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
‘교육’으로 행복하지 않단다. 학교에서 잠자는 아이들이 ‘시간’이 아깝다 한다. 부모들도 힘든다. 돈은 쓸 대로 쓰고 자녀에게 ‘희망’의 밝은 얼굴을 볼 수 없으니.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과연 학생부종합전형이 금수저를 위한 것이라 없애야 하고, 정시란 이름의 대학수학능력고사로 100퍼센트 치러야 ‘교육다운 교육’이 되고 공정한 대한민국이 될 것인가?
과연 그렇게 하면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머물지 않고 막 올라갈 수 있을까? 학생들이 그날그날 ‘숙제’에 얽매여 생각할 틈이 없고, 깊이 있는 배움으로 나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
우리 자녀, 학교 학생들의 ‘배움’이 즐겁지 못하다. 과정이 무너져 있고 즐겁지 않기 때문이다. 늘배움의 수시로 독서’, ‘발표나 토론’, ‘논술’이나 ‘여행’, 봉사, 동아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정기고사 탓이 크다. 생각할 틈이 없으니, 깊이 있는 배움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배려하고 서로 배움으로 주고받는 능력도 기르기 어렵다.
줄세우기 ‘결과’ 위주 일제고사를 내세운 ‘교육’으로 학생들이 절망하고 있다. 살기 싫어하고 죽음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도 등급이나 석차 줄세우기를 여전히 내세워야 할까? 한탕한탕(한방)에 좌우되는 정기고사를 두 달마다 치르니 그 틈새로 사교육이 기승을 부릴 뿐이고 학습노동에 시달리게 될 뿐이다. 중3이나 고3에 올라가면 1년이나 한 학기 이상, 학교 수업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학생들이 한곳에 모여 있을 뿐, 맞춤형 배움을 해야 함에도 고3의 경우 ‘수능교육방송교재’에 파묻혀야 하기 때문이다.
고교졸업자격을 묻자면 1회 치르는 검정고시를 쳐야 하겠지만, 12번의 시험을 치른 상태로 또 한 번의 ‘국가주도’ 대학수학능력고사를 긴장 속에 풀어야 한다. 다른 나라를 아랑곳하지 않고, 영문도 모른 채 앉아서 씨름하게 하는 ‘교육자’들이 생각하는 ‘교육’이 이런 것인가? 학학벌 사회가 대학입시경쟁의 원인이라고? 과연 그럴까? ‘하늘성채’ 드라마에서 보듯이 ‘학벌’은 깨어지게 마련이다. 저마다 하고 싶은 일을 내세우는 시대 흐름을 읽어야 한다. ‘관심사’를 어릴 적부터 북돋우고 즐기며 ‘배움의 즐거움’을 누리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느끼고 생각하며 뜻을 다질 수 있도록 도우기만 해도 누구나 스스로 길을 찾아갈 것이다. 학생의 관심사란 무엇인가? 흔히 말하는 얘깃거리, 생각거리, 주제라 말할 수 있다. 일찍이 15살이면 뜻을 세운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학생들이 뜻을 세워 자기 관심사를 진로, 진학의 처지에서 살찌우고 ‘배움의 즐거움’을 누릴 수있도록 맞춤형 배움을 가로막는 ‘줄세우기’ 일제고사를 없애자. 학교 정기고사를 12번씩 봐야 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공정한 과정에서 정의로운 결과를 얻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변별의 뜻이 무엇인가? 줄세우기인가? 그들의 능력을 찾아 북돋우고자 함인가? ‘돈’이 드는 사교육을 그만 두자. 답은 어렵지 않다. ‘살맛’ 나는 산배움을 모든 학생들이 누리도록 모든 학생들이 동시에 치르는 줄세우기 수시 교과전형의 굴레인 정기고사를 없애고 대입 정시 자료였던 수능을 없애자.
절망에서 배움 희망으로! ‘과정’을 ‘결과’보다 앞세워야 한다. 2달마다 시험을 치르며 과정이 시원찮으니 결과도 좋지 않을 수밖에. 대한민국에서는 ‘고등학교’가 중요하다. 그래서 잠을 자지 않게 하려는 고교학점제를 말한다. 이것은 학생들의 관심사를 살리는 고교주제학점제로 나아가야 한다. 어차피 대한민국을 바꾸는 것은 과정을 중시하며 늘 최선을 다하는 늘배움 사회로 바꾸는 것이 바른길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왜 소득이 3만 달러에서 더 올라가지 못할까? 생각할 틈, 깊이 있는 배움으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육받을 권리’로 잘못 이끌어진 헌법 31조를 바로잡아 ‘배움을 누릴 권리’를 마련해야 한다.
김두루한(참배움연구소장,duruhan@hanmail.net,0103705-6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