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지 서랍을 열 손잡이가 필요했다. 문의 끄트머리나 대강의 어딘가를 잡지 않고 정확히 손잡이를 쥘 수 있고, 전면의 여기저기에 손자국을 남기고 싶지 않아서다. 언제부터인가 가구에 손잡이가 사라지고 있다. 미니멀리즘의 영향이라고 쉽게 간주할 수 없는 이유는 가격대와 브랜드에 관계없이 가구 카테고리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패턴으로 보여서이다. 생산자가 판매가를 낮추기 위해 부자재를 빼버리고 제작 공정을 간소화해 버린 걸까? 아니면 정말로 사람들이 더 이상 손잡이를 보거나 이용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일까? 디지털 영역에서야 넘쳐나는 정보와 기능적 요구사항으로 인해 디자인 복잡도를 낮추고 있다지만 실물 영역에까지 번져 흐르는 지나친 단순화가 반갑지만은 않다. 주거, 상업, 공공의 구분없이 모든 공간이 각기 마땅히 가져야할 개성을 잃고 자기 복제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실제보다 넓게 보이게 만든다는 새하얀 푸시풀 도어 붙박이장을 한쪽 벽면 전체에 시공해 두고선 어디를 눌러서 열어야 하는지 헛갈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대형 붙박이장은 없지만 서재의 책장에 세 개짜리 푸시풀 도어가 달려 있어서 손잡이를 달기 전까지는 책장 문을 열 때마다 매번 내 지능을 의심해야 했다.
덕분에 그동안 많은 가구의 문에 손잡이를 달았다.손잡이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낡은 경우도 있었지만 애초에 손잡이가 달려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책장 하단의 서랍, 침실 협탁과 수납장, 욕실과 다용도실의 수납장, 세탁실의 붙박이장까지. 욕실 수납장에 구멍을 뚫었는데 플라스틱 가루가 나와서 습기에 강한 ABS 소재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침실 내창은 루버 스타일의 미닫이 창문인데, 역시 손잡이가 달려 있지 않아 창틀 끝을 잡고 열어야 했다. 아침에 일어나 가볍게 창문을 여는 상쾌함 대신, 애써 두 팔로 무거운 창을 밀어야 하는 세상 귀찮음. 손잡이는 하루를 여는 루틴의 시작을 긍정적으로 바꿔주었다.
유행이라는 미드센추리 모던 스타일과는 전혀 관계없이 실용적인 이유로 집의 고정된 부속이나 집기에 스틸 재질이 많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손잡이를 무광 실버나 블랙 컬러로 파우더 도장된 철제 재질로 선택했다. 플라스틱은 가볍고 싸지만 그만큼 무게감이 없고, 저렴하게 마감처리된 디테일이 아쉬운 편이다. 원목 손잡이는 목재의 색상이나 나뭇결을 맞추기 까다로워서 원산지가 같은 수종이 아니라면 시각적인 일관성을 기대하기 힘들다. 요즘은 사람들의 취향이 꽤 다양해져서 인테리어 부속 쇼핑몰에서 가죽, 유리, 세라믹과 금속 재료가 섞인 독특한 손잡이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이케아 손잡이를 구매해 달아 주었는데 필요한 수량만큼 재고만 확보된다면 가격 대비 품질이 꽤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