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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Aug 11. 2020

엄마의 기억 찾기

나미래의 詩詩한 에세이, 섬과 육지 사이, 거금도 금산 신금, 구석구석!

#엄마의 기억 찾기(부제: 시어머니의 오래된 기억)


사진1)  50여 채가 살고 있는 작은 규모의 신금 마을은 한눈에 풍경을 살필 수 있다. 멀리 화도(꽃섬)이 보이는 바닷가를 매일 마주하게 된다.  


6개월 여 전부터 시어머니가 요양원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유별난 성격인 시어머니의 요양원 생활이 순탄하지 않을 거라 직계 자식들은 예감을 하는 듯했다. 며느리들은 그 예감을 직감으로 느끼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시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했기에. 나도 그런 며느리 중 명이다.

 

사진2) 갯벌은 해산물의 보물처이다. 자연은 각본이 없어서 이곳에 나갈 때마다 자연이 내어준 만큼 받아오면 된다.



6개월 사이에 요양원을 한 번 옮기게 된 사연은 차치하고라도 시어머니는 우울한 날들이 많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짧게 자른 커트 머리 때문이라고. 젊었던 시절부터 당신은 빳빳한 머리에 새치 하나 들어올 틈 없는 파마 머리와 까만 염색을 하던 습관으로 살아왔기에 하얀 머리 휘날리는 짧은 커트가 더더욱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사진3) 시어머니가 기억할 만한 길을 따라다니던 중, 텃밭에 깨가 무르익고 있는 시가와 먼 친척집을 찍어보기도 하였다.



요즘 코로나19로 유리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 가족은 시어머니와 어색한 만남을 하고 온다. 염색도 하지 않은 흰머리의 머릿결은 염색 머리보다는 부드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강렬한 인상은 머리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맞나 보다. 기억이 끊긴 순간에는 아들이 잘랐다고 타박을 한다고 한다. “누가 내 머리를 이렇게 했어?아들놈의 시끼가 잘랐네.”라고 중얼거리는 시어머니 옆에서 요양원의 한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어머님께서 늘 이러셔요. 우리도 어쩔 수 없어요.'라는 표정으로.

 


사진4,5) 왼쪽은 현재 우리 마을의 회관 모습이며, 오른쪽은 꽤 오래전 마을 중앙에 있었던 회관 터이다. 현재는 그 터 자리에 고추가 자라고 있다.



단편적인 사실을 배경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시간과 기억하고 싶은 시간이 엉킨 시어머니는 흐릿한 눈빛으로 '너는 누구냐?‘가 누구에게든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이 된다. 그에 질세라 자식들 중 한 명이 나서 ‘나는 누구요. 나는 몇 째요.’라고 하면 계속해서 이어달리기 하듯 호적관계를 읊기 바쁘다. 요양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어머니의 기억이 끊어졌다는 사실은 그들의 질문이 오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6) 남편은 친정의 일도 참 잘 돕는다. 어릴적, 시어머니를 따라 밭일을 많이 도왔던 습관이 몸에 배어  있는 듯하다.


남편도 마찬가지다. 평소 다른 형제자매보다는 시어머니 앞에서 재잘거리지만, 기억이 끊긴 엄마와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단다. 이게 아들의 참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이럴 땐 남편을 앞에 두고 내가 훈수를 둔다. ‘부모를 맡긴 자로서 그 주변의 사람들에게 잘하고 와야 한다는 것. 그래야 조금이나마 보살펴주는 손길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 말을 믿는 편이다.



사진7) 2011년 12월에 완공한 거금대교가 보이는 풍경이다. 이미 오래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사진으로만 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양원에 다녀오면서 내 생각을 남편에게 전달했다. 자식들 이름만 부르고 답하는 질문보다는 머릿속에 남아서 자주 중얼거리는 오래된 기억을 찾아주는 것. 그것은 시어머니가 시집와서 살았던 30년 전에 동네를 보여주는 것이다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마침 친정 시골을 갈 일정이 잡혔다. 지금은 육지로 연결된 섬 고향인 나의 친정 동네는 남편의 동네이기도 하다. 따라서 동네 동창 친구인 우리 부부. 다시 말해, 시어머니가 시집와 30여 년 가까이 살다 떠난 그리울 마을기도 하다. 현재 마을 외관은 많이 변했지만 그 오래된 분위기는 어렴풋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사진을 보고서 안정감을 느끼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사진8) 2011년 이전 거금도가 순수한 섬이었을 때 이런 형태의 철선을 타고 섬을 오갔다. 이제는 추억속의 물건으로 자리잡아져버리고 다리가 데려다주는 편리함이 몸안에 자리잡혔다.


맞다. 그렇다. 안정감이다.

시골에서 시어머니의 기억을 찾아주고 싶었다. 남편도 ‘엄마의 오래된 기억’을 더 찾아주고 싶지 않았을까. 남편은 내게 어떠한 딴죽을 걸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빛 속에 보이지 않는 이슬을 머금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사진9) 신금 마을의 언덕에 오르니 옆 동네도 환하다. 이곳의 길을 따라가면 평전이라는 곳에 다다른다. 밭과 논을 갈기 위해 우리들보다 앞선 세대의 어르신들이 자주 오가던 곳.



우리의 이번 휴가는 동네를 샅샅이 돌아보는 거였다. 오래된 회관을 찍었다. 친척 집을 찍었다. 시어머니가 시집와 처음에 살았다는 동네에서 볕이 가장 잘 들고 중심에 위치한 그 크나큰 집도 찍었다. 가세가 기울어 허름한 집으로 이사를 가고 난 후의 슬픈 기억의 집터만 남아 있던 그 자리도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무렵에 지어진 집은 나의 기억 속에도 각별한 장소다. 그 무렵, 친정집도 집을 짓고 있었으니까. 남편은 자신이 몇 년 살지 않고 떠나왔던 그 집이 모양이 전혀 다른 집으로 바꿔져 있다는 사실도 사진에 담고 있었다. 엄마의 기억을 찾으며 자신의 기억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사진10, 11, 12) 시어머니가 제일 먼저 살게 된 왼쪽 집, 그리고 터만 남은 다음 집, 그리고 시골을 떠나기 전 마지막 살았던 집 터의 모습들도 카메라에 담아본다.


동네의 풍경 사진을 앨범으로 묶을 예정이다. 요양원에 방문하면 그 사진을 보며 기분 좋은 오래된 이야기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자식 이름 찾다 삐져 있는 시어머니를 보고 애타 하다 눈물 흘리고 돌아오기보다 기억이 뒤엉켜 있더라도 여러 시간들을 이야기하는 만남이었으면 좋겠다. 남편은 오랜만에 며느리의 남편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아들이 되어 ‘엄마의 기억 찾기’에 제대로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남편의 아들이 사진을 찍는 아빠 뒤를 쫓아가며 자신의 아빠가 기억하는 오래된 동네 이야기를 듣는다.

 


사진13,14) 흐린날에도 우리에겐 여유가 있다. 바다를 보는 즐거움과 여유다. 아이의 할아버지가 만들어놓으신 대나무 낚싯대로 망둥어 잡는 재미의 방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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