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이야기 11
대학교 때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래서 전공 성적이 좋지 않았고, 대학원에 진학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원에 다 떨어지고 나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전공 수업을 잘 들었으면 좋았겠다 싶었다.
전공 수업을 잘 듣는 나는 존재할까? 만약 평행우주에 살고 있다면, 그런 내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평행우주라고 생각하면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영화에 나온 것처럼 지금의 내가 최악의 버전의 나라고 느껴진다. 살아갈 때마다 더 잘 살 수 있었던 기회를 하나씩 없애가는 나 말이다.
누군들 후회할만한 상황이 없을까. 원하는 대로 다 되는 사람은 없다. 내 우주가 단 하나의 우주라면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대체할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현실을 벗어나 갈 다른 현실이 없다. 게임이라면 종료하고 새로 시작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단 하나의 나이다.
생각해 보면 후회 없이 살았던 적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단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 사람은 없다. 현재 내가 느끼는 느낌과 상상으로 그려내는 대체현실이 나를 괴롭힌다. 만약에 일이 잘 풀렸다면, 동일한 과거를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원에 붙었다면, 전공을 잘 듣지 않았던 것을 후회할 일이 없을 것이다. 만약 대체현실에서 전공을 잘 들었는데 대학원에 떨어졌다면, 나는 전공을 잘 들은 것을 후회할 것이다. 후회를 만들어내는 것은 과거의 행동이 아니라, 현재 '내가 인식하는 나'이다.
뜻대로 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평행우주 세계관이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같은 상황에서 스스로를 하나로 인식한다. 그에게는 통제할 수 없는 결과(대학원에 떨어졌다)로부터 후회(전공 수업을 잘 들을 걸)로 이어지는 고리가 없다. 단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할지 생각할 뿐이다.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후회보다는 행동을 선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