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흐름 기록 : 애정
# 복기 > 오답노트와 수정 > 받아들이기, 한 숨 쉬기 > 내면의 어린아이 > 한 김 빼기 > 지치지 않는 애정
퇴사를 준비하면서 인수인계서를 작성하며 복기하다 보니 정말 많은 일을 미친 듯이 처리해 왔구나.. 싶다.
복기. 다시 돌아보고 오답노트를 작성하고 수정하는 것은 일이나 공부에만 있는 게 아닌데, 생각보다 내 하루를 복기하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퇴근하고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저녁을 폭식하고 누워서는 유튜브 보다가 끝내는 하루가 반복된 지 꽤 되었다. 특히 겨울엔 더욱 그러하다.
되돌아보아도 괜찮다 여겨질 작업물에 대한 수정요청이 들어올 때면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내가 하는 일에 너무 큰 애정을 쏟아서 그런 거라던데. 그럼에도 나는 내 작업물에 애정을 쏟지 않는 게 더 어렵다.
이럴 때는 그저 조금의 시간을 주면 참 좋으련만. 수정도 새 작업도 지금 당장, 되도록 빨리, 최대한 빨리해 달라고 하니 마음이 껄끄럽다. 사실 한 숨 쉬고 잠깐 리프레쉬하면 참 별거 아닌 일이고 금방 수정하고 작업을 새로 할 텐데 말이다.
복기하니까 생각나는데, 이전에 한참 내면의 어린아이, 상처받은 채 어른이 되지 못한 내면의 나를 찾는 것에 열중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심리상담을 받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내면의 어린아이를 발견한다 해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때로 돌아갈 수도 없다. 찾아도 위로해 주어도 결국 지금 바꿀 수 있는 과거 따위는 없다.
다만, 어린아이에 대해 토로해야 내면에 압축되어 짓눌린 화의 뚜껑을 열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압력밥솥처럼, 김을 빼야 열어 볼 수 있다. 내면의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게 김을 빼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종종 동료 직원들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마."
맞다. 그 덕에 나는 허리디스크도 더 심해지고 의자에서 잘 일어나지 않아서 몸에 안 좋은 건 다했다. 오프라인 이벤트를 준비할 때면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여서 더 많은 걸 준비했고, 그 외에도 라이브 날짜를 맞추기 위해서 주말에도 일하고 야근도 했다.
앞으로는 나도 내 건강을 지키면서 일할 것이다. 최근에 코로나 이후로 정말 크게 아팠는데 그 이후로 체력이 회복이 안된다. 벌어먹고 살 몸뚱이 하나가 망가지면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하지만, 여전히 난 내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거다.
나는 왜 어리석다는 말을 듣고도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까 싶어서 생각해 보았는데, 노래를 했을 때 더 잘 부르는 곡 더 보여줄 무대들이 많이 있더라도 어쨌든 지금 이 노래를 부르는 이 무대 위에서는 그 누구보다 최선을 다하고 '이 무대는 나만이 해낼 수 있어'를 보여주어야 했다. 이런 게 아직도 체득되어있나 보다.
지치지 않는 애정, 지치지 않는 기대, 희망, 미래 같은 것들을 늘 품고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다만 떳떳하게 원하는 곳에 애정을 쏟고 싶다. 그게 꼭 합리적일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한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봤자 결국 나중에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선택한 게 어디 한둘인가.
냉소적으로 내가 하는 일에 애정을 쏟지 않는 것보다는 애정을 쏟고 오답노트를 작성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느 날엔가는 나도 이 모든 것에 대해 초연해질 수 있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