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스트레스 해소 방법은 바로 ‘혼자 있기’이다. 이 간단해 보이는 행위가 사실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는 노동을 할 때도, 밥을 먹을 때도, 심지어 잠을 잘 때도 다른 사람과 함께하려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외로움이라는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오기 때문이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혼자 있는 것의 소중함을 처음 깨달았다. 대학에 갓 입학한 나는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미숙했고 많은 양의 새로운 공부도 서툴렀다. 이 과도기에 익숙해지며 혹은 이미 익숙한 척하며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걸 인정할 용기도 없고 해소할 방법을 모르니 아니나 다를까 힘든 시기가 찾아왔다.
다음은 군대에 가서였다. 매일 같은 일을 원치 않게 반복하며 누적된 스트레스는 없던 피부염과 위염이 생기며 몸에서 먼저 반응이 왔다. 누가 들으면 군대에서 정말 고생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또 아니다. 남들 다 겪는 군생활의 시련과 매너리즘이겠거니 했지만 업무 환경과 그 강도에 비해 큰 스트레스를 받았음은 분명했다.
돌이켜보면 힘들었던 이 두 시기의 공통점은 ‘내 시간’의 부재였다. 대학교 1학년 시절 나는 2인 1실 기숙사에서 지냈었고 하필 그곳은 잘 때를 제외하면 항상 방 문을 열어놓는, 말 그대로 개방적인 문화가 있어서 오롯이 혼자 있는 시간은 도무지 낼 수 없었다. 군대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찾는 것은 사치를 넘어 있어서도 안 되는 시간이다. 스무 명 가까이 되는 건실한 청년들이 열 평 남짓한 공간에서 함께 생활하며 나보다는 우리가 존중되는 작은 사회에 나를 끼워 넣어야만 했다.
앞서 말한 상황 외에도 평소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거나, 어떤 일을 내 방식대로 해내고 성취하지 못할 때라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이것들이 가능해진다. 사실 이게 가능하도록 읽고 싶은 책 원하는 만큼 읽기, 편한 옷차림과 자세로 영화보기 같은 일들을 한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만큼은 스트레스가 없다.
혼자 있기가 좋은 또 다른 이유는 내가 내 스트레스를 남들과 공유하는걸 잘 못해서이기도 하다. 물론 살다 보면 스트레스가 밖으로 표출될 때가 있다. 특히 나는 힘들면 힘든 것이, 기쁘면 기쁜 것이 얼굴에 다 드러나서 내 감정이 고스란히 남들에게 보일 때가 많다. 주위에서는 가끔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안 좋은 일이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말고 털어놓으라 따뜻한 조언을 해주는데, 그게 참 쉽지만도 않다.
일단 남들에게 내 불만과 부당함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 왜 내가 이렇게 힘든지에 대해 호소할 자신이 없다. 또 다른 사람들에게 그저 불평하는 사람, 뒤에서 남 이야기하는 사람, 겨우 이런 것에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람이 되기 싫은 것도 있다. 기분이 좀 나아질까 용기를 내어 남들에게 투정 부리면 원래 다 그런 거야. 뭐 그런 것 가지고 그래 같은 말들이 되돌아오는데 전혀 내 감정을 치료해주지 못한다.
결국 나에게 혼자 있기는 끙끙 앓는 시간이 아니다. 도리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필요한 양분은 받아들이고 필요 없는 것은 흘려보내는 소화의 시간이다. 이렇게 그날의 기분에 따라, 내가 아닌 다른 것에 구애받지 않은 일을 하며 난 혼자 스트레스를 해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