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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Nov 30. 2016

팝콘 브레인
자극 좇는 일상이 행복할까

청소년 인문 매거진 <유레카> (2016년 11월 발행)

우주, 컴퓨터, 호두 간혹 돌이나 똥. 종종 뇌에 비유되는 것들이다. 이 리스트에 팝콘을 추가하자. 요즘 뇌는 팝콘에만 반응한단다.


시험기간이 되면 졸음을 깨우는 카페인 음료가 잘 팔린다. 처음엔 카페인이 비교적 적은 캔커피나 박카스로 시작하지만 카페인에 몸이 적응되고 다시 잠이 오면 좀더 센 걸 마시고 싶어진다. 레드불이나 스누피 우유같은 거 말이다. 이 스누피 우유는 얼마나 카페인이 센지, ‘악마의 우유’라고 불리고 어떤 편의점에선 청소년에게 판매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레드불과 스누피 우유에 길들여지면 캔커피나 박카스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이의 울음을 달래기 위해 ‘또봇’이나 ‘뽀로로’를 보여준 부모는 이제 아이가 보챌 때마다 영상이 아닌 장난감 같은 건 어림없다는 걸 알게 된다. 도박꾼은 돈보다 돈을 땄을 때의 그 흥분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리해서 돈을 거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더 큰 흥분을 얻을 테니까. 이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의 뇌는 자극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다.


스마트폰, 팝콘 브레인 현상을 만들다

고카페인 우유를 마시지 않아도, ‘뽀로로’를 보지 않아도, 도박장에 가지 않아도 그만큼의 자극을 줄 수 있는 게 아주 가까이에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더 이야기할 것도 없이 우리는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 사용에서도 우리는 자극 위의 자극, 더 큰 자극을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이 자극 탐방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온다. 화면 밖 일상이 시시해지는 것이다. 화면 속에는 내 입맛에 맞는 재미가 많으니까. 이런 현상을 팝콘 브레인 현상이라 한다.


팝콘 브레인(Popcorn Brain)은 미국 워싱턴 정보대학교 데이비드 레비가 만들어낸 용어다. 스마트폰에 길든 우리의 뇌가 강렬한 자극에만 반응하고 일상의 약한 자극에는 무감각해지는 용어다. 마치 팝콘이 튀는 모습 같은 자극적인 흥미에만 뇌가 반응해 잔잔한 일상 따윈 따분해지는 것이다.


2011년 6월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컴퓨터와 스마트폰 중독을 염려하기 위해 등장했다. 특히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팝콘 브레인 현상은 큰 해다.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의 짧고 단편적인 정보에만 지나치게 노출되면 정상적인 독해력과 집중력, 참을성이 심각하게 저하된다. 사람의 얼굴에서 감정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겉으로는 여러 개의 일을 수행하는 멀티 태스커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주의력이 결핍된 상태라 한 가지 일도 심도 있게 처리하지 못한다.


팝콘 브레인 현상은 일종의 중독 증세이며 질병이다. 자가진단은 쉽다.

먼저 긴 문장을 읽는 게 싫고 힘들어진다. 인터넷 게시물에도 스크롤을 먼저 내려 본문의 길이를 파악하고, 긴 글이면 패스한다. ‘긴 글 주의’라고 언질을 주지 않은 게시자가 얄밉다. 식당에 음식을 기다리는 일이나 에스컬레이터, 엘리베이터를 탄 그 짧은 시간도 견디기 어려워 스마트폰을 수시로 열어보게 된다. 모두 팝콘 브레인 현상이다.


학술지 ‘플로스원’은 팝콘 브레인 현상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하루 10시간 인터넷을 하는 대학생과 두 시간 미만 인터넷을 하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뇌의 MRI를 찍어봤는데, 하루 10시간 이상 인터넷을 하는 대학생의 뇌는 상대적으로 사고인지(무엇을 파악하고 궁리함, 인식하고 이해함)를 담당하는 전전두엽의 크기가 줄어들었다. 인터넷을 오래 하는 것만으로 뇌의 구조가 변한 것이다.


팝콘 브레인 문화로 번지다

인정한다. 아무리 뇌가 톡톡 튀는 팝콘에만 반응한다고 한들, 스마트폰을 내려놓는 일은 쉽지 않다. 자녀의 스마트폰 중독 때문에 상담을 받는 부모에게 전문가가 조언하는 첫 마디도 ‘부모부터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이다. 청소년이나 어른이나 스마트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모두가 팝콘 브레인 현상을 겪는 시대. 이 현상은 문화에까지 번졌다.



대표적인 게 힙합의 유행이다. 거칠고 자극적인 랩으로 쏘아붙이다 서정적인 멜로디가 나오고 누구나 함께 따라 할 수 있는 훅이 이어지는 이 장르는, 기원은 숭고하지만 현대에 와선 팝콘 브레인 시대의 대표 장르가 됐다. 대놓고 말하고, 약점을 콕 집어 말하는 독설 ‘디스’까지 곁들여지니 더욱 좋다. 인터넷 방송을 흉내낸 지상파의 방송들도 팝콘 브레인에 어울린다. 동일 인물과 이어지는 스토리를 계속해서 내보내는 것보다 마치 채널을 돌리는 것처럼 다른 인물, 다른 스토리를 바꿔가며 보여주는 <마이 리틀 텔레비전> 같은 방송 말이다.


뉴스는 아예 요점만 보여주는 카드 뉴스나 동영상으로 형태를 바꿨고, 웹툰에 이어 소설도 웹소설이 인기다. SNS로 촌철살인을 날리면 시인 칭호를 얻고 책도 잘 팔린다. TV를 보지 않아도, 책을 읽지 않아도 ‘짤방’만으로 모든 내용을 이해한 척할 수 있다.


디지털 디톡스가 필요하다

문화평론가 하재근은 팝콘 브레인 현상에 대해 ‘문제는 모든 것이 단속적이고 자극적인 쪽으로만 흘러간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놓는다. 즉각적인 것에만 반응한다면 사색하고 성찰하는 능력은 점점 퇴화할 수밖에 없다. 사색과 성찰은 성인(聖人)들의 몫이 아니다. 사색과 성찰이 사라지면 작은 것에 ‘욱’하는 분노사회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일상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은 일상의 모든 것이 귀찮아질 것이다.


의식적으로도 컴퓨터와 휴대폰을 멀리하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에도 디톡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톡스란 흔히 독소라 부르는 인체유해물질을 몸 밖으로 빼내는 것을 말한다. 독소를 빼내기 위해선 최소한의 영양분만을 섭취하며 금식이나 단식을 해 독소를 빼내는 디톡스가 효과적이다.


디지털 디톡스도 비슷한 방법이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끊어봄으로써 중독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하지 말라는 말만으로도 불안하고 초조하다면, 그것이 바로 디지털 디톡스가 절실히 필요하단 증거다. <유레카>를 읽는 지금 이 순간만이라도 스마트폰을 서랍에 넣어보자. 대신 얻을 수 있는 건 일상의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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