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입사가 확정되었기에 4학년 2학기는 즐길만한 것이었습니다. 특히 경제신문사 기자들이 강사로 나선 ‘가치 혁신’ 강의가 그랬는데, 강의도 재미있었지만 기자들의 헤어 스타일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강의를 이끄신 신문사 주필님과 선배 뻘 기자 두 분만 빼고, 매 강의마다 바뀌어서 들어오는 기자들은 모두 대머리였습니다. 날마다 원고 마감 시간에 이르면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고 했는데, 그렇다 해도 대머리가 너무 많았습니다. 업무 스트레스보다는 그 신문사 식수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당시 경영계의 화두는 ‘블루 오션(Blue Ocean)’이었는데, 탈모 시장은 분명 ‘블루 오션’이었습니다.
대머리 탓이기도 하고 경영학 공부 탓이기도 해서 그런지 그 해 가을은 전혀 낭만적이지 않더군요. 지는 낙엽을 보며 그저 드는 생각은 “나무가 ‘구조 조정’을 하는구나”이었습니다. 그러다 다시 기자들 생각에 문득 ‘왜 수염은 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경제신문 기자들이 ‘자원의 희소성’과 ‘선택’에 대해서 공부할 때 그들이 왜 머리보다 수염을 선택당했어야 했는지 한 번쯤은 고민해 봤을 거라는 생각에 미안한 실소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신입 사원 연수는 졸업 학기자 마치자마자 바로 시작되었습니다. 한 달 정도의 합숙 연수는 경영/경제뿐만 아니라 문학과 과학, 미술과 음악, 그리고 연극과 무용 관련 강의와 체험 활동이 TV에서나 볼 수 있었던 각 분야의 정상급 강사들에 의해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애사심을 키우기 위한 포인트들이 요소요소에 있었습니다. 매일매일 회사의 노래와 회사의 체조로 하루가 시작되었고 제출해야 하는 일지를 쓰며 그 하루를 정리했습니다.
그 대단원의 마무리는 여름 스키장을 가득 채운 거대한 규모의 체육 행사와 끼리끼리 모인 그 밤의 맥주 파티였는데, 적당히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방문한 오너와의 짧은 스탠딩 대화가 마지막 ‘점정’이었습니다.
“여러분, 제가 입고 있는 옷을 누가 만들죠?”
“우리가요!”
“여러분, 제가 살고 있는 집은 누가 짓나요?”
“우리가요!”
“여러분, 제가 쓰는 핸드폰은 누가 만드나요?”
“우리가요!”
“여러분, 저는 여러분 없으면 못 사는 사람입니다.”
“오! ~ ”
맥주 안주에는 감자튀김이 있었습니다. 유럽 대기근에 큰 역할을 했던, 오늘날 프랑스 등 유럽 요리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신발끈 스타일 그대로 패스트푸드를 통해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진 감자. 우리가 맥도널드에 가서 사 먹는 그것. 반면, 고흐의 그림 속 어두운 사람들이 거칠고 투박한 손으로 먹는 그것. 감자튀김 하나 먹는데 머리 속에서 이런 게 굴러 다니는 게 저는 너무 싫었습니다. 제가 구질구질하게 자란 탓이겠지요.
신입 사원 연수 첫날, 입사를 축하하며 사회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중산층입니다.”
그 말이 준비된 멘트였는지 즉흥적인 ‘애드리브’이었는지 어쩌다 웃자고 나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 말에 따르면 저는 이제 중산층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구질구질하게 살지 않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