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중요한 일인 것을
'나를 모를 수도 있는거지,
그게 비극까지 간단 말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나'를 모르는 삶이
지속될수록 미래에 지불해야 할
값이 점점 커진다.
학창시절에 우리가 하는 일은
나를 탐구하는 것보다
당장 모의고사 등급이 더 중요하다.
대학교 전공을 고를때는
어떤 전공이 취업에 더 유리한지,
어떤 직업이 돈을 더 버는지에
초점을 맞춰서 선택한다.
결혼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내 배우자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느정도의 연봉을 벌고 있으며,
키, 외모 등의 조건을 거르고 걸러서
결혼을 선택하기도 한다.
결혼 후에는 대부분 아이를 낳으니까,
나도 자녀계획을 세우고,
출산 후에는 자녀키우기 좋은 동네로
이사를 해서, 남들 다 보낸다는
영어유치원을 알아보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제일 중요한
'나'가 빠져있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운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어떤 걸 견디는지에 신경을
곤두서는 경우가 드물다.
나 또한 그랬다.
회사도 판매종목보다는
외국계 회사고 안정적인 것 같아서
면접을 보고 근무를 시작했다.
결혼을 할 때도
내가 어떤걸 원하고 좋아하는지
생각한게 아니라,
내가 싫은 것만 안하면 된다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내가 견딜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그걸 꼭 짚고 넘어가는건
필수 조건이긴 하다.
하지만 이것에만 너무 매몰되면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간과할 수 있다.
자녀계획도 부모님과
남편이 꼭 낳아야 한다는 의견이라,
그래야할 것 같아서 계획을 세웠다.
물론 회사는 그만두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결혼, 육아 같은 일들은
한 번 결정한 뒤에는 다시 무를 수가 없다.
다행인 점은
나의 배우자는 결혼 생활에
최적화되어 있었고,
생활력이 뛰어난 편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고,
큰 다툼없이 무난하게 생활해오고 있다.
보통 결혼을 후회하는 사람들 중에는
나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고,
그냥 묻고 진행한 경우였다.
나이가 차거나, 부모님의 압박이나
애인의 권유로 내가 뭘 원하고 좋아하는지
탐구하지도 않고,
당장 '이 사람을 사랑하니까 괜찮겠지' 하고
찝찝함을 묻어둔 채 결혼을 강행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나중에 후회하는 내용을 보면
이미 연애 때부터 충분히
상대가 신호를 줬던 것들이다.
왜 그걸 알면서도 강행했냐고 물어보면,
그땐 "내가 견딜 수 있을 줄 알았다" 이거나
"나도 그걸 힘들어할 줄 몰랐다" 라고 한다.
고로, 나의 한계와 내 자신의 니즈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채 불길에 뛰어든 것이다.
일명 사랑의 콩깍지라고도 하는데,
이래서 사랑이 너무 불타올라
도파민의 노예가 될 때는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초반에 느껴지는 그 강렬한
끌림이 진정한 사랑이고,
다시는 못만날 내 뮤즈로 착각해서
결혼지옥이나 이혼숙려캠프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이혼률이 높고, 요새 돌싱이 흠이
아니라고는 한다만 마음에 손을 얹고
솔직히 생각해보면 흠이긴 하다.
그리고, 내가 돌싱이 되어
같은 돌싱끼리 좋은 사람을 찾아서
만나는 것이 가능은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은 여정이 될 것이다.
외국이야 자유분방하다해도
아직 한국에서는 결혼이든 이혼이든
쉽게 간단히 해보고 무를만한 문제는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아이까지 생겼다면,
문제는 더 깊어진다.
차라리 아이가 없는 상태에서
헤어지면 다른 사람을 만나더라도
크게 걸림이 되지 않지만,
이미 나와 상대 사이에
연결된 자녀가 있다면
평생 자녀에 의해 얽혀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장 큰 비극을 겪는 사람은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뭔지
파헤칠 줄 모르고,
남들이 하는 삶의 방향과 패턴을
그대로 답습해서 맞지도 않는 그릇에
나를 구겨넣는 사람이다.
구겨넣으면 언젠간 튀어 오른다.
서론에 말했던 '나'를 모르는 삶이
시간이 흐를수록 지불해야할 값이
바로 이런 것이다.
언제부턴가 회사만 생각하면 숨이 막히고,
일을 하면서도 현타만 온다거나,
결혼을 해도 외롭다거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아이 때문에
또는 필요에 의해 쇼윈도로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정말 많다.
이런게 바로 한 번 뿐인 인생을
모두 지불해버리는 일인 것이다.
내 젊음을 생이 얼마 안남은 노파의
10억과 바꾸자면 바꿀 것인가?
그만큼 가치 있는게 인생이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을
이렇게 다 갈아버린다면,
나중에 내가 삶이 끝나갈 때
침대에 누워서
"그래. 내 삶은 참 잘 견뎠어"
라는 말로 뿌듯해 할 수 있을까?
아니면
"나는 좀 다른 삶이긴 했고,
때론 좀 폭풍우 같았지만,
내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열정과 사랑을 충분히 느꼈다."
라는 말이 더 뿌듯하지 않을까.
물론 온전히 나를 다 아는데에는
시간이 꽤 걸릴 수 있고,
모든 걸 알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나에 대해 깨닫고, 그런 나를 사랑할 줄 안다면
인생의 방향성이 더 빨리 바뀔테고,
머나먼 훗날에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 있다.
이정도면 나를 모르는건
비극 그 자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