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고도띠

내가 33살 될 때 쯤에


엄마는 나에게

"넌 언제쯤 결혼할거니?

이제 너도 나이가 적은 나이가 아닌데.

그리고 네 남자친구는 너보다 어리잖아.

혹시나 마음 변하면 너만 손해다. 얘"

라고 독촉하셨다.


생각해보니까 나는 이미 연애를 4년 했고,

당장 결혼을 하고 싶다거나

아이를 갖고싶다는 생각을

딱히 해보진 않았다.


막연하게 '남자친구가 추진하면

언젠간 결혼할 수도 있지 않을까?

뭐 이러다가 차이면 그냥 어쩔 수 없고.'

정도의 생각을 갖고 살았다.


그 당시 회사도 잘 다니고 있었고,

적은 월급이어도 꼬박꼬박 모아둔 돈도 있고,

연애도 순탄했으니까 큰 고민은 안했다.


주변에 친구들이 한 두명씩 시집을 가고,

그 친구들은 내 귀에 피가 나도록 시댁 욕을 하며,

남편에 대한 불만들과

아이를 키우는 건 행복하지만 고통도 크다는

여러 후기를 들으면서

이미 결혼에 대한 환상은 거뒀다.


그래도 나는 지금 남자친구를

많이 사랑하니까, 헤어지기 싫으니까,

만남의 연장선이 결혼이라는

생각은 있었다.


결국 1년 뒤,

나는 평범한 유부녀 회사원이 되었고,

그렇게 2년이 지난 현재까지

무탈하게 잘 지내왔다.


회사생활이든, 결혼생활이든

크게 어긋나거나 불편한 상황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


매일 다람쥐 챗바퀴같은 비슷한 루틴의

인생이긴 했으나, 원래 삶이란 이런거니까.


내 성격상 변화를 싫어하고

극한의 안정지향형인데다가

비슷한 패턴에도 지루함을 잘 안느끼는

성격이기 때문에 이런 삶에 나름 만족했다.


게다가 나는 아이가 없으니까

퇴근 후에 집안일을 끝낸 후와

주말에는 온전히 나의 쉬는 시간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문제없어 보이는 삶.




그런데 이런 나에게도 균열과

혼돈이 찾아왔다.


어느날 한 지인이,

나에게 질문했다.

"당신은 이렇게 눈이 오는 날에

감성적이어지나요?"


나는 그 질문에 잠깐 멈칫했다.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도 거의 없는데다가

내가 눈 오는 날을 좋아하는지,

감성적이어지는지도 인지한적이 별로 없다.


대충 그렇다고 답변한 뒤에

왠지 그 질문이 자꾸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내가 평소에 듣던 질문은

"제가 아까 지시한 거 다 완성됐나요?"

"너는 언제 자녀를 낳을거니?"

"그게 맞아?"

같은 것들 뿐이었으니.




순수하게 "나"에 대해 물어본 질문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늘 나는 여러 관계 사이에서

필요에 의한 기능적인 대화가 주를 이뤘다.


쓸데없는 감성 따위보단

당장 필요한 해결방안들에 대한

기능적 대화에 익숙해져 있었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걸 먹었고,

퇴근 후의 행선지와 빨래를 언제할지,

운동은 했는지, 잠은 언제잘지에 대해

순차적으로 대화했다.


남들이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는건 두가지다.

첫번째는 그닥 관심이 없어서일테고,

두번째는 상대에 대해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해서

굳이 질문할 필요를 못느끼는 것이다.


내 삶의 루틴에서

새로운 환경이나 새로운 만남이

없다보니, 이미 알고 있던 사람들은

나에 대해 알고 있거나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다.


그게 가까운 가족이라도 예외는 없다.

이미 다 아는데 뭐하러

쓸데도 없는 감성 따위를 묻겠는가.


그냥 오늘 먹은 저녁 메뉴와

다음 약속의 음식메뉴만 알면 된다.




그 가벼운 질문 하나가

내 삶에 균열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아마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나 조차도 관심을 안가졌다가

이제서야 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혼란이 찾아온 거 같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나'

잊고 산 댓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었다.


앞으로의 이야기는

내가 '나'에 대해 알아가며,

이로 인한 삶의 변화와

나를 사랑하는 방법 그리고

끝없는 고뇌 과정에서 얻은 깨달음을

공유하고자 한다.


혹시나 나처럼

고민이 많은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냥 '나'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

사소한 걸로 여겨질 수 있지만

이거야 말로 내 세계에서 제일 중요한

과업이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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