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브런치북의 완성, 그 후기 Brunchbook Epilogue
제8회 브런치북 프로젝트 응모 기간이 공표된 후,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응모 기간을 구글 캘린더에 저장해놓는 것이었다. 2017년, 브런치를 알게 된 후부터 꾸준히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응모해오긴 했지만 기존에 써놓은 글에 ‘브런치북' 키워드를 끼워 넣어 대충대충 지원해 온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책 다운 글’을 써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스마트폰을 사용한 후부터 해야 할 일이 있으면 구글 캘린더에 적어 놓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깜빡하거나 마감을 놓쳐버리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브런치북 프로젝트를 응모할 수 있는 전체 기간(한국 시간으로 11월 1일이지만 시차 때문에 10월 31일까지)을 달력에 표시해 둔 후, 마감 날짜에 맞춰 반드시 하나의 브런치북을 완성해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잡았다.
브런치북을 만들기 전, 일단 먼저 어떤 내용을 이야기할 것에 대한 컨셉부터 잡아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주제를 선정하는 것은 사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잘할 수 있는 이야기, 즉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하면 될 거라고 쉽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캐나다 이민 10년이 되는 이번 해를 맞아, 처음 내가 밴쿠버로 오게 된 이유부터 시작해서 밴쿠버 패션계에 자리잡기까지 고군분투한 내용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연대순으로 나열하는 방식으로 목차를 기획하며 전체적인 틀을 잡아나갔다.
‘나만의 책을 내는 것'은 내가 어렸을 적부터 가지고 있던 큰 꿈 중 하나였기에, 어떻게 하면 책을 출간할 수 있는지 여러 블로그 및 브런치 글들을 읽어 본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책 출간에 있어 중요한 것이 ‘제목과 목차 선정'이라는 글들을 많이 접해 왔기에, 말하고 싶은 주제를 정한 다음 해야 할 일은 제목과 목차 구성을 하는 것이었다. 일단 제목은 ‘밴쿠버 패션 업계, 토종 한국인 외국인 노동자의 좌충우돌 이민 정착기'로 대충 정해놓고, 기억과 경험에 의거해 목차를 만들어 나갔다. 연대순으로 3장으로 나누어 ‘운명처럼 만나게 된 밴쿠버’, ‘다시 온 한국', 그리고 ‘밴쿠버로 다시 와 패션계에서 자리잡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이야기의 기초적인 토대가 세워졌다.
제대로 각을 잡고 글을 써 보기로 한 첫날은 브런치북 응모 기간이 공표된 다음 날인 9월 29일이었다. 구글닥(Google Doc: 계속 구글, 구글 하니 구글 앞광고를 하는 기분이지만 이메일부터 메모장까지 모두 연동되어 있는 편리함에 구글의 거의 모든 앱들이 없으면 생활이 제대로 되지 않을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을 켜 빈 페이지에 깜빡이는 커서만 줄곧 응시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북 리포트’ 템플릿을 이용해 빈칸을 채웠다. 그러고 나서 제목과 목차를 끼워 넣으니 미리 깔끔하게 디자인된 템플릿 덕분인지 뭔가 진행되는 느낌이 들었다.
목차에 해당하는 글을 구글닥에 쓴 뒤, 브런치에 복붙(Cmd+C&V)하는 식으로 글을 써 나갔다. 브런치의 맞춤법 검사 기능을 최대한으로 활용하면서 말이다. 내가 처음 정한 브런치북 제목은 글자 수 제한 때문에 훨씬 간결하게 다듬어야 했다. 그렇게 해서 ‘토종 한국인, 밴쿠버 패션계 정착기'라는 제목이 탄생되었다. 처음 글을 쓴 날 10페이지를 완성하고, 다음 날인 9월 30일에 5페이지를 더 작성했다. 처음 시작하고 ‘삘'을 받아 15페이지를 썼으나, 10월이 되고 2주 동안은 지독한 자기 검열에 시달리고 말았다. ‘내가 쓴 글을 누가 읽기나 할까?’ ‘글을 써 봐야 무슨 소용인가’ 하는 자아비판적이며 가학적인 목소리들이 나를 옥죄어왔고, 나는 내가 써 놓은 글을 읽을 수도, 계속 글을 써 나갈 수도 없었다.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내가 책을 내고 싶은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솔직하게 마주해야 했다. 글을 쓰다가 막힌 부분을 보니, 처음으로 내 인생에서 계획대로 되지 않아 힘들었던 때였다. 직장에서 짤리고, 우울증이라는 것이 생긴 그때.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지나왔거늘, 약 9년 전 일인데도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처럼 남아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 일에 대해 글을 쓰자니 마치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만 같았다. 완벽주의자 성향이 있어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해오지 않았던 나였기에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삶의 일부분을 공개적으로 오픈하는 것은 마치 살을 도려내는 아픔과도 같이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은 이런 나의 아픔을 아랑곳 않고 흘러갔고, 어느덧 10월 20일이 되었다. 응모 기간이 약 10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자기 검열을 무시하고 글을 계속 써 나가야만 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글이 나를 위로해 주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드디어 내가 줄곧 머릿속에 홀로 질문해오던,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찾게 된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가 아닌 오롯이 나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니 뭔지 모를 편안한 상태에 이르렀다. 나 자신을 치유하기 위한 방편으로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들이, 비슷한 환경에 처한 다른 이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말이다. 나 역시, 브런치에서 읽는 타인의 글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는 요즘이므로.
그렇게 다시 마음을 다 잡고 40여 페이지를 쓰고 나니, 이젠 브런치북을 어떻게 끝마쳐야 할지 망설여졌다. 패션으로 커리어를 시작하긴 했지만 지금은 그 업계를 ‘은퇴'한 후 다른 일을 하고 있기에, 어디까지 오픈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다시 처음에 써 놓은 제목과 목차로 돌아가 ‘토종 한국인, 밴쿠버 패션계 정착기'에 맞게 이번 브런치북은 ‘밴쿠버', ‘패션', ‘이민’, ‘정착'에만 초점을 맞추기로 하고, ‘다음에 계속(To be continued)…’로 글을 끝마쳤다.
사진은 최소화하고 글에만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고 탈고 과정에서 수정을 셀 수 없을 정도로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이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브런치에 쟁쟁한 작가님들과 견주어 ‘내 글이 과연 당선작으로 뽑히기는 할까…?’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은 여전하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든, 목표한 바를 이루어 냈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을 느끼며 ‘패션계 은퇴 후의 남은 이야기' 역시 계속 써 나가 보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