼭대기에는 성모 마리아가 서 있다.
16세기 자하리아슈 즈 흐라드체가
연못의 물에 파이프 라인을 설치한 이후
텔치 주민들은 수 세기 동안
그 두 개의 분수에서 식수를 해결했는데,
19세기 후반 광장 중앙에 펌프가 생기면서
20세기 중반까지 이 펌프는
텔치 주민의 중요한 식수원이자
사교의 장소였다고 한다.
지금은 각자 집에 있는 수도를 사용하겠지만,
아직도 이 펌프는 잘 작동되는 것 같고,
자세히 보면 신경 써서 만든 장식 디테일이 보인다.
(동영상2: 텔치 구시가 광장 2)
광장 서쪽에는 종교적 건축들이 자리 잡고 있다.
아래 사진에서 성당 왼쪽에 있는 건축은
17세기 후반에 예수회 라틴문법학교였고,
18세기부터는 일반 학교가 되었다.
지금은 연구소 건물이다.
그 옆의 성당은 17세기 반종교개혁 시절
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된
예수 이름 성당(Name of Jesus Church, Kostel Jména Ježíš)이다.
성당 옆 오른쪽 건축은
예수회 학교 기숙사였다가
18세기부터는 군대 숙소로 사용되기도 했고,
현재는 국가 기념비 연구소(Národní památkový ústav) 건물이다.
그 길 끝에 보이는 첨탑도
또 다른 가톨릭 성당이다.
성 야고보 성당(kostel sv. Jakuba Staršího, St. James Church)은
15세기 후반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첨탑 위에서 텔치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다.
입장 시간은 시즌마다 다르다.
그 골목에서 꺾어지면
(구) 예수회 학교 기숙사
(현) 연구소 건물로 들어가는 출입구가 보인다.
그 안에 카페가 있길래 들어가 봤다.
커피랑 케이크도 괜찮았지만,
조용히 앉아 책 읽기 좋은 분위기였고
통유리로 안뜰이 다 들여다보이는 공간이
마음에 들었다.
벽에는
이 명패는 1863-1864년 러시아에 봉기를 일으켜, 오스트리아 정부의 결정으로 이 도시에 수감된 폴란드인들에게 베푼 텔치 주민들의 호의에 대한 증거이다.
라고 체코어와 폴란드어로 쓰여 있다.
그 밖의 구시가 뒷길도 아기자기하다.
사실 내가 이 포스트에 적은
구시가 광장 건물의 사연들은
나중에 인터넷 검색하면서 알게 된 거고,
여행 당시에는
공휴일이라 현지에서 자료를 얻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구시가가 소문대로 예쁘긴 예쁜데
그 건물들의 사연도 모르고,
누가 왜 이런 예쁜 건물들을 만들었는지도 모르니,
그 화려한 아름다움 속에
뭔가 좀 채워지지 않은 공허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내가 텔치를 갔을 때는 관광 비수기고 토요일이라
현지인들도 관광객들도 많지 않았고,
그래서 뭔가 내가 남들 잘 모르는,
숨겨진 보석을 발견한 개척자가 된 것 같은
뿌듯한 자부심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갑자기 광장에
원어민이 아닌 영어 억양의 백인 남자와
한국어 억양의 영어를 쓰는 동양 여자가 나타났다.
자동차를 광장 안에 주차시키고
요란스럽게 사진을 몇 컷 찍더니,
몇 분 후 그들은 광장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또 얼마 후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 스무 명 정도가
한국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광장에 등장했다.
한 10분 정도 그렇게 머물다가
사진을 몇 컷 찍고
그들도 광장에서 곧 사라졌는데,
이런 오지(?)까지 단체관광을 오는
한국인들의 관광력(?)에 깜짝 놀람과 동시에
뭔가 소중하게 간직한 비밀을 들킨 것 같아
좀 아쉽고 힘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유네스코 때문에 텔치에 온 내가
이제 목적 달성을 다 하긴 했지만,
아직 기차 시간까지 시간도 많이 남아서
이제 유네스코 바깥을 구경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광장 동쪽의 위 문(Horní brána)을 통해
텔치 구시가 밖으로 나갔다.
텔치에는 연못이 큰 게 세 개가 있는데,
걷기에도 좋은 길이고,
걸으면서 보는 풍경도 예쁘다.
남은 시간이 많은 나는
그 연못 세 개를 천천히 다 돌았다.
우선 울리츠키 연못(Ulický rybník)은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텔치 구시가 서쪽에 있는데,
연못가 어디를 걷든 텔치 구시가가 보여서
세 연못 중에서
문화적인 구경거리가 가장 많다.
산책로에 심은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앙상한 나무들이 있어서
돌에 적힌 글자를 읽어 봤더니,
각각 1989년 공산정권 붕괴시킨 벨벳 혁명,
초대 체코 대통령 하벨의 부인 올가 하벨로바,
공화국(아마도 체코 공화국)
기념 나무다.
그 밖의 다른 길은 이렇게 생겼다.
그 연못이 끝나면 텔치 성이 보이고,
그 옆으로 공원이 펼쳐진다.
공원 중간에 있는
19세기 신고전주의 양식의
온실(Zámecký skleník)은
원래 열대 식물을 전시하는 식물원인 것 같은데,
내가 갔을 때는 전시를 안 하고 있었고,
2022년 7월 현재도 찾아보니 전시를 안 하고 있다.
(동영상 3: 텔치 성 근처 공원)
이 온실 뒤로 나가면
이제 전시공간인 관광지는 끝나고
현지인의 진짜 삶이 담긴 생활공간이 시작되는데,
그냥 평범한 시골집들 사이에서
18세기 초에 건설된
작고 소박한 시골 성당인
성모 마리아 예배당(Chapel of the Name of the Virgin Mary),
텔치 맥주 브루어리도 만날 수 있다.
텔치 브루어리는 아담했는데,
아래 사진 오른쪽 아래 보이듯
커다란 맥주통을 전시하는 듯한 유리창이 있고,
건물 안과 밖에 맥주를 마시는 공간이 있는 것 보니,
여기서 만든 맥주를 생맥주로 팔기도 하나보다.
슈테프니츠키 연못(Štěpnický rybník)은
아래 지도에서 보듯
구시가 광장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여긴 좀 더 자연 풍경이 많다.
(동영상 4: 텔치 슈테프니츠키 연못)
세 번째 연못 쪽으로 가다가
중간에 동쪽 기차길을 넘어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을 발견했다.
거기에 텔치 관광 안내문이 붙어 있는데,
산속에 자리 잡은
로슈테인 성(Hrad Roštejn, Roštejn Castle)
사진이 너무 근사하다.
그래서 검색해보니,
로슈테인 성은 즈 흐라드체 가문의
사냥을 위한 별장으로 지어진 성으로,
텔치로부터 1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서
자동차로 25분 걸리고,
버스나 기차도 자주 있지 않고,
걸어가기는 너무 먼 곳이었다.
그래서 로슈테인 성은 포기하고,
그냥 그 가까운 곳에 뭐가 있나 봤더니,
철도 역사 전시관(Expozice historie železniční dopravy, Exhibition of the history of rail transport)이라는 목조 건물이 낮은 언덕 위에 있다.
나는 딱히 철도 역사에 관심이 없긴 했지만,
전시관을 6-9월만 열기 때문에
내가 갔던 2월에는 닫혀 있었다.
거기서 좀 더 걸어올라 가면 숲이 나오고,
철제 전망대(Oslednice, Observation tower)가 보인다.
이것도 계절에 따라 달리 운영되어서,
겨울에는 미리 신청해야만 올라가 볼 수 있다는데,
30m가 넘는 이 전망대를
아래에서 올려다보기만 해도 너무 아찔해서,
난 다른 계절에도 안 올라갔을 것 같다.
전망대 너머로 뭐가 있나 내다보니
낮은 산과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분명 언덕을 올라왔는데
그 옆에 평야가 있다는 게
어딘지 모르게 좀 비현실적인 듯한데,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매우 현실적이면서 또 목가적이다.
(동영상 5: 텔치 동쪽 평야)
그 평야로 나가기는 뭐해서
가던 길을 되돌아 나와
다시 연못으로 갔다.
스타로메스츠키 연못(Staroměstský rybník)은
아래 지도에서 보듯이,
텔치 구시가 남쪽에 자리 잡고 있고,
세 연못 중에서 가장 크고,
풍경도 다양해서,
이 연못을 따라 걸으면
자연과 인공적 아름다움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런 그림이다.
아래 사진의 연못 건너편 성당은 성모 성당이다.
연못가를 따라 걷다 보면 곧 실물을 영접한다.
이런 산책로를 걷는 거다.
여름에 나뭇잎이 무성할 때라면 더 좋았겠지만,
나뭇가지 앙상한 겨울에도 나쁘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면 멀리 텔치 구시가도 보인다.
(동영상 6: 텔치 스타로메스츠키 연못)
그렇게 연못을 반 정도 돌아 남쪽에 다다르면
이제 자연이 끝나고
인공적인 것들이 가까이 보인다.
그렇게 마을이 시작되는 입구의
증기 방앗간(Parní mlýn, Steam mill)은
최소 16세기부터 이곳에 존재했고,
19세기는 옷 공장,
20세기에는 다시 방앗간이 되었다가,
그다음에는 창고로 사용되고,
지금은 문화유적이 되었다고 한다.
거기에서 좀 더 걷다 보면,
연못 건너편에서 봤던
성모 성당(Kostel Matky Boží, Church of Mother of God)이
눈앞에 나타난다.
성모 성당은
현지인들이
텔치 역사의 시작이라고 보는 그 전설에서
11세기 체코 공후가 승리를 기념해 세운 성당이다.
하지만 역사에 따르면
조금 더 늦은
14세기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후
17세기 바로크 양식으로 리모델링되었고,
우뚝 솟은 교회 첨탑은 고딕 양식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성당의 종은 16세기 초반에 만들어져
텔치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종이라고 한다.
성모 성당에서 구시가로 가는 작은 오솔길엔
석상들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구시가의 첨탑이 가까이 보인다.
그렇게 연못을 돌고 오니 5시 반이 지났고,
겨울이라 이제 어둑어둑해졌다.
관광비수기에 주말이라
상점도 일찍 문을 닫고
다른 체코 도시와 마찬가지로
텔치도 가로등이 밝지 않아서,
야경이라고 할 게 별로 없다.
그렇게 인적이 드문 어둑어둑한 구시가에서
어떤 낯선 남자가 지나가면서 인사했는데
그게 또 괜히 무섭기도 해서,
이제 슬슬 떠나야겠다 마음을 재촉했다.
나는 밤에 예쁜 도시와
낮에 예쁜 도시가 따로 있는 것 같다.
낮에 봤을 때 예쁜 도시는
밤에 보면 그 본연의 아름다움이 가려져서 별로고,
밤에 봤을 때 예쁜 도시는
낮에 보면 그 화려함이 사라져서 별로다.
텔치는 낮에 예쁜 도시다.
더구나 시골 소도시라서
대도시의 화려한 밤조명 같은 건 원래 없다.
해가 지면 텔치 “구경”도 끝나는 거다.
그래서 저녁 운동하거나 산책하는 현지인 틈에서
은은한 가로등이 켜진 연못가를 좀 더 걷다가
기차역으로 걸어갔다.
이번에도 하블리츠쿠프 브로트까지 가서
기차 한번 갈아타고 프라하에 가야 하는데,
올 때 한번 해봤다고
이제는 덜 긴장한다.
텔치 - 하블리츠쿠프 브로트 기차는
6시 36분 출발 예정이었고,
텔치가 종점도 아닌데
열차가 6시 26분에 벌써 텔치 기차역에 도착했다.
텔치가 이 근방 지역에서 꽤 중요한 정거장인 거다.
하블리츠쿠프 브로트에서
프라하 가는 기차로 갈아타는
여유시간이 4분이라 너무 짧지 않나 했는데,
(이건 내가 정한 게 아니고,
프라하-텔치 기차 승차권이 그렇게 정해져 나온다)
텔치-하블리츠쿠프 브로트 기차도
하블리츠쿠프 브로트에 정시 도착하고,
하블리츠쿠프 브로트 - 프라하 기차도
이미 옆 선로에 기다리고 있어서,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프라하로 귀환했다.
사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공인이
그곳이 좋은 여행지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첫째,
"유네스코 문화유산"은
역사적, 문화적(주로 건축학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는
전 세계의 문화적 유산을 공인해주는 것이다.
여행적 가치와는 무관하고,
시각적 아름다움과도 무관하다.
둘째,
"좋은"은 매우 주관적인 평가이다.
누군가에게는 파리가,
누군가에게는 뉴욕이,
누군가에게는 베네치아가,
누군가에게는 아테네가
누군가에게는 하와이가,
누군가에게는 이비사 섬이 좋은 여행지일 것이다.
나는 문화적 여행을 좋아해서
다양한 역사적, 현대적 문화적 유산이 많은
오래된 대도시를 좋아하고,
“유네스코 문화유산" 같은 묘사를 보면,
그 문화적 가치가 무엇인지 매우 궁금해서,
직접 경험으로 확인해보고 싶어진다.
나이가 들면서는
자연이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편안하고 기분 좋게 걸으면서 또는 앉아서
멍하니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그런 곳도 좋아하는데,
그런 자연도 문화와 함께 있는 게 더 좋다.
하지만 "유네스코"의 인증이 반드시
사진발 잘 받는 “포토제닉하고” 예쁜 곳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예쁜 곳은 나름 많이 봐서,
그것만으로는 크게 감동하지도 않는다.
나에게는
“예쁜” 여행지가 “좋은” 여행지는 아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텔치 구시가는
매우 예뻤지만,
그냥 예쁨밖에 안 보여서,
나는 그 문화적 가치를 제대로 느끼지 못해서,
다양한 개성이 단번에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좀 실망스러웠다.
그 유네스코 문화유산 바깥에서
현지인의 실제 생활공간도 둘러보고,
나에겐 호수처럼 느껴졌던
커다란 연못들도 걸어보고,
하늘과 땅과 나무 같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그리고
나중에 구시가 건물들의 사연들도 찾아보고 나서,
나에게 텔치는 “좋은” 여행지가 됐다.
나의 “좋은” 여행지의 기준인
다양함과 개성 그리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발견했고,
편안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느린 기차 밖 시골 풍경 같은
흔한 듯 흔치 않은 체험과 기억들도
텔치 여행에서 담아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