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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후 Dec 23. 2019

36. 기러기들의 공부

중산층 진입 실패의 르포르타주 - 취준생 바보 아빠

아내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많이 운다고 했습니다. 각종 공과금에 적힌 영어, 교통 범칙금 때문에 경찰서에서 듣고 말해야 했던 영어, 아이들 학교 과제를 도와주는 영어는 낯선 영어였습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학교 가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교실에서 그냥 바보처럼 앉아 있는다고 했습니다.

 

민사고 학생들을 취재한 방송이 생각났습니다. 기숙사 방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었고, 야간 당직 선생님은 모든 학생들을 CCTV로 모니터링했습니다. CCTV는 학생들의 책상을 정확히 비추었고,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보이지 않으면 선생님은 마이크로 방송을 했습니다.

“000실 학생이 책상에 엎드려서 자니까 가서 깨워라!”

“000실 학생이 안 보인다. 침대에 누워서 자는지, 화장실에 갔는지 확인해 봐라!”


<7막 7장>에서도, 그보다 앞선 <무서운 아이들>에서도 학생들의 노력이 묘사되어 있었습니다. 언어 문제로 인해 절대적인 공부 시간이 부족했던 유학생들은 밤중에 화장실에서 공부를 했습니다. 기숙사 화장실이 밤에 유일하게 불을 켤 수 있는 장소였습니다.


초등학생인 아이들에게 우리는 무슨 기대를 했던 것일까요?


미국 학교에는 독서 과제가 유독 많았습니다. 뉴베리 시리즈가 주로 추천되었고 아이들은 1~2주에 한 권씩 읽고 독후감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 덕택에 저도 아이들과 함께 원서를 읽어 나갔습니다. 제 경우는 독서라기보다는 독해였습니다. 방법은 예전 학교 다닐 때와 똑같았습니다. 모르는 단어를 찾아서 죄다 노트에다 적었습니다. 전자 사전이 나와서 편했습니다. 그렇게 주말마다 대학 도서관에서 어린이 영어 소설을 읽었습니다.


아동 문학계의 노벨상이라는 뉴베리 수상작들은 정말 좋았습니다. 재미가 있었습니다. <별을 헤아리며 Number the Stars>, <기억전달자 The Giver> 등은 다음 회가 궁금해지는 주말드라마 같았고, <인류 이야기 The Story of Mankind> 같은 책은 어른을 위한 어린이 역사책이었습니다. 최우수 아동용 그림책에게 수여되는 칼데콧 수상작들도 감탄을 자아내었습니다. 특히 <가드너 The gardener> 같은 작품은 그림과 글, 그리고 오디오 북의 목소리까지 너무나 매력적인 명품 그림책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1~2년이 넘어가면서 어느덧 저는 누가 취미를 물어보면 ‘어린이 원서 읽기’라고 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첫째가 고등학교에 진학할 즈음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를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더 이상 쫓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농담 삼아 던지는 아내와 아이들의 영어 타박에 상처를 받기도 했습니다.


수학도 그랬습니다. 매주 스카이프를 마주하고 화상으로 같이 공부하는 것도 딱 중학교까지였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은 집합을 넘어가면서 제겐 이집트 문자 같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잘했던 것 같은데, 역시 과거는 아름답게 기억되나 봅니다.


학교에서 바보같이 앉아만 있었다는 아이들은 어떻게 견뎌냈을까요? 첫째가 그랬습니다. 미국 남학생이 불고기를 지렁이 같다고 놀렸다고. 그래서 그 학생 입에다가 불고기를 쑤셔 넣어 버렸다고.

“그래서 그다음엔 어떻게 되었니?”

아이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맛있다고 그러길래 더 줬지.”


아이들은 바보같이 앉아만 있지는 않았나 봅니다. 학교를 가고, 어떻게든 과제를 하고, 시험을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가 3년째 미국에 갔을 때만 해도 둘이서 한국말로 이야기했는데, 4년째 갔을 때는 영어로 이야기를 하더군요. 신기했습니다. 단어의 뜻이 긴가 민가 할 때, 첫째는 사전을 찾았고 세 살 어린 둘째는 자기가 읽은 동화책에서 그 단어를 찾아서 문맥을 살폈습니다. 그 차이도 신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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