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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dyton Sep 01. 2024

아무도 모르는 숲

집에서 걸어서 20분이면 숲에 도착한다. 도심 가까이에 있지만 걸어 들어갈수록 숲은 깊고 고요해진다. 숲의  한가운데에 있으면 그곳이 아무리 전에 여러 번 와 본 곳이라 해도 아무도 모르는 공간에 있는 기분이 든다. 로스 테레노스를 디자인한 건축가 타티아나 빌바오(Tatiana Bilbao)도 이 같은 생각을 말했다고 한다. 나무와 숲에 둘러싸인 지극히 목가적인 상태가 주는 정신적 이완을 즐기지만 경사가 심한 지형을 몇 시간에 걸쳐 꾸준히 오르내릴, 목표 지점을 향한 집요함이 내겐 없다. 느린 호흡과 낮은 심박수를 유지하며 천천히 길을 따라 걸을 뿐이다.



가랑비도 장대비도 아닌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모호한 빗줄기가 오락가락하는 날들의 연속. 장마철은 이런 유형의 산책에 가장 적기다. 100%에 수렴하는 습도로 땀이 나도 증발하지 않는다. 목덜미를 타고 내리는 축축한,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은 빗방울이 체온을 식혀준다. 낮동안 달아오른 지열이 식으면서 산안개는 무섭게 짙어졌다 이내 흩어져버리길 반복한다. 바로 전까지 보였던 길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마치 주술에 걸린 것 같은 아찔하고 몽환적인 순간을 마주한다. 비에 젖은 수풀과 나무가 뿜어내는 비릿한 숲의 내음이 오래된 흙냄새와 섞여 코로 숨을 들이켤 때마다 진한 여름의 향기가 난다. 시린 바람에 귀가 얼얼한 한겨울의 어느 날 문득 코끝에 맴돌아 여름을 향한 강렬한 열망을 자아내는. 세상의 어떤 조향사도 만들어낼 수 없는 알싸한 여름의 향수.



비와 바람의 마찰로 맑은 날 경쾌하던 새의 지저귐이 선명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멀리 보이는 나무의 둥지에서나 바로 뒤에서 푸다닥 거리는 젖은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들면 작은 새의 실루엣이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개구리와 확연히 구분되는 낮은 두꺼비의 울음소리가 느린 발걸음을 꽤 오래 따라온다. 녀석이 대체 어디 있나 싶어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시선을 떨구니 배수로에 빠진 두꺼비 한 마리가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작은 동물들은 이렇게 좁은 배수로에도 갇힐 수 있나 싶어 쓸데없는 연민이 샘솟았다. 우산 끝으로 두꺼비의 뒤를 톡톡 쳐서 배수로 중간중간 일정하게 계곡물이 유입되는 곳까지 에스코드해서 흙의 품으로 보내주었다. 아마 내가 아니어도 녀석은 무사히 탈출했겠지만 조금이라도 덜 헤매도록 도와준 거라 생각하자. 두꺼비의 등이 볼록 부풀어 오르면서 뜀박질하는 걸 보고 있자니 내 심장도 세차게 뛰어오르는 착각이 들었다. 그토록 작고 여린 너도, 숨 쉬는 것이 이토록 당연했던 나도 살아있다는 걸 다시 깨닫는다.



안녕, 유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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