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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Jun 14. 2018

30. 백화점 실습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합숙 연수 다음에는 사내 교육이 이어졌습니다. 옷 만드는 회사라서 교육에는 백화점 실습이 포함되어 있었고, 매일 아침 백화점에 가기 전에 중국어 강의가 진행되었습니다. 그게 끝나면 동기들과 저는 2인 1조로 배정받은 백화점으로 출근했습니다.

     

저와 같은 조가 된 신이는 해외의 유명한 패션 학교를 졸업한 재원이었습니다. 데님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회사로부터 오퍼를 받았지만 한국으로 오고 싶은 맘이 더 앞섰다고 했습니다. 백화점으로 가는 지하철에서 우리는 중국어를 연습하다가 막히면 영어로 대화를 하고 그러다 답답하면 결국 한국말로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지하철에서 내려서 백화점으로 들어가기 전에 매일같이 커피와 케이크를 사 먹었는데 계산은 늘 신이가 했습니다. 밥 보다 비싼 커피라서 한 번은 제가 사려고 해도 신이는 고집스럽게 자기가 계산을 했습니다.    


지하철에서 매일 마주치는 그분에게도 신이는 한결같았습니다. 살짝 눈을 맞추더니 매번 지갑에서 만 원짜리를 한 장 꺼내어 그분에게 건넸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보통 동전이나 천 원짜리 주지 않니? 아예 눈을 피하거나…”  

신이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요, 이 세상에서 저만 너무 행복한 거 같아서 미안해요.”    


신이는 부유했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분명 그래 보였습니다. 그녀가 가진 명품들이 열심히 모아서 구입한 것이 아니라는 게 눈에 보인다는 사실이 신기했으니까요. 그것은 잠시 세워둔 자동차의 먼지처럼 자연스러웠습니다.    


백화점으로 출근하면서 저는 그제야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아마 저만 몰랐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은 백화점, 같은 브랜드의 옷인데 왜 이 동네 백화점에는 있고 저 동네 백화점에는 없을까요? 알고 보니 옷만 디자인되는 게 아니라 그런 것도 다 디자인되는 것이었습니다. 마케팅 교과서에는 나오는 STP란 것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비싼 동네에서는 비싼 옷을 팔고, 싼 동네에서는 싼 옷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무늬였습니다.


우리가 배정받은 강남의 한 백화점은 저로 하여금 김애란의 <도도한 생활>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요즘 계급을 나누는 건 집이나 자동차 이런 게 아니라 피부하고 치아…’라는 말에 저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눈으로 보기에 부유함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더군요. 그리고 많았습니다. 그 동네는 비싼 동네였고 웬만한 서민 월급 만큼의 돈이 옷 한 벌에 쉽게 결재되기도 했습니다. 점원들의 상대적 빈곤은 그들이 입은 유니폼으로 가려졌고, 그 유니폼은 사람을 앉을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직원용 계단에 가면 그제야 쪼그리고 앉아 제이에스(JS), 이른바 진상 고객의 뒷담화로 스트레스를 날리는 누군가의 엄마, 아빠, 딸, 아들이 보였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폐점 시간이 되면 누가 들어도 흥겨운 곡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러면 고객들은 ‘이제 문 닫을 시간이 되었나 보다’라고 생각하며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그 음악은 다른 의미도 가지고 있었고 그 메시지는 분명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일 매출 목표를 달성했을 때와 달성하지 못했을 때 나오는 곡이 달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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