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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Sep 13. 2023

'돈 냄새 맡는' 개발자되기

올해 초 소규모 조직의 회사에서 나름 규모가 있는 회사로 이직했다. 이전 회사에선 개발뿐만 아니라 기획도 맡아야 하는 포지션이었다. 양쪽 영역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빈번한 콘텍스트 스위칭 때문에 스트레스가 컸다. 그리고 온전히 개발에 집중할 수가 없어 나의 실력을 갈고닦을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다.


반면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는 기획과 개발이 팀단위로 분리되어 있어 나는 오로지 개발만 신경 쓸 수 있었다. 게다가 나의 결과물을 테스트할 수 있는 적절한 수준의 서비스 트래픽과 필요한 높은 트래픽과 경험 많고 실력까지 훌륭한 시니어 멘토가 있어 개발자로 성장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당시 개발자 커리어에 대한 고민이 있던 내게 지금 회사는 최고의 선택지였다. 이직 후 몇 달간 고민 없이 하는 일에만 집중하며 열심히 달려왔다. 그런데 이번주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이렇게 개발만 해도 괜찮은 걸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내 생각에 개발은 ‘돈냄새를 맡는 일’은 아니다. ‘돈냄새를 맡는다’는 표현이 다소 거부감이 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 필요할 만한 것을 생각해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일이라고 이 글에서는 정의한다.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기획이나 마케팅, 영업 직무처럼 고객과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업무를 통해 돈냄새를 맡는 능력을 키우는 것 같다.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회사에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하는 것이 그들의 고유 업무니까. 그래서 이쪽 계열에 있으신 분들은 업무를 하면서 자기만의 사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기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개발은 글쎄. 돈냄새를 맡는 일을 한다고 보기 어렵다. 기술로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실현함으로써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읽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키운다고 보기는 어렵다. 개발만 바라보고 성장한다면 난이도 있는 기술을 활용해서 훌륭한 프로덕트를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나만의 사업을 구상하게 되는 능력을 키우게 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모두가 ‘돈냄새를 맡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회사에서 근로자의 복지를 신경 써주는 사람, 건강을 챙겨주는 사람, 인사와 관련된 업무를 대신 처리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기술로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개발자도 필요하다. 그리고 ‘돈냄새 맡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나의 쓸모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애매하게 여러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보다 월등한 기술 능력을 키울 때 경쟁력이 더 생기게 될 수도 있다.


고민의 근원은 나의 내면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기획, 운영, 개발 모두 참여해 DAU 1000명 이상의 서비스를 만들었을 때의 짜릿함이 아직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는다. 내가 심사숙고해서 만든 기능이 유저들에게 긍정적인 반응을 받을 때, 그때 느꼈던 희열은 회사에서 인정받거나 보너스를 받았을 때보다 더한 기쁨이었고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 브런치, 블로그에 작성한 콘텐츠를 회고해 보면 나는 ‘스스로 가치 있는 것을 만들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인 것 같다. 내가 행복을 느끼는 일을 하기 위해선 개발을 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돈 냄새를 맡는 능력’이 중요한 것 같다. 지금 고민이 생긴 이유도 나의 정체성 때문이고 그래서 회사 일을 성실히 하면서도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어떤 식으로 이 능력을 키울지는 아직까지 고민이다. 이것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는데 개발과는 다르게 돈 냄새를 맡는 일은 정형화된 커리큘럼이 없는 것 같다. 개발은 구체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정답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주변 동료의 피드백을 통해서 문제를 잘 푸는 방법을 키울 수 있다.


그런데 돈냄새를 맡는 일은 애초에 문제를 창조하는 것인데, 이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비슷하다. 디커플링 같은 경영서적을 보면 성공하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이론을 소개하지만 나는 이런 방법론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사업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본 나로서는 서적에서 제시하는 사례가 결과 끼워 맞추기와 비슷하다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드러내본다. (물론 네가 잘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라고 반박하면 할 말이 없긴 하다) 답정너이지만 나는 ‘내가 직접 경험해 봐야 키울 수 있는 것’이라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구체적으로 무엇부터 시작할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글을 작성하면서 내 고민의 원인을 알게 된 것에 만족한다. 일단은 개발만 열심히 하면서 다른 분야에도 기웃거리며 관심을 두는 것도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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