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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미캔디 Feb 10. 2022

이걸 산다고?

어떤 것이 팔릴지 모른다


대학교 졸업이 확정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두꺼운 전공책을 중고마켓에 올리는 일이었다. 손에 들면 무기가 되는 전공책을 굳이 소장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얼른 사진을 찍어 중고마켓 앱에 올렸다. 전공책은 정말 잘 팔리는 아이템 중 하나였다. 신입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비싸기 짝이 없는 책들을 사야 했고 그 책들은 하필 또 외국 책이라 오직 학교 서점에서만 팔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고마켓에 싼 가격에 내놓으면 나의 얼굴 모르는 착한 후배들이 구매를 해줬다. 전공책, 대학교 레포트 용지, 대학교 이름이 쓰여 있는 이력서 등은 다음 학기까지 기다리면 바로 팔리는 아주 좋은 아이템들이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을 파는 건 쉬운 일이다. 전자 기기나 생활 용품은 시세를 낮추고 기다리면 사람들이 문을 두드린다. 아니면 특정 마니아 층이 있는 물건이나 특정 분야에서 필요한 것들은 누군가가 사준다. 내가 팔았던 대학교 물품들처럼 말이다. 나의 경험상, 중고품은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고 생각한다. '잘 팔릴 것 같은 것'과 '누군가는 살 것 같은 물건'과 '이건 누가 사냐'라고 생각되는 물건... 


'이건 누가 사냐' 물건에 대해 간단히 말하자면, 작동은 하지만 솔직히 누가 쓸지 감도 안 오는 물건이다. 혹은 아예 사용처를 모르겠는 경우에 해당한다. 물건을 보고 "이걸로 뭘 해?" "누가 이걸 써?"라고 생각된다면 그것이 '이건 누가 사냐' 물건이다. 이 물건은 이사를 자주 하는 사람에게는 잘 발견되지 않고 물건을 잘 버리지 않는, 혹은 못 버리는 사람들에게 많이 발견된다. 가까운 예로 우리 가족이 있다. 


우리 가족은 웬만해서는 물건을 잘 버리지 않고 고장 나도 고쳐 쓰며 무엇인가 모으는 컬렉터 기질까지 있다. 당연하게도 집에는 아주 많은 물건이 쌓여있었다. 심지어 내가 초등학교 때 쓰던 소고나 어린이용 스킨스쿠버 장비도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귀국 후 포화상태인 집에 여백을 조금이라도 주기 위해 중고거래를 시작했다. 

그리고 물건들을 팔면서 아주 놀라운 일을 목격했다. '누군가는 살 것 같은 물건'보다 '이건 누가 사냐 물건'이 더 빠르게 팔리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던 것이다! 판매글을 올리면서도 이걸 누가 사냐며 가족들한테 한 마디씩 핀잔을 들었는데, 구매 희망 챗이 날아올 때 놀라움을 넘어 살짝 의문까지 들었다. 


"이걸 산다고?"


지금부터 내가 판매한 세 가지 '이건 누가 사냐' 물건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첫 번째 물건은 악마의 눈이 그려진 터키 장식품이었다. 악마의 눈의 모양은 아래 그림을 참고하면 된다.

터키 악마의 눈

파란색 동공가 돋보이는 눈이 주렁주렁 달린 장식품을 보면서 난감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디 터키 음식점에서라도 쓰이지 않을까 하여 당근마켓에 올려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이럴 수가, 1분 만에 두 명에게 구매 문의글을 받은 것이다. 이건 정말 안 팔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얼떨떨한 마음을 뒤로하고 구매자에게 바로 감사해요 이모티콘을 날려주었다. 안 팔릴 거라고, 매력적인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한 게 나 자신만을 기준으로 삼은 판단이 아니었던가, 나는 반성하고 바로 전투적으로 판매할 것을 다짐했다.


두 번째  '이건 누가 사냐 물건'은 아빠가 대만 거래처에서 받아 온 접시 장식이었다. 접시 가운데 그려진 큰 꽃과 빨간색의 비비드 한 컬러가 눈에 띄는 접시였다. 우리 집에서는 안방 서랍 위에 10년은 넘게 방치된 채로 살아왔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맘에 또다시 마켓에 올려 보았다. 이 접시 장식품은 한 달 정도는 팔리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작스럽게 네고 문의를 들어왔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콜을 외쳤다. 눈이 아플 정도로 화려한 장식 접시가 그쪽에서는 눈길이라도 받으면서 방을 꾸미고 있길 바랄 뿐이다.


세 번째 물건은 미니 목각 불상 세트다. 이것 역시 부모님이 누군가에게 선물 받아온 것인데 아주 깊은 서랍 구석에 비치되어 박물관 유물처럼 깨끗하게 보존되고 있었다. 불상을 갖다 준 엄마조차도 이건 정말 안 될 것 같다고 절레절레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나는 실낱같은 희망으로 조금이라도 잘 나온 불상의 얼굴 사진을 고르며 글을 올렸다. 이미 터키 장식품이 팔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뭘 살지 예측할 수 없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것 역시 누군가에게는 팔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 동네 아주머니가 구매하고 싶다고 채팅을 걸어왔다. 기쁜 마음에 관세음보살 외치며 바로 콜 했다. 


뭐가 팔릴지 모른다. 정말이다. 내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 물건이 남에게는 갖고 싶은 물건일 수도 있다. 버릴까 팔까 고민하고 있다면 고민 없이 바로 팔라고 강력하게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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