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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질하다 보면 너무 몰입해서 시간이 가는 것도 못 느끼고 현망진창 될 때가 많다.
(현망진창 : 엉망진창 + 현생, 내 생활이 엉망진창 될 만큼 덕질에만 집중한 상태)
그런데 가까워 지려 할수록 멀게 느껴지는 덕질이다. 덕통사고보다 더 큰 사고의 현장인 현망진창 상태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게 아닐까? 도달할 수 없으니까. 왠지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가능성의 늪에 빠지는 것.
(덕통사고 : 덕질 + 교통사고,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듯이 갑자기 최애가 마음에 들어와 팬이 될 수밖에 없게 된 사건)
밸런스를 맞추어가며 덕질하려면, 라이트 하게 해야 한다고들 한다. 그리고 덕질을 포함한 다른 취미 3가지를 두는 게 좋다고도 조언한다. 하긴.. 가까워지려 하기보다 평행을 유지하는 게 좋긴 하다. 현망진창 되어봤자 인생은 각자의 책임이니까. 그런데...
그게 되나? 적당히 좋아하는 게?
(DRAMARAMA - MONSTA X)
아 그렇다고 덕질까지 시니컬하게.. 하는 건 완전 반대. 가사처럼 난 그게 불가능함. ㅎㅎ 적당히가 안되니까 이런 생각을 하겠지..
최근에 읽고 있는 책(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 프리초프 카프라 과연 내가 이 어려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ㅎ)에 명상은 무사처럼 가장 기민한 상태라고 한다.
유튜브에 명상하는 방법을 검색해서 나오는 영상들을 보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생각이 떠올라도 막는 게 아니라 그냥 그 생각이 떠올랐구나. 어디가 불편하면 아 여기가 불편하구나. 하면서 호흡에 집중하라고 한다.
우울증으로 심리상담받을 때에는 그런 말을 들었다. 밤에 불 꺼진 방에서 잠 못 들어 힘들 때에는 눈에 보이는 세 가지를찾아 이야기하고 우울하다는 생각을 억제하지 않되, 현재 어떤 공간에 있는지를 인식하는 것으로 인지를 돌리는 방법을.
명상은 그 누구보다도 기민한 상태로 나와 내 주변을 인식하고 고요하게 있는 것인가 보다. 아직 명상다운 명상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호흡에 집중하다 보면 긴 시간이 한참 지나있기는 하다. 그리고 그 후엔 걱정이나 두려움에 파묻혀있던 내가 흙더미에서 고개를 빼어내어 숨을 쉬게 되는 기분이 들기는 하다. 그리고 명상 전만큼 걱정되거나 두렵지는 않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걱정거리와 두려움거리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현실에 산재해 있는 것들이니까. 다만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게 되기도한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어떤 장애물, 바위 같은 것들이 두려움 때문에 더 큰 바위로 인지하지 않게 된다. 바위의 크기를 함부로 더 키우지 않는 것이다.
명상을 반복적으로 자주, 주기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만 잘 되지는 않는다. 해야 하는데...
최근명상 후에 떠오른 생각은 이전의 나에게 가수라는, 싱어송라이터라는, 아티스트라는 꿈이 무엇이었나? 였다. 그때 내가 스스로 한 대답은 '누군가의 꿈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래서 그게 대체 어딜 향해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느꼈다. 너무 포괄적이어서 그랬을까.
초등학생 때 '환상 속의 그대'의 가사를 보고 정말 소름 끼친 적이 있다. 망상에 쩔어만 있던 내 머리를 망치로 내려쳤달까. 지금도 가끔 망상에 쩔게 될 때면 이 가사를 떠올린다.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에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에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환상 속의 그대 - 서태지)
서태지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 그전까지는 노래를 좋아하는 아이였으나 어떤 계기로 가수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정말 아직도 선명하게 그때의 그 느낌들이 느껴진다.
그때는 동네 문방구에서 불법으로 여러 곡들이 짜깁기된 2,000원짜리 테이프를 사서 듣거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원을 녹음해서 들을 때였다. 물론 씨디도 있었고 들을 수 있는 씨디 플레이어도 있었다. 차 타고 번화가에 나가면 정규테이프를 살 수도 있었지만 나에겐 그럴만한 돈이 없었다. 무튼 그때 들은 곡은 '전사의 후예 - H.O.T'이다. 그때 그 곡이 나에게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친구는 별로 없었고 혼자 놀거리도 없던 때였다. 안방에 누워 불 꺼놓은 늦은 오후에 커다란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고 지금 생각하면 싸구려 이어폰으로 전사의 후예를 들을 때. 그때 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도 가수가 되고 싶고 노래 부르고 춤추는 게 좋았지만, 이때 정말 진심으로 이야기가 담긴, 이야기를 노래하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음악을 하고 싶었다.
1. 장면이 그려지는 이야기
2. 이야기에 메시지가 담긴
3. 장면이 그려지는 메시지가 담긴 이야기를 노래하는 음악
을 하고 싶어서 가수가 되고 싶었다.
요즘도 큰 이슈가 되는,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였던 전사의 후예. 거기서 받던 위로가 숨통을 틔이게 했었다. 그 이후로는 자우림, 이수영의 노래에서 받던 공감과 위로들이 있다.
그렇게 누군가의 꿈이 되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던 꿈이 나중에는 따돌림으로 오염되었지만. 누군가에게 복수가 될 수 있는 성공을 꿈꾸는 것으로 변질되었지만. 그리고 이루지 못했지만.
다행인 것은 지금은 그들을 떠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이 변질된 것에 대한 책임도 묻지 않는다.
아 물론 용서한 것은 아니다. 그들이 내게 먼저 용서를 구해도 나는 용서할 생각이 없다. 구할리도 없지만. 잘못했다고 생각하지도 않을테니. 그 어떤 것으로도 눈눈 이이가 될 수 없다. 물론 자신들이 뿌린 것을 쓴 열매로 거두게 되겠지만. 무튼 지금은 그들을 떠올리지 않는다.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17년 가까운 시간 동안 몸이 아프려면 꼭 그들이 내 꿈에 나왔다. 악몽. 나와 내 엄마까지 학교를 넘어 그 작은 동네에서 괴롭히고 무시하고 따돌림 당했던 그 시간들이 몇천 개의 바늘로 나를 찌르는 고통으로 남아있다. 그 트라우마는 오래갔다. 그러나 인간은 늘 그렇게 악하고 끔찍한 존재인줄로만 알고 살던 내게도 좋은 친구들이 생겼고 이 친구들은 나의 고슴도치 같던 모습, 내게 꽂힌 바늘들로 무장하고 웅크려 있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려주었다. 지금도 여전히 감사하고 아름다운 친구들이다.
무튼, 나는 요즘 꽤나 괴로운가보다. 꿈을 꾸는 게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어서. 이전처럼 인생을 걸고 꿈을 꾸는 게 부질없다 느껴서. 이루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이제는 이루지 못할 현실에 발붙이고 있어서. 이런 나 스스로가 꽤나 괴롭다. 이런 시니컬한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다.
끝으로, 내가 썼던 시를 한번 더 읽는다. 나는 가끔 이 시를 읽는다. 자화자찬이라기보다 조금 슬퍼서. 가끔은 힘이 되어서. 그런데 또.. 자주 슬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