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할아버지에게 어떤 선물 받고 싶어?”
“음… 비밀이야.”
비밀이라니, 산타 할아버지는 멀리서 보이지 않아도 엄마 말을 듣지 않거나 고집부리는 아이, 우는 아이를 다 알고 있다는 말을 여전히 믿고 있는 건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갖고 싶은 장난감도 그런 산타 할아버지라면 당연히 알고 계실 테니까. 아이가 원하는 선물은 알아내지 못했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되었다. 7살 딸이 아직 산타 할아버지의 존재를 믿고 있다는 것. 그렇다면 나는 그 동심을 지켜주어야지. 아이들이 잠든 새벽 옷장 속에 숨겨두었던 택배를 뜯고 ‘말랑이 메이커’를 꺼내 포장을 한다. 유치원 방학을 하면 아이들과 친정에 가기로 했다. 페이스톡을 하며 나의 엄마는 오랜만에 만나는 손주에게 갖고 싶은 장난감이 있는지 물어봐주셨다. 일단은 그 장난감을 내가 먼저 선점했다. 네모 반듯한 장난감 상자를 포장하는 내 손은 역시나 서툴다. 평소엔 포장을 할 일이 거의 없다. 예쁘게 할 자신도 없고 결국은 뜯고 나면 쓰레기가 돼버릴 테니까. 하지만 이 선물은 엄마가 주는 게 아니고 산타가 주는 게 아닌가. 엉성하게 포장을 끝낸 선물은 다시 옷장 깊숙이 넣어 둔다.
“그런데 엄마 우리 집엔 굴뚝이 없잖아?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오시지?”
“할아버지 너무 바쁘셔서 창문으로 선물 던져 넣고 가시는 거 아닐까?”
“그럼, 엄마가 잠들지 말고 알아봐 봐.”
“할아버지 부끄러움이 많으셔서 누군가 깨어있는 집에는 선물을 안 주신다는데?”
“그래? 그럼 얼른 자야겠다.”
아이는 크리스마스까지 몇 밤이 남았는지 세어보고 있다. 아이는 언제 알게 될까? 크리스마스에 받은 선물들이 산타가 전해준 선물이 아니라는 걸.
6살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밤, 엄마는 내게 말했다. 이 세상에 산타 할아버지 같은 건 없다고. 나는 순간 너무 놀라.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얼음땡 놀이를 할 때처럼 순간 얼음이 되어 멈춰있었다. 엄마는 그런 나에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엄마의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 행사를 준비하며 각자 집에서 선물 하나씩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말도 서슴없이 했다. 포장하거나 꾸미는 것 없이 엄마는 그냥 사실을 이야기했다. 선물을 보내야 하는데 이왕이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걸 보내자고 했다. 카세트테이프 보관함이었다. 1000mL가 들어가는 우유갑 정도의 사이즈였다. 지붕모양 밑에 위, 아래도 두 칸이었다. 테이프가 많아야 10개 정도를 보관할 수 있었을까? 그런데 이게 우리에게필요한 거라고? 나는 필요 없는데 나는 갖고 싶은 게 아닌데. 이건 엄마에게 필요한 거라고 생각했다. 유치원에서 누군지도 모르겠는 산타가 나에게 건네준 원하지 않던 선물. 나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선물을 받고 기뻐하는 친구들에게 “너희들이 모르는 사실을 알려줄게”라며 엄마가 알려준 세상의 진실을 알려주지는 않았다. 산타가 없다는 사실 그래서 착한 어린이가 되어도 내가 원하는 선물을 받을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펐기 때문이다. 모두가 웃고 떠드는 크리스마스에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즐겁지 않았다. 울고만 싶었다.
그런데 엄마 산타가 이 세상에 없는 게 확실해? 내 눈에 보이지 않으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이 넓은 세상,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진짜로 산타가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산타 혼자서 전 세계의 아이들을 찾아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까 아직 나를 찾아올 순서가 아니었을 수도 있잖아. 엄마가 된 나는 아이들에게 산타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면 말할 수가 없어. 산타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아이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 내가 틀릴 수도 있잖아. 물론 크리스마스이브 밤, 아이들이 잠들고 몰래 선물을 꺼내 놓는 건 산타가 아닌 나야. 선물이 없어서 실망하는 아이들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 혹시 내가 착한 어린이가 아닐까 기억 속 과거의 잘못들을 떠올려보게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나에게 없는 것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고들 하잖아. 나의 어린 시절엔 산타를 믿는 동심을 지켜주려던 엄마 아빠는 없었어. 그렇지만 나는 내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가능하면 오래 지켜주고 싶어. 산타가 꼭 파란 눈의 할아버지일 필요는 없잖아. 할머니가 될 수도 있고 이모나 삼촌 나의 형이나 동생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엄마가 내게서 지워버렸던 산타라는 존재를 내 아이들 뒤에 그려 넣어주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