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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캔디 Jan 15. 2022

중고마켓 아이디는 어떻게 짓지?

내 아이디가 박춘식이었던 이유

일본에서 당근마켓 앱을 사용할 수 없었던 나에게 대면 거래 방식이란 미지의 세계였다. 부끄러워하는 일본인들 옆에 있다 보니 그 부끄러움이 전염이라도 된 것인지, 처음 보는 사람과 쉽게 만나서 거래한다는 것에 왠지 모를 부담을 느꼈다. 이름도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나서 앞에서 물건을 팔고 사야 한다니! 나는 분명 "앗 넵" "앗 여기요" 를 총알처럼 말하면서 후다닥 거래를 끝낼 것이다. 나는 대면 세일즈를 막 시작한 레벨1의 판매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넷을 통해 당근마켓 진상들이 있다는 걸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사기 당한 친구의 경험담까지 들어서 앱상에서까지 어눌하게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아이디를 설정해야 하는 순간 무조건 강해보이는 이름으로 짓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름 중 가장 강해보이는 이름은 우리 이모부 이름이었다. 그래서 이모부의 이름으로 아이디를 지어버렸다.



아기자기 귀여운 앱 배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지만 듬직한 이모부의 이름을 빌려 최소한 무시는 안 당하겠지싶어 마음이 놓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대면거래를 한 번도 안 해본 나의 쓸데없는 걱정이었지만 당시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이모부의 이름은 너무 강력했던 나머지 나를 깜짝깜짝 놀래키곤 했는데 그건 바로 당근마켓 측에서 알림을 보낼 때였다. 당근마켓은 나를 서슴없이 이모부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박춘식님~ 전설의 낚시꾼을 아시나요?"

"박춘식님! 올해의 이웃으로 선정되신 것을 축하해요!"

"박춘식님, 땡땡님과의 거래 어떠셨나요?"


평생 다른 사람 이름으로, 그것도 이모부 이름으로 불릴 줄 몰랐던 나는 알림이 올 때마다 눈을 둥그렇게 뜨며 놀랐다. 나를 부르는 것 같은데 날 가리키고 있지 않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알림 받을 때마다 이모부 생각이 나서 재미있기도 하고 내가 아이디를 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짝 황당하기도 했다.


저 아이디가 날 당황시켰던 건 알림이 올 때 뿐만이 아니었다. 가끔 친절한 구매자를 만나면 "박춘식님 맞으시죠?" 라고 확인하며 물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큰 인지부조화를 느꼈다. 아이디 박춘식이 맞지, 암 하며 어색함을 애써 무시하는데, 구매자는 나를 친근하게 "춘식님 여기요"하면서 돈을 건내주는 것이다. 추, 춘식님이라고? 이렇게 친근하게 이모부 이름으로 불리다니, 평생동안 이모부 이름을 입에 담은 적이 없는 나에게 으악 소리가 나는 경험이었다.


나도 채팅을 하고 직거래를 할 때면 아이디로 그 사람을 예측하곤 한다. 채팅 말투와 판매 목록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이럴 것이다라며 추측을 하지만 실제로 예상과 다르면 사실 놀라고 만다. 예를 들면 아이디 '반짝반짝 작은별'님은 명품 브랜드 열쇠고리와 파우치를 일괄로 구매한 분인데 아이디와 구매 목록을 보고 당연히 여자일거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거래 현장에 나타난 건 젊은 남자였고 꼼꼼하게 상품을 확인하더니 그대로 쿨거래하고 떠나셨다. 또 다른 예로 아이디 '개포동토박이' 님은 항상 귀여운 이모티콘을 보내며 애교 넘치는 말투로 채팅을 했는데 막상 만난 분은 깔끔한 정장 수트를 입은 장년의 신사였다. 그 분은 오히려 내가 '박춘식'이라는 아이디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신 건지 놀라고 말았지만.  


나조차도 내 아이디로 혼란을 겪는 사람인데 사람들의 아이디를 보고 개인적인 예측을 신뢰해버린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예측이 맞을 때도 있지만 와장창 틀려버릴 때도 많다. 그래서 직거래는 재미있는 것 같다. 누가 나올 지도 모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니까 복불복이라서 항상 기대하는 맛이 있다고 해야할까. 우리 집 주변에 이런 사람이 사는 구나하며 거래 한 건이 하나의 에피소드로 자리잡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누가 당근마켓을 처음 시작한다면, 아이디는 신중하게 불려도 놀라지 않을 이름으로 지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특히 이모부 이름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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