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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해정 Jan 16. 2019

나는 로봇하고 이야기할래

로봇과 감정을 공유하는 이유

공학 교수가 퇴임했다. 막연하게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환원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그는 뜻이 맞는 동료와 후배를 모아 병원을 차리고 '특별한 환자들'을 받기로 했다. 특별한 환자들이란 움직이지 않는 무선 자동차, 소리가 나지 않는 플라스틱 총 같은 것이다. 장난감 병원을 차린 것이다. 


김종일 이사장이 운영하는 키니스 장난감 병원의 이야기다. 2011년 문을 연 이 병원에서 2018년 기준 3만 점이 넘는 장난감이 새 생명을 찾았다. '대한민국 모든 어린이 품에 장난감이 안기는 게 우리의 꿈'이라고 말하는 이 병원은 매년 헌 장난감을 필요한 곳에 기부하기도 한다. (예전에 김종일 이사장님께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밀린 환자가 많아 어렵다는 회신을 받은 적 있다.)


일본에는 봉제인형을 전문으로 하는 장난감 병원이 있다. 후모후모랜드 인형병원인데, 실제 종합병원과 같은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외과에서는 팔, 다리, 엉덩이의 솜을 보충하고, 정형외과에서는 인형의 몸통을 교정한다. 퇴원할 때는 처방전도 잊지 않는다. 처방전 봉투 안에는 인형의 입원생활이 담긴 DVD와 사탕이 들어있다. 병원장의 전 직업은 인형가게 주인이었다. 어느 날 인형 수선을 부탁하는 손님에게 "그냥 새로 사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가, "이 인형은 나의 가족이다"고 말한 것에 감명을 받고 수리점을 시작했다고 한다. 


후모후모랜드의 의사가 리락쿠마를 관찰한다. 집중치료실에서 치료받은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었다. (출처: 후모후모랜드 홈페이지)


장난감의 장례식을 치루는 사람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장난감은 연필이었다. 내 또래에선 흔하지 않은 사남매의 둘째였는데, 늘 언니의 장난감을 물려받거나 동생들과 공유해야 했다. 나만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은 없었다. 그러다 연필 한 자루를 주웠다. 물을 먹었는지 축축하고 뒤틀어진 그런 연필이었다. 처음으로 나만의 장난감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언니와 동생들에게 보여주지 않고, 그 연필을 들여다보고 놀았다. 굴리고 세우고 왼손에 쥐었다가 오른손에 쥐고. 천쪼가리를 둘러 이불을 만들어주고. 


장난감에 대한 인간의 애착은 뛰어나다. 장난감이 고장나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제값보다 더 비싼 값을 치러서라도 수선하려고 한다. 자동차나 인형에 이름을 붙이고, 연필처럼 전혀 맥락이 없어도 마음에 들면 함께 잠들기를 원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행동을 '인간만의 행복'에서 찾는다. 장난감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한다고 인식하고, 그것을 돌봄으로써 큰 행복감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또는 개인이 개인으로서 '처음으로' 마음껏 다룰 수 있는 대상이 대부분 장난감이라 애착을 가진다. 


일본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소니가 1999년 출시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의 생산을 중단하면서 기존 아이보의 수리 서비스도 중단되었다. 아이보를 가지고 놀던 사람들은 2015년 1월, 치바현의 한 절에서 아이보 합동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이 로봇 강아지들은 목에 주소와 주인의 이름을 적은 명패를 달았다. 주지 승려는 진지하게 천도재를 주재했다. 장난감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들, 그 진심을 생각한다면 결코 웃을 수 없다. 


본문의 '아이보 합동 장례식' 링크를 클릭하면, 장례식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sonik tailz  유튜브)


역시 감정이 문제다 

장난감은 IT와 만나 진화한다. 엔젤산업에서는 아이보와 같은 스마트토이의 영역이 커졌다. 스마트토이는 아이뿐 아니라 어른을 겨냥한다. 어른에게 스마트토이는 장난감을 넘어 반려로봇의 역할을 한다. '멍멍' 소리를 내고 이리저리 '바퀴 발'을 구르던 기계장치가 인공지능이나 IoT와 결합해 '인간을 위해' 소리를 내고 '인간을 위해' 움직인다. 소니의 아이보는 2018년 1월 재출시되었다. 기존 아이보가 단순한 로봇 강아지였다면, 인공지능을 강화한 반려로봇의 역할을 한다고. 짝이란 뜻의 '아이보(あいぼう)'란 이름에 걸맞게 말이다. 


많은 전문가가 1가정 1반려로봇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한다. 


이 시장이 이렇게 커지는 이유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가진 감정을 기술로 해소하고 싶은 욕구도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 맞춰 기술도 척척 진화되고 있고 말이다. 


여기 재미있는 실험이 있다. 1960년대 로봇과 기계에 빠져드는 사람들의 태도를 연구하는 셰리 터클 교수는 채팅봇 일라이자와 실험자가 대화를 나누게 하고 그 대화를 기록했다. 실험자는 일라이자에게 '우울하다' '불행하다'와 같은 아주 사적인 감정을 털어놓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 이를 계획한 연구진조차 이 채팅봇과의 대화에 깊게 빠져들어 감정을 털어놓았다고. 영화 <Her>처럼 말이다. 일라이자가 우울하고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대단한 말을 해주었기 때문일까? 아니다. 일라이자가 하는 말이라곤 그저 사람이 하는 말을 되풀이하며 '그렇군요'라고 대꾸하는 것뿐이었다. 


실험자와 연구진은 왜 채팅 로봇에 빠져들었을까? 터클 교수는 사람들이 기계와 대화를 선호해서라기보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기를 꺼려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은 다른 사람과 감정을 공유하기를 원하지만 한편으로는 감정을 공유하는 일을 꺼린다. 감정을 공유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장난감과 로봇과 같은 무생물에 감정을 이입하는 것이다. 역시 이 외로움은 인간의 최대 강점이자 단점이다. 


끈질긴 추격을 피해 어떻게든 저항군에게 루크 스카이워커의 위치가 담긴 지도를 전달하는 BB-8은 인간보다 더 듬직한 존재다.

영화에서처럼 인간이 로봇과 공생하며 대화를 나누고 공유하는 일이 현실이 된다는 것이 선뜻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인공지능 비서에게 날씨를 묻고,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하는 게 이제 어색하지 않은 걸 보니 또 잘 해낼(!) 자신이 들기도 하다. 


여러분의 가정에, 또는 나 혼자만을 위한 반려로봇을 들인다면 어떤 기능을 가장 먼저 추가하고 싶은가. 어젯밤 이런 생각을 하다 등 긁어주는 로봇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건조한 날씨 덕에 피부가 고생인데,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로션을 발라주면 또 얼마나 좋을까. 함께 보드게임도 즐겨주었으면 좋겠다. 로봇을 한 번이라도 이길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인간에게 지는 것보다야 자존심이 덜 상하지 않을까? 역시 감정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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