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도 하지 않고 잘 먹고 쉬어서인지 체중이 2kg나 증가했다. "그래! 살도 쪄야, 뺄 결심도 하지" 여행기분을 망치지 않으려 유후인 스케치 한점 그린 후 11시경 잠이 들었다. 잘 잤어도 이런저런 꿈 여행에 치여 개운치는 않다. 그래도 이번엔 마음먹었던 온천을 잘할 수 있어 즐겁다. 새벽 일찍 일어나 온천탕에 들른다.
어린 시절 동네 목욕탕이 여기 있었네... 지금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은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곳이었다. 나무로 만든 자그만 의자에 앉아 나무통에 채워져 있는 물을 끼얹는다. 어머니께서 등을 밀어줄 때, 왜 그리 아팠는지? 모르겠다. 아프다고 꾀를 부리면 찰싹 등을 두드리며 "가만히 있어봐~~"하시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공명이 돼 들리는 듯했다. 그립고 그리운 어머니의 손길과 목소리로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건식 사우나와 열탕 냉탕을 돌면서 몸을 풀었다. 이곳은 나트륨과 유황온천이라고 한다. 어제저녁 온천물이 어쩐지 찝찔하더라. 일본은 어쩌면 미워도 미워할 수 없는 오랜 인연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나에게는 말이다.
다른 모든 것을 떠나 일본에 오면 어릴 때 추억이 많이 나는데 지방일수록 더 한 것 같다.
촘촘하고 좁은 손바닥만 한 마당에도 나무를 심고, 늘어놓은 화분이나 집 앞 장식품들의 조촐한 생존이 돋보이는 골목, 나이를 가늠키 힘든 여러 모양의 집들, 넓고 큰 정원 없이도 구석구석 불쑥 자리 잡은 오래된 향나무들, 각각의 철학으로 혼재된 모습이 세월을 말하고 있다.
그 속엔 생각의 무게 없이 일상을 시작하고 마무리하는 오고 가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도 녹아있다. 남들과는 상관없다는 듯, 오롯이 나만의 세상에서 나름의 철학과 의지로 꾸려가는 삶의 편린들... 그래서인지 낯선 이방인이어느 때라도 찾아와 비집고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어울린다. 그리고 오래된 풍광 속에 어릴 적 추억 속의 어머니 모습도 살아있다. 한 번씩 찾아오면 언제나 반갑게 맞아 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간단한 조식 후 동네 한 바퀴 산책하는데, 호텔 바로 옆에 재래 사장이 있다. 반려동물이 많은 나라답게 동물병원과 커다란 동물용품 숍이 있었으나, 대부분 "메이드 인 차이나"다. 예전 로리의 기모노 보온 조끼를 산 기억이 있어 찾아봤으나 없다. 보리 우비를 하나 살까 했는데 3만 원이 넘는 가격표, 살짝 들어보다 놓고 나온다. 세계어딜가도 이젠 자국 제품을 찾기 힘들다. 오히려 요새는 '메이드 인 차이나'보다 "메이드인 인도" 등 동남아 지역도 많이 증가하는 추세다. 손이 많이 가는 수공품 생산에 쓸 인력이 부족하고 자국에서 생산하는 것으로는 단가 맞추기도 힘든 탓이리라. 물론 좋은 의미로 세계가 이미 하나가 되었기에 그럴 수도 있을진 모르겠다만.
오늘은 햇살이 아주 화창한 날씨라 아소 화산에도 무리 없이 갈 수 있을 것 같다.화창한 날씨에 어울리는 분홍재킷을 입은 가이드님이 낭랑한 목소리로 다카치오 협곡과 아소활화산 소개를 한다. 먼저 "여러분들은 운이 좋다~"는 말로 하루를 연다. 이곳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아 날이 좋지 않으면 못 간다는데 날씨가 좋아 다행이란다.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으려나? 기대하게 만든다.
차를 타고 가면서도 일본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하신다. 이런 재미는 개인여행 시에는 맛보기 힘들다. 일본사람들이 중요시하는 것에 대해 얘기해 주는데, 공감 가는 부분도 있었다.
1. 좌변기 말고 앉아서 보는 변기의 위치는 반대로 되어있다. 혹여라도 일을 보는 중 다른 사람이 문을 열경우 얼굴이 아닌 엉덩이만 보기 때문에 수치심을 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쌍방모두에게). 체면을 중시하는 일본사람들의 생활면을 볼 수 있는데, 어쩌면 격식을 중요시하는 위선적인 체면보다 현실적으로 낯 붉힐 일이 싫어서 인지도 모른다.
2. 남에게 피해 주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메이와쿠 카메이나 (남에게 폐 끼치지 마...), 습관처럼 매사에 먼저 나오는 쓰미마생, 스미마생은 일본사람이라면 항상 하는 말이다. 뭐가 그리 미안한지 모르지만, 오히려 인사말처럼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말의 의미는 "끝나지 않았다. 언젠가 보답하겠다."라는 뜻도 있다 한다.
뒤끝을 생각하기보다는 받은 것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깊이 한 것이라 생각해 본다.
3. 자신의 결백과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할복하는 일본인이 많았다는 얘기도 한다. 할복은 단 한 번에 깨끗하고 명예롭게 해야 하기에 장도를 사용해 길고 깊게 잘랐다고 한다. 사무라이들이 긴 장도를 사용했던 이유가 단칼에 베어버리기 위해서라는데 이는 혹시 있을지도 모를 자신의 할복을 위해서이기도 했다고... 찹쌀떡 훔쳐먹었다는 오해를 받아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해 할복했다는 얘기도 있다고 하는데 이야기로만 듣기에도 섬뜩했다. 굳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목숨까지 버려야 했던 것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들에겐 그들의 문화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일본에서의 오래전 할복 행위는 일종의 자살 문화로 까지 자리 잡았었던 것 같다.
일본인들의 근간을 이루는 말, "다테마에'와 '혼네" 정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테마에는 상대방에게 보이는 드러내는 마음, 겉마음이고 혼네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속마음(속내)다. 일본인들은 대부분 겉마음과 속마음, 그리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마움, 정신을 가지고 산다는 얘기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내성적인 성향이라 자연스레 자신에 대한 믿음이 강한 편이라고 한다. 나는 일본인들의 정서나 그들의 사고를 명확히 이해하는 전문가는 아니기에 설명을 들으면서, 그동안 보고 느껴온 것으로 나름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는 편이다.
일본에 대한 가이드님의 이야기는 쉬지도 않고 이어진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어찌 일본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으라는 마음으로 즐겁게 들으며 여행하고 있다.
일본인들의 특성을 잘 나타낸다는 삼나무가 많이도 심겨 있다. 버스는 삼나무 숲길을 시원하게 지나 달려간다. 가지런히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삼나무 숲, 하늘과 맞닿은 윗부분은 푸른 숲을 이뤄 산을 푸르고 충만하게 채우고 있다. 나무통은 가지를 계속 쳐내어서 일자로 곧게 곧게 뻗어 오른다. 온 산이 삼나무다. 베어낸 그 옆자리에 또 어린 묘목을 심어 자라 오르고 있다. 실리와 모양새를 모두 갖추고 있다.
계속 재밌는 얘기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던 가이드 님도 잠시 쉬는 중.. 이번 여행은 참 평안히 지내는 여행길이다. 힐링을 하고 있다. 온천하고 쉬고, 구경하는 건 많지 않아도 마침 4월 신록의 계절이라 사방의 산이 다양한 초록의 향연이다. 좋아하는 초록 세상이 여유롭게 펼쳐져 있고 자유로운 영혼은 쉼을 만끽한다.
신록으로 둘러싸인 어느 집
신록으로 가득 찬 유후인 정경/유화로 표현해 보았다
스케치로 그려본 다카치오 협곡
미야자키시 외곽에 있는 다카치오 협곡으로 간다. 다카치오 협곡은 아소 칼데라 화산활동으로 12만 년 전 강의 침식에 의해 생겼으며 높이는 30~100m에 이르고 길이가 7km이 넘고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아름답고 물살도 센 긴 강으로 이어진 협곡이라 한다. 이 협곡은 일본 건국 신화가 생기기도 한 곳으로 일본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 아주 사랑받는 곳이기도 하다. 신화이야기와 더불어 일본의 명 폭포 중의 하나인 미나이 폭포와 폭포에서 시작되는 역동적인 협곡 보트 타기도 유명하다. 성수기에는 몇 시간씩 대기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위에서 내려다는 사람도 아찔할 정도로 높은 폭포수를 바라보니 직접 타 보면 상당한 스릴도 느낄 것 같았다.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고 있으니 잠시 108 번뇌를 되뇌는 수도자라도 된 듯하다. "모든 것은 때가 있는 법, 지난 것은 흘러간 것이니 건져 올리려 말고 후회도 함께 내게 보내라. 아래로 떨어지는 나의 세찬 물결로 휘감고 내려가리니... " 폭포소리는 노래하듯 당당하게 외친다.
내려가도 끝없이 다시 내려오는 물살처럼, 지나온 삶이 빛났던지 빛나지 못했던지간에, 이미 휘감겨 내려가고 있었다. 찾아 올 삶들은 내려가는 흐름 속에서 반짝이는 순간순간의 물결들처럼 아름답고 힘차게 엮어가면 될 일이다.
파란 하늘조차 녹음에 가려져 고개 들어 찾아야만 보이는 속속들이 아름답고 신비한 정경이 걷는 내내 펼쳐져 있는 위아래 가득한 신록 속에 다카치오 협곡은 찾아 걷는 이들에게 신비를 더해주고 있었다.
아소산은 규슈지방에 있는 활화산으로 현재도 조금씩 활동 중인 다섯 개의 봉우리와 주변 외륜산으로 형성되어 있다. 남북 27km에 이르는 커다란 칼데라가 과거에는 거대한 활화산이었던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소 5악(네코다케, 다카다케, 나가다케, 에보시다케, 기시미다케)이라고도 불리는 다섯 곳 중, 유황 냄새로 가득 찬 1506m의 나가다케는 지금도 격렬하게 활동 중이며 작년과 올해 자주 분출한다고 했다. 두 달 전에도 화산이 터져 화산재가 바닥 가득하고 유황냄새가 산을 뒤덮었으며 근래 들어 더 왕성해져 가까이 가는 것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대신 화산 박물관을 보고 제법 멀리서도 부글부글 끓는 소리와 더불어 올라오는 연기를 보며 코를 찌르는 유황냄새로 체감했다.
그해 가을 2015년 9월에 아소화산이 분화해 화산재가 2km 상공까지 덮어 비행기 이착륙금지는 물론 구마모토현의 큰 피해를 보도했다. 일본은 화산이 많아 온천이 많고 더불어 이루어진 자연경관의 덕을 보고 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자연재해를 안고 살기도 한다. 잘 알려져 있듯 자연재해가 어느 나라보다 많은 나라기도 하다. 지진과 화산폭발은 물론 그로 인해 파생되는 자연재해(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쓰나미 같은)는 상상을 초월한다. 일궈놓은 삶이 한순간에 잿더미 속으로, 파도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단절된 섬나라의 비애도 안고 있다.
타인에게 피해 주는 것을 싫어하고 또한 타인에 의해 피해당하는 것도 싫어하는 어쩌면 고립된 정서, 정치에 별 관심 없고 자신의 카테고리 안에 자기만의 삶으로 살며, 작은 토탬신앙이 지금도 존속하는 국민들의 정서가 자연조건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조금 과하게 표현해 본다면 개인이 국가라는 큰 기계가 돌아가는데 하나의 작은 부속품의 역할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별로 속상해하지 않을... 어쩌면 우리 정서로는 납득하기 힘든 면이기도 하다.
2015.4.22
온천을 좋아하는 사람인 데다 물이 좋으니, 이틀 동안 아침저녁 하루 두 번씩이나 온천으로 향한다.
그럼에도 개운해진 육신과는 달리 스스로에게 휴가 준 것이니 누려도 된다 하면서도 머릿속엔 할 일로 가득하다. 빈머리 빈마음이 필요한 세상이다. 여행은 치유하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그래도 조용한 시간이 되니 마음이 울컥한다. 마음속의 응어리를 털어내고 새로운 기운으로 채워오는 것, 늘 바라면서도 잘 안 되는 일이지만 스스로를 용서하면 다 풀어갈 수 있는 일이다.
글을 정리하고 있는 지금, 당시의 답답했던 심정을 이해해 본다. 관계 속의 모함(?) 같은 상황, 머리로는 이해했으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몸으로도 견디기 힘들었다. 하지만 만고의 진리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가 진정 맞는 말인 듯... 지금 생각하면 그래도 참고 견딘 것이 잘했다는 생각이다.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면 어떤 결과로라도 나올 수 있었겠지만, 전개에 따라 여러 사람들이 상처를 입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전쟁에선 승자나 패자 모두에게 상흔이 있어도 승자의 상흔은 디딤돌이 된다. 하지만 조직에서 승자의 상흔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 미생未生인지라 미생답게 견뎌왔던 것이고 시간이 흐른 후, 미생에게 주어지는 작은 포상 같은 돌아보는 여유를 얻었다.
지금도 삶을 영위하기 위해 어렵게 애쓰고 있는 많은 미생들이 있을 것이다. "이 또한 결국은 지나갈 것에 불과함"을 곱씹으며 "다만 견뎌 보시라~"고 말해주고 싶다. "오늘 하루만 버텨도 승리는 당신 편이다 ~"라는 분명한 사실을 상기시켜 주고 싶다.
쿠마모토성 (위키백과)
오늘은 구마모토성을 둘러본 후, 다자이후의 텐만구신사를 본 후 시모노세키로 간다.
구마모토는 후쿠오카와 함께 규슈지방의 중심지로 인구 66만 명정도이며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대표적인 곳이라 한다. 일본은 16세기말 네덜란드에 문을 연 후로 근대 문물을 급속히 빨아들였다. 일본은 실리주의. 일본의 미래가 밝다는 이유를 몇 가지로 설명하면서 출발을 즐겁게 한다.
새날과 더불어 새로 시작되는 설명을 듣자면 일본 국민은 근면성실하다. 그리고 검소하며 범죄율이 낮고 안정된 정치 시스템이 있다. 미래산업에 투자하며 특히 로봇산업에 역량을 기울인다. 가이드분이 일본에서 오래 사신 분이라 그런지 좋은 인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와 별로 다름없는 것 같은데, 다만 알뜰하게 저축하며 검소한 부분은 종교적인? 문화정서적인 차이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일본 3대 성 중의 하나인 구마모토성은 1598년 임진왜란 후 도쿠가와 이에야스 시절 카토 키요마사가 축조했다고 한다. 성안에 우물 120개. 대문 27개 를 둘 정도로 크게 지으면서 당시 포로로 잡혀온 조선일들이 지붕기와를 올려 우리나라 기와와 비슷하다고도 한다. 성을 둘러보니 새롭게 지은듯한 건물이 많다. 그래도 성안 구서구석 일본을 나타내는 분위기가 있어 가까운 곳이라도 문화는 전혀 다름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문화 속에 우리 조상들의 한스러운 역사도 혼재되어 있다니 마음이 씁쓸하다. 사실 돌아보면 아니 찬찬히 "역사"라는 우물을 들여다보면 어디든 무엇으로든 섞이지 않은 것도 없다. 어느 나라인들 "나 홀로"는 없다는 것이 이미 역사의 여러 장으로 증명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리 생각하면 좀 더 다정하게 서로를 도와주며 살아야 할터인데 아직도 지구곳곳에선 "나의 국가"를 위해 오직 "나"만을 위한 정신문제로 전쟁과 고통이 빈번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구마모토 성을 관람한 후 후쿠오카현에서 유명하다는 다자이후 텐만구신사를 들러본다. 일본의 신사문화는 어디에도 없는 곳이 없다. 마치 동네 한가운데 있는 오래된 작은 공원처럼... 걷기에 좋고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았고, 그곳에 오래된 절이 있는 것이다. 토템신앙이 많은 곳답게 어딜 가든 무엇에든 그곳의 신이 있는 일본, 학문의 신이 있는 곳이니 당연히 학생들이 많이 올 수밖에 없다. 나도 학생답게 열심히 걸어 다니며 늘 지혜로운 학생(배우는 사람)으로 살기를 바라본다. 시내 구경을 마친 후 시모노세키항을 간다. 사흘이 금방 지나갔다. 한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 시내 쇼핑센터 팸플릿이 한글로 되어있다. 2024년 7월 현재까지 일본을 가장 많이 방문한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보도도 있었다. 물론 엔저의 영향도 크겠지만, 바로 옆의 가까운 이웃이니 더 자주 찾아보게 되어서가 아닐까 싶다.
2015.4.23
아주 추웠다. 일등석이라고는 하지만 틈새가 많아 바다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추워서 담요를 더 꺼내 덮고 자다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새벽바다를 만나기 위해 나가 본다. 여섯 시도 안 됐는데 해는 떠올랐다.
영도가 아스라이 보인다. 고향이지만 변해도 너무 많이 변했고 이제는 연관되는 것이 없어 마음속의 고향으로만 남은 곳이다.
배를 탄 경험도 나쁘지 않았다. 불보다 무서운 것이 물이라는 말처럼 그저 철썩거리기만 하는 저 바다의 속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오랜 세월, 온갖 풍상을 그대로 품고 있지만 모습은 언제나 같다.
뱃전에 나가 파도소리를 들으며 바다내음을 원 없이 맡는다.
성장도 퇴보도 없는, 가장 힘든 현재를 그대로 억겁의 세월로 안고 지켜온 바다 아닌가, 감히 바다에게 성장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마는 바다는 늘 자라고 있었다.
인류 수천 년 역사의 풍상을 고스란히 품고 있지만 지금도 아이처럼 새로울 따름이다. 어디로든 통하는 것처럼 과거와 미래도 현재로 통함을 보여주고 있는 바다다. 굳이 지구환경의 미래를 염려하는 환경론자가 아니더라도 갈수록 바다의 중요성은 커져갈 것이다.
지구의 운명자체가 이미 그렇게 정해진 것이 아닌가. 바다의 역사까지 운운할 필요도 없이 한 세대에 불과한 인생에게도 바다는 멀리 할 수 없는 운명 같은 존재일 수밖에 없으니 바라보는 인간은 그저 경외감을 감출 수 없다.
좀 전에 찍은 사진을 보니 여기저기 잔 주름도 보인다. 세월의 짐을 어찌 벗어버릴 수 있으랴... 앞으로 얼굴에 칼을 댄다 하더라도 예전 청춘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우울할 수 있는 아침이지만, "겉으로 보이는 세월의 흔적은 감출 수 없을지 몰라도 내면의 성장은 푸르른 청춘으로 개척해 갈 수 있다네~"하며 바다는 살짝 볼을 두드려주며 격려해 주고 있었다. 언제나 푸르른 자신처럼 말이다. "너는 바다의 딸이잖아~" 철썩거리는 언어로 말하고 있다.
여행후기
오래전이지만 배를 타고 갔던 경험은 새로웠다. 10년이 다 돼 가는 지금 기록을 정리하다 보니 당시 어려웠었던 상황이 다시 떠오른다. 지나면 다 부질없는 일인 것도 알았지만, 인간이기에 막상 닥치는 현실에선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려웠었던 점도 많았다.
결국은 굳은살에 불과할 것을... 왜 힘들어했는지 하는 아쉬움도 들지만 한편으론 범생이기에 지금 살아남아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일본은 많이 다녀왔지만 앞으로도 자주 다니려 한다.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표현보다는 어쩌면 가까워서 더 자주 가고 싶은 나라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일본 기행문에도 말했듯 풍광 속의 추억이 싫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큰 세상도 중요하겠지만, 스스로의 삶에 충실하며 작은 것들에게도 마음과 정성을 기울이며 소박한 즐거움으로 하루를 엮어가는 사람들의 삶에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가끔씩 허전해질 때면 한 번씩 들러, "우리와 비슷한 모양의 사람들이 누리며 느껴가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을 소소하게 표현해 가는 것, 이렇게 사는 것도 인생이다"라고 몸으로 마음으로 자연스레 물들어 가며 여유롭게 이어지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