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dyton Sep 29. 2024

오래된 불빛


책상 한편에 꽤 오래된 스피커가 있다. 7년 전쯤 Bandi라는 이름으로 나온 JBL의 블루투스 스피커이다.


이 정체성이 모호한 스피커의 불편한 진실은 이렇다.

포터블로 출시되었음에도 크기가 작지 않고 들고 외부로 가지고 나가기에는 무게가 있다.

9개의 버튼이 하단 조작부의 무려 3면에 흩어져 있다.

휴대폰 연결 시 보이지도 않는 후면부 버튼을 눌러 페어링을 해줘야 한다.

충전 케이블이 마이크로 5핀이다.


그래서 스피커가 아닌 조명으로 이 녀석을 이용한다.

유려한 풀 알루미늄 바디를 가지고 있다. 아마 그래서 무거운 모양이다.

커버조차 잘게 타공한 알루미늄 패널인데 타공된 홀로 사운드와 불빛이 새어 나온다.

4단계의 조도 조절이 가능하고 색온도가 무척 따뜻하다.

기획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반딧불을 연상시키는 아련한 감성이 3%쯤 있다.

책을 펼치면 반사적으로 불을 켜는데, 보조 독서등으로 집중을 도와준다.


내 귀는 음질에 예민한 편이 아니라서 사실 사운드의 품질이 어떤지는 잘 느끼지 못하겠다. 러닝할 때 가끔 끼는 에어팟 정도도 내겐 너무 훌륭한 편이라서. 회사에서나 집에서나 일 할 땐 아예 음악을 듣지 않는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땐 낮고 조용하게 늘어지는 재즈나 잔잔한 BGM을 귓구멍 직접 주입이 아닌 공기 중에 흘려보내는 쪽을 선호한다. 큰 음악 소리를 좋아하지도 않고 아파트에서 높은 출력으로 음악을 틀어봤자 층간 소음만 유발할 뿐.


녀석은 어둠이 찾아드는 밤, 책상 위의 충실한 벗이 되어주고 있다. 가끔 여럿이 모이는 저녁 식사에 들고나가면 식탁 위를 은은하게 밝혀 주기도 하고, 좀 번거로워도 일단 블루투스 연결만 되면 여전히 소리도 잘 내어준다. 어디서도 이렇게 작고 심플한 테이블 램프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탁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