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브런치에 글을 쓴 지 이제 7년이 돼 갑니다. 개발, 인공지능, 커리어, 독후감등 다양한 주제로 주제넘는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글마다 주제는 다르지만 출발점은 비슷했던 것 같습니다. ‘돈걱정 없이 살고 싶다!’가 제가 글을 쓴 이유였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버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당시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는 ‘일’이 답을 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투자도 좋고 창업도 좋지만 태생이 겁쟁이인 저는 리스크를 감당할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보상이 적더라도 직장에서 몸값을 올리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신입시절부터 전문성을 키우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당연히 업무엔 열심이었고, 퇴근후나 주말엔 개발 관련 책을 읽고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면서 실무 능력을 키웠습니다. 브런치와 개인 블로그에 새롭게 배운 것과 일하다가 느낀 인사이트를 기록하기도 했죠.
다행히 노력한 만큼 결과는 좋았습니다. 자기 자랑 같아 부끄럽지만 동기 중에선 나름 상위권 고과를 받던 축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동료에게 칭찬과 인정을 받았죠. 경제적 보상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노력이 무색해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2017년 즈음이었을까요, 입사 동기중 한 명이 결혼과 동시에 집을 구했습니다. 당시 뉴스에선 하우스푸어 얘기도 심심찮게 나왔던 시기인데 동기는 주담대 + 신용대출을 동시에 받고 야수의 심장으로 집을 매수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파트값 상승 릴레이가 펼쳐집니다. 매수 시점에서 4년이 지나자 동기의 집은 2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직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던 무주택자보다 유주택자 동기의 자산 증식 속도는 훨씬 빨랐습니다. 동기가 자산가가 되는 동안 제게 아파트는 감히 넘보지 못할 무언가가 되고 말았습니다.
동기는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돈을 번 건 그때 결혼했기 때문이라고,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죠. 하지만 인간으로서 배가 미치도록 아픈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질투심 뒤에는 제 가설에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일을 잘한다고 돈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걸까?’
과거 개발자 커뮤니티에선 ‘종국에는 치킨집을 차리게 된다’며 스스로를 자조하던 문화가 있었습니다 (치킨집 사장님을 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대학교수님은 강의 때 모르는 문제가 생기면 치킨집 사장님께 물어보면 된다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했습니다. 당시엔 개발자의 수명이 짧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열심히 일해도 롱런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개발자를 택하기 전에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은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는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일단고!’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기대감은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절망감으로 돌아왔습니다. 2021년도까지 주식, 부동산, 코인등 자산 가격이 급등합니다. 이때 과감한 투자로 큰 수익을 낸 젊은 부자들이 세상에 나옵니다. 많아봐야 저랑 5-6살 정도밖에 차이 나지 않아 보이는데 이분들은 이미 제가 넘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부를 거머쥐고 있었습니다.
젊은 부자들은 직장인은 부자가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논리에 따르면 회사를 다니는 건 남을 위해 일하는 겁니다. 자신들처럼 경제적 자유를 얻고 싶다면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창업을 하거나 큰돈을 투자하는 게 자신을 위한 방법이라고 그들은 말합니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젊은 부자들의 주장은 직장인들에게 허탈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저처럼 일에 집중했던 사람에겐 허탈감은 컸지요. 그때 당시를 돌아보면 저는 시험 범위를 모르고 공부한 학생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돈걱정 없이 사는 게 목표였는데 제가 추구한 방식은 (젊은 부자들에 의하면) 정답이 아니었던 겁니다. 어떤 책에선 저의 방식을 서행차선이라고 정의하기도 했죠. 다른 사람들이 먼발치 앞서나갈 때 저는 애꿎은 곳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저는 방황했습니다. 정말 회사가 나를 착취하는 걸까. 지금까지 쏟은 노력은 무의미한 걸까. 남 좋은 일만 하다 커리어는 끝나는 걸까. ‘돈 걱정 없는 삶’은 꿈꿀 수 없는 걸까. 부정적인 생각은 노동의 가치가 절하된 냉소적인 사회 분위기에 합해져 멈출수 없게 됩니다.
한동안 업무 밖의 영역으로 눈을 돌렸습니다. 뒤늦게 주식 투자에 뛰어들었습니다. 부동산 강의도 들으러 다녔습니다. 임장도 다녔습니다. 부업도 찾아봤습니다. 업무에는 예전처럼 공들이진 않았습니다. 남들이 하는 만큼, 월급 받는 만큼만 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기간은 제 브런치에 1년 정도 공백이 생겼던 기간과 일치합니다.
하지만 1년 만에 다시 일잘러가 되기로 마음먹게 됩니다.
방황하면서 두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먼저 투자와 창업은 제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겁이 많은 쫄보입니다. 투자는 아무리 공부해도 확신이 들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구글, 애플, 아마존을 고르는 건 (적어도 제게는) 확률 낮은 게임처럼 보였습니다. 큰 수익을 내려면 크게 베팅을 해야 하는데 제가 계산한 확률로는 투자할 엄두가 나서지 않았죠. 창업도 제게는 위험해 보이기만 했습니다. 결국 저의 1년간의 투자 공부의 결과물은 인덱스 펀드와 일부 우량주에만 일부 투자하는 포트폴리오만 남았습니다
저를 허탈하게 만들었던 젊은 부자들의 성공 방식도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22년도 부동산과 주식 거품이 급격히 빠집니다. 자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코인으로 큰돈을 쥐고 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평범한 사람이 되기도 했고, 금리가 크게 오르면서 크게 베팅한 사람들은 높은 이자를 부담하고 있습니다. 벤처 자금줄이 줄어들면서 잘 나가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대표님들은 부도의 위기를 겪었습니다. 부자들의 성공 논리는 개인의 노력과 의지 뿐만 아니라 운도 크게 작용하는 영역이었습니다.
한 사이클을 돌고 나니 전 직장인으로 열심히 몸값을 올리는 게 제가 잘할 수 있는 분야라고 판단했습니다. 단, 예전처럼 일잘러가 되는 게 돈걱정을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미래엔 어떤 일이 생길지 모릅니다. 정말 인공지능이 개발자 수요를 없애버릴 수도 있고 it 분야에 불황이 닥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불운하게 다니는 회사가 망할 수도 있고요. 일잘러는 결코 경제적 자유의 충분조건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예전처럼 비관적인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1년간 방황하는 기간 동안 과거 기록들을 회고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8년간 제가 했던 일들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난 8년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여러 회사를 옮겨다니며 백엔드, 프런트엔드, 모바일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순도 높게 배운 기술 덕분에 지금 저는 백엔드 개발자지만 급할 때는 프런트엔드도 겸직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건 팀에서도 차별화될 수 있는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의 브런치와 블로그를 읽고 몇몇 분들이 좋은 제안을 보내주십니다. 저만의 기록 공간이 이제는 저를 홍보하고 새로운 기회를 받을 수 있는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일 자체는 아무런 보상을 보장하진 못합니다. 열심히 일해도 보스가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고 사내 정치로 불합리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업계 자체가 불황일수도 있죠. 하지만 과정에선 크고 작은 결실을 얻습니다. 새로운 업무 스킬, 인간관계, 브런치와 블로그에 쌓아둔 기록들은 누가 빼앗아갈 수 없는 오롯이 내 것입니다.
크고 작은 결실중 일부는 돌아옵니다. 어떤 형태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글쓰기나 새로운 일자리 제안이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나와 전혀 무관해 보이던 투자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고 창업 제안이 될 수도 있겠죠.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습니만 일하면서 많은 씨앗들을 뿌리다 보면 하나는 싹을 틔울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새로운 좌우명을 만들었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