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부터 거슬러 올라가기
티비 프로그램에서
부부생활이나 육아에 대한 관찰프로를 보면
상담가는 꼭 당사자의 과거 유년기 시절부터
파고 들어가기 시작한다.
어릴 때 어떻게 보냈는지,
부모님이 어떻게 양육했는지,
학교생활이 어땠는지 등등
지금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거치는 과정이다.
그런걸 보고 그냥 넘길게 아니라,
나도 내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어떻게 성격을 형성시켜온건지
그게 현재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봤다.
그런데 내 친구들이나
주변에 유년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다들 비슷하긴하다.
부모님의 통제, 통금,
엄한 아버지와 불만이 많던 어머니.
잦은 싸움 속에서 스트레스 받는 것 등등
안그런 경우를 찾는게 더 어려울 정도로
대부분 비슷하게 성장한 거 같다.
지금이야 금쪽같은 내새끼나
오은영 박사 덕분에
자녀의 정서 교육 중요도가
많이 올라왔지만,
예전만 해도 그런 개념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우리 집은 독실한 개신교 집안이라
그 통제와 규율이 더 강했다.
우선 30살이 넘어서도 통금이 존재했고,
20대까지는 일요일에 꼭 교회를 가야했다.
만약 여행을 가거나 놀고싶어서 빠지고 싶다 해도
절대 허용이 되지 않았다.
교회에서도 매일 나의 죄를
돌이켜보는 회개를 많이 시켰다.
항상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반추해내야 했다.
부모님은 나에게
일반 도서보다는
성경 읽기를 권유하셨다.
물론 이건 교회마다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내가 다닌 교회는 그랬다.
그리고 나는 대학생때까지도
연애가 금지되어서 몰래 이성친구를 만나다보니
'연애=죄짓는 것'같은 기분이었다.
연애가 왜 금지됐냐면,
학생이기 때문에 공부에 집중해서
내 커리어가 더 좋아지면
그때 가서 연애를 해야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하셨다.
이러다보니 제대로 남자를 사귀어본건
남편 포함 2명이다.
물론 썸은 여러번 있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통제, 규칙이 컸기 때문에
나는 이런 패턴이 좀 익숙했다.
그래서 그런지 호감을 느낀 이성들
대부분이 통제적이거나
가부장적이었다.
물론 지금 남편도 연애초에는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이곤 했는데,
그 당시에는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도
통제라고 인지조차 못했다.
아니, 오히려 그걸
사랑의 형태로 이해하기도 했다.
'나를 걱정해서 그런거겠지?'
'나를 좋아해서 그런거겠지?'
이렇게 좋게 해석한 거 같다.
그리고 유난히 나랑 교제하거나
썸을 타던 이성들은
초반에는 안그러다가 점점 선을 넘곤 했는데,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들만의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구석이 있었다.
때론 내가 적절히 경계를 그어주면서
관계를 이어나갔다면,
그들도 조심해줬을 수 있지만
나는 싫은 소리를 하거나
내 주장을 내세우는 걸 힘들어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인게,
부당한 지시를 받았을 때
거절하기가 두려워서 그냥 수긍한 적도 많았다.
그러다보니 직장 내에서
하지 말아야할 부적절한 언행을 듣는다거나,
상사는 자신의 사적인 부탁을 하는 등
업무 외의 스트레스도 가중됐다.
그러면서도 나는 뚜렷하게
내 주장이나 경계선을 알려주지 못했다.
혹여나 불이익이 돌아올까 싶어서,
또는 그동안 그런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지금 이 1분만 참으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마음으로
묵인한 적이 많았다.
그러다보니
착하고 성실 직원이라는 칭호는 달성했으나
딱 그것 뿐이었다.
껄끄러운 업무나 제안도
쉽게 부탁할 수 있는 직원이 된 것이다.
내 자신이 어떤 말에 상처를 받고,
그 상처는 얼마나 지속되는지
이러한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질 않았다.
무례한 말을 듣거나
경계를 침범 당했을 때,
나는 더 감정이 들끓었고,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데에 집중했다.
그래서 나는 애써 웃어보이거나,
상처 받았으면서도 "괜찮아요" 라고 넘겼다.
물론 그 1분이 내 하루를 온전히 망쳐놨지만.
난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이자
프로페셔널한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나와 적이 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점점 나 자신과 적이 되어 갔다.
그동안의 내 썸 패턴들은
늘 비슷했다.
초반에는 상대가 적극적으로 잘 대해주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통제하거나,
본인 뜻대로 끌고가려고 했다.
그러다 자신의 뜻을 따라주지 않으면
나를 비난하거나 끌어내렸다.
때론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했다.
이 정도 시점이 오면
나도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관계를 끊어냈다.
그래서 제대로 사겨보기도 전에
진전되지 않고 끝난 경우가 많았다.
그나마 오래 관계를 이어간 케이스는
내가 많이 좋아해서 시작한 연애인데,
그럴 경우는 썸 패턴과는 정반대로
초반부터 상대의 무심함을 느끼면서도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나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가 결국 상대가 바람을 피우면서
헤어지게 되는 패턴이다.
이런 상황이 지겨워서
20대의 절반은 연애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20대 마지막 쯤에 만난게
지금의 남편이다.
물론 남편과의 연애도
내가 더 좋아하는 쪽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 연애했고,
결혼에도 성공했다.
이렇게 내 과거의 유년시절,
애착유형, 연애패턴들을 회고해보니
문제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통제에 익숙한 사람이고,
때론 그걸 사랑으로 착각한다.
나 자신과의 화합보다는
타인의 기분에 더 신경을 쓰다보니
'나'라는 개성이 없어지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쉬운 사람이 되었다.
남에게 맞추는게 편하다보니
내가 원하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제서야 깨달은 것은
결국 인정과 사랑과 위로를
타인에게서 얻고자 하는
의존적 성향임을 알았다.
그러다보니, 나에게 관심을 보이기만해도
쉽게 내 마음이 갔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보다는
나를 얼마나 좋아하냐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리고 그 관심을 잃고 싶지 않았다.
조금만 그사람의 애정이 식어보이면
나는 초조했다.
이런 상태로 연애를 하면
결국 결말은 안좋다.
물론 결혼도 마찬가지다.
'남자가 더 사랑하는 결혼을 해야
여자가 편하다' 라는 속설이 있는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진 않는다.
결혼은 로맨스의 연장이 아니다.
법률적으로 얽힌 관계가 되며,
각종 집안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함께 한 생명을 키워내면서
많은 역경을 이겨내야 하는 사이인 만큼
다양한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
남자 여자 서로가
비등하게 사랑해야 이 고난들을
함께 이겨내고 노력할 수 있다.
서로 신뢰하면서 존중하는 부부가
잘 이겨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남자만 더 좋아해서 결혼했다면,
점점 그 기울기는 한쪽으로 쏠린다.
기울어진 운동장은 더 기울어질 뿐이다.
물론 한 쪽이 안간힘을 써서 버틴다면
유지는 될 수 있겠지만,
버티는 쪽이 매우 괴로울 것이다.
그렇게 버티던 쪽이 결국 커뮤니티에
후기를 남기게 되고,
아직 미혼인 사람들은 그 글을 보고
결혼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각인된다.
이상적인 결혼을 위해서
제일 중요한 건 '나'를 알고
시작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를 모르고 시작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나를 갉아먹어 간다.
혹시나 지금 내가 겪는 상황이
늘 비슷한 패턴이라면,
더 이상 그 상대들을 욕할 게 아니라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왜 늘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지
생각해볼 때가 온 것이다.
당신의 유년시절은 어떠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