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중고거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미캔디 Jan 12. 2022

메루카리에서 당근마켓으로


나는 일본에서 중고 거래를 처음 시작했다.


처음 나에게 중고 거래하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은 치바의 셰어하우스에서 만난 하우스메이트였다. 10살 연상의 일 잘하는 커리어우먼이었던 그녀는 무엇이던 깔끔했다. 일 처리도 깔끔했고 인간 관계도 군더더기 없이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분의 방에 놀러 간 나는 깔끔히 정돈된 방을 보게 되었는데 자취 경력 10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도 물건이 별로 없었다. 당연하게도 방은 모델하우스같이 깨끗했다. 나는 그분께 왜 본인 소유 물건이 적냐는 질문을 했다. 그분은 중고거래로 필요 없는 모든 것을 판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메루카리라는 앱을 추천해주었다.


메루카리는 일본의 중고 거래 애플리케이션이다. 우리나라의 중고나라나 당근마켓 같은 앱이지만 메루카리는 중간 수수료 10%를 떼 가면서 안전 거래 관리자 역할을 맡는다. 상품이 도착하고 상품을 확인한 다음 [구매 완료]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돈이 지급되지 않는다. 위치 기반이 아니기 때문에 물건은 100% 비대면으로 판매되고 무조건 택배를 이용해야 한다.


메루카리로 물건을 판매하고 수수료와 택배비를 뺀 나머지 금액은 메루카리 안에서 쓸 수 있도록 잔고에 남는다. 물론 이 금액은 계좌에 현금으로 다시 넣을 수 있지만 열 받게 이체 수수료를 또 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판매 이익을 현금화한 적이 없다. 그 대신 편의점이나 음식 체인점, 슈퍼에서도 마치 네이버페이처럼 메루페이를 쓸 수 있도록 만들어서 쏠쏠한 재미를 주었다. 나처럼 조금씩 음식 재료를 사거나 집 앞 규동 체인점을 자주 가는 사람에게는 낡은 물건 팔아 음식값이 굳는 행운의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나는 빠르게 중고 거래 앱에 스며들게 되었다.


한국으로 귀국 후 나는 유명한 당근마켓을 접했다. 너무 유명해서 한 번쯤 사용해보고 싶었던 플랫폼이었다. 이름도 당근이라니… 정말 귀여웠다. 어서 빨리 나도 당근을 한다고 외쳐보고 싶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서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해서 첫 판매 글을 작성했다. 첫 판매 게시 물건은 친척으로부터 선물 받아 한 번도 게임해보지 않았던 체스 판이었다. 고급스러운 원목 체스 판이어서 나름 합리적으로 5만 원으로 책정해서 내놓았는데 며칠 동안 연락이 없었다. 나중에 친구에게 왜 안 팔리는가 하소연을 하자 친구는 진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당근마켓은 후려쳐야 해.”


그래서 복어처럼 가격을 2만 5천 원으로 후려쳤다. 그랬더니 연락이 왔다.

근처 역 앞에서 보자는 채팅과 함께 약속 시간이 정해진 것이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거래할 때 거래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없어서 은근히 떨렸다. 어떤 사람이 나올까? 왜 이 물건을 사는 걸까? 거래자를 기다리는 동안 궁금한 점이 퐁퐁 쏟았다. 거래자를 기다릴 때 항상 드는 궁금증이다. 성별이 궁금할 때는 그 사람의 판매 목록을 보면서 살짝 추측도 해본다.


중고거래를 시작하고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무엇이든지 사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중고 물품을 뒤져보게 된다. 또 집 안에 쌓아 두고 쓰지 않는 물건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이것을 팔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어떻게 하면 사진이 잘 나올지 어떻게 구매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지 생각한다. 하물며 우리 가족은 나에게 쓸데없는 물건을 나에게 넘기는 습관이 생겼다. 쇼핑에 실패해도 내가 재판매를 해줘서 마음이 편안한 것 같았다.


사실 중고 거래는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이용하는 건 아니다. 그러기엔 가격을  많이 내려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기도 하다. 상품을 좋아 보이게 사진을 찍어야 하며 상품의 길이나 부피도 설명해야 하고 가끔 진상도 만나서 기분 안 좋을 때도 있다. 내가 명품을 판매하는 사람도 아니고 집 안에 있는 물건들 판다고 괜찮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면 종량제 봉투에 들어갈 물건들이 어떤 사람에게는 필요한 물건으로 바뀌는 것을 볼 때마다 참 중독적이라고 느낀다. 소비만 해온 내가 지구를 위해 눈곱만큼이라도 노력한 것 같다. 그리고 조금씩 물건이 줄어 깔끔해진 집을 볼 때, 나는 중고 거래 앱을 계속 이용할 것이라고 느낀다. 나에게 중고 거래 앱을 소개해준 그분의 깨끗한 살림살이처럼 나도 양심에 걸리지 않는 정돈쟁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