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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Jun 24. 2018

31. 멀어진 통근 거리, 격해진 직장 생활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백화점에서 일하는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백화점이나 도박장이나 창문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고, 때문에 지나가는 계절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본사 교육 때는 자주 회사 밖으로 나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인사담당 과장님은 신입 사원들이 구내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주변에 언론사가 많으니 바깥 식당에서 말조심하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저와 동기들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근처 인사동을 걷기도 하고 여러 카페를 돌아다니며 차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패션 잡지를 보는 것이 오전 일과였는데, 사무실에서 오전 내내 보고 또 보았던 잡지들을 식후 차 한잔을 하면서도 또 보고 수다를 계속 떠는 걸 보면 그들은 천상 디자이너였습니다. 무지개를 그리는 그들 옆에서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색이 맞는지 세고 있는 저를 보면서 저는 우리가 서로 다른 종족임을 직감했습니다. 맥도널드 경영자의 혈관에는 케첩이 흐르듯이 그들의 혈관에는 분명 물감이 흘렀습니다. 그들 옆에는 무지개를 보면 가슴이 뛰는 시인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안타깝게도 저는 그런 열정적인 동료들과 같이 일할 수는 없었습니다. 신입 사원 교육이 종반으로 치달을 즈음 제가 다른 사업부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기와 화학 소재를 다루는 사업부에 사람이 급하다는 이유였습니다. 미술이나 패션을 전공한 동기들만 의류 사업부에 남고 경영이나 문과 계열의 동기들은 저와 같이 그렇게 재배치되었습니다.    


재배치가 된 그날, 아침에 서울 강북 사무실로 출근한 저는 점심때 경기 남부 사업장으로 이동을 했고 오후에 그곳에서 퇴근을 했습니다. 퇴근길에 계산해 보니 편도로 2시간 15분이 걸리더군요. 지하철 정차역 수가 31개였습니다. 정시 출근을 위해서는 반드시 첫차를 타야 한다는 결론에 한숨과 함께 자꾸 멀어지는 통근거리가 팔자 탓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이 없어서, 어릴 적부터 매년 이사를 했고, 그럴수록 집은 좁아지고 통학 거리는 길어져서 초등학교 때부터 한 시간씩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까요. 통근 시간은 35분 정도가 가장 좋다고 어디서 들은 것 같은데, 저는 그런 행복과는 거리가 먼 팔자였습니다.    


퇴근해 보니 아내가 첫째를 야단치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알파벳을 외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내일 첫차를 타고 가야 한다며 회사 발령에 대해 설명을 하고, 제가 주말에 가르치겠다고 해도 아내는 완고했습니다. 참을 만큼 참다가 오늘까지 온 것이기에 더 이상 봐줄 수가 없다는 입장이었습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멍하니 있는 초등학교 저학년을 옆에 두고 이런 실랑이로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결국 제가 가르치겠다고 말하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밤 12시였습니다.  

“이게 A야.”   

제가 한 번 쓰면 아이도 한 번 썼습니다.   

“이게 A고, 이게 B야.”   

아이는 힘겨워 보였지만 잘 따라 했습니다.   

“이게 A고, 이게 B고, 이게 C야.”   

이렇게 A부터 Z까지 반복하며 외운 후에 아이는 엄마의 테스트를 통과했습니다. 시계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뿌듯하더군요. 그런데 합격의 기쁨과 함께 '이제 자자'하고 말하는 찰나에 아내가 한 마디 던졌습니다.  

“이제 소문자 외워.”     


그렇게 그날 밤을 새운 저는 출근을 위해 새벽 5시경 집을 나왔습니다. 회사에 도착을 하니 7시 반 정도가 되더군요. 그렇게 새로운 사업부에 출근을 하고 얼마 후 회식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상무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임원이고 아침 6시에 출근하는데, 너는 신입이 8시에 출근해서 언제 나를 따라오려고 하냐?”  

제가 속한 영업팀은 외근이 잦았기에 저는 얼마 안 가서 소형 승용차를 샀고, 그 후 제 출근 시간은 항상 아침 6시가 되었습니다. 일찍 출근하겠다는 목표보다는 러시 아워를 피하겠다는 맘이 앞섰는데, 아무튼 그 시간에 출근해 보면 강사와 함께 일대일 외국어 공부를 하시는 상무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패션 사업부는 아침에는 감성이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출근 시간이 늦었습니다. 대신 주말 근무가 많았는데, 특히 백화점 세일 기간이 되면 초비상이 되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실적이 인격’ 임을 확인하는 날이었지요. 백화점은 이름만 바꿀 뿐 거의 매달 세일을 했고,  동기들의 푸념은 제게 어렴풋이 400년 전 <햄릿>의 대사를 떠올리게 했습니다.  

“Why such impress of shipwrights, whose sore task   

 Does not divide the Sunday from the week.”  

 (… 왜 주중과 주말 구분 없이 고된 작업은 계속되는지…)


한 해 한 해 저와 동기들이 신입 사원 티를 벗어나면서 우리에게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야근을 하느냐 마느냐, 혹은 주말에 출근을 하느냐 마느냐,’ 이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선배의 말처럼 저도 차츰 출근 후 이메일 여는 것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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