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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계형 개발자 Apr 26. 2024

"결혼하면 행복하냐"는 질문에 대하여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기혼자로서 미혼자 친구들에게 “결혼하면 행복하냐”는 질문을 받는다. 질문 의도는 크게 두 가지다.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내가 행복한지, 아니면 결혼과 행복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전자라면 내 솔직한 심정을 듣겠지만 후자라면 만족할만한 답변을 주기 어렵다. 애초에 질문 자체가 잘못 됐으니까.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결혼과 행복은 “타이레놀 먹으면 열이 내린다” 같은 인과관계로 정의할 수 없는 영역이다. 비슷한 생체구조를 갖고 있는 사람은 같은 약을 먹으면 거의 비슷한 결과를 내지만 결혼은 대상도 다르고, 행위 주체자의 가치관과 경제력 그리고 자라온 환경도 다양하다. 엄격한 임상테스트를 거쳐 효과가 입증된 약과 비교하면 결혼은 참고할만한 과거 사례만 존재할뿐 실험은 전무하다. 그래서 결혼 행위 자체만을 놓고 행복과 인과관계를 따지는 건 불가능하다


결혼은 마치 사업과 비슷해서 결혼이란 행위보단 행위 주체에 따라 결과가 크게 좌우된다. 동일한 사람도 누구랑 결혼하느냐에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삶의 질이 급격하게 저하될 수 있다. 그래서 결혼과 행복 사이에 인과관계를 알고 싶다면 “결혼하면 행복하냐” 는 질문보다는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사람과 결혼하면 행복할 수 있냐’가 더 적절한 질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정한 질문은 다른 사람에게서 만족할만한 답을 얻긴 힘들다. 오직 본인만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묻어둔 나의 취향, 무의식적으로 중요시 여기는 가치관은 나만 알 수 있는 영역인데 누가 이것까지 파악해서 대신 판단할 수 있을까.


친구가 ‘음식 취향이 맞는 사람을 만나라’고 해도 내가 음식에 관심이 없으면 상관없고 부모님이 ‘가정적인 사람을 만나라’고 해도 ‘비전 있는 사람’이 이상형이라면 중요치 않다. 유튜브에서 거르라고 한 ‘이런 사람’도 어쩌면 나와 찰떡궁합일 수 있다. 결혼은 철저한 주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조언을 듣는다 한들 내게 맞는 옷을 찾아야 하는 건 결국 나다.


여기서 예상되는 독자분들의 반응. 


“질문이 잘못됐다며 괜한 꼬투리를 잡는 너는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했느냐”




뭐… 고백하자면 사실 나도 그렇게 대단하게 고민을 하진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기억 조각을 모아 그럴듯한 스토리를 만드는데 나는 결혼 준비 당시 깊은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시 일기장을 보면 방황하는 나의 심리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어쩌다 보니 상견례를 됐고 어쩌다 보니 예식장을 예약하고, 어쩌다 보니 드레스 투어를 한다. ‘나 진짜 이렇게 결혼하는 걸까? 이렇게 유부남이 되는 건가?’ 실감이 안 나는데 우당탕 진행되는 과정에 두려움도 음습했다. 그때마다 최악의 상황엔 롤백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의지하기도(?) 했다(물론 진짜 롤백하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많은 지인을 초대한 결혼식장에선 이미 늦어버렸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큰일 났다’라는 말이 나왔다.


그렇다고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고 나도 한 가지 기준점은 있었다. 나약하고, 부끄럽고, 부족한 면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꽁꽁 숨겨온 내면을 보여줘도 괜찮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 시대가 변했다고 하지만 결혼의 본질은 여생을 함께할 동반자를 찾는 일이라 생각한다. 살다 보면 험한 꼴도 보기 마련인데 이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돈이나 외모 보단 나락 간 내 모습에도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줄 수 있는 사람 아닐까.


지금의 와이프는 연애시절 사소한 일에도 속상해하고 쉽게 멘털이 흔들리던 나를 언제나 믿고 달래줬다. T가 즐비한 공대생 주변에선 찾을 수 없는 위로다. 숨기고 싶은 모습, 나약한 내면이 노출될 때마다 와이프는 실망보다는 언제나 열려있고 마음으로 나를 이해했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패를 공개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옆에 있어줬다. 빠른 손절을 권유하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선 찾기 어려운 사람이다.




다행히 나의 선택은 아직까지 유효하다. 가끔 혼자 지내던 시절의 자유가 그립긴 하지만 결혼 자체를 후회한 적은 없다. 혼자보단 둘이 낫고 고요함보단 시끌벅적함이 좋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아쉬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배우자덕에 넓은 집에서 살고 있는 친구도 있고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친구도 있다. 가끔 배가 아프고 부럽기도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정한 가치관이 집과 차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건 나의 배우자만 제공할 수 있는 영역이다.


나의 선택이 끝까지 해피엔딩이라면 좋겠다. 하지만 앞으로의 일은 모른다. 우여곡절로 와이프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나도 그럴 수 있다) 예상하지 못한 위기가 닥치면 가치관에 붕괴가 일어날 수도 있다. 사람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럼에도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사실은 결혼은 나와 와이프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점이다. 주변 입김이 거세져도 처음 세웠던 가치관을 탄탄히 유지한다면 상관없다. 어려움이 있어도 서로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다면 문제없다. 돌발변수가 많은 세상이지만 결혼 생활 유지는 결국 둘이 정하는 일이다. 연봉계약, 임대차계약, 스톡옵션계약처럼 사회에서 맺는 계약들에 비하면 결혼 계약 조건은 꽤 단순하지 않나 싶다.


아무튼 앞으로도 지금처럼 무탈한 결혼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다. 부디 나의 글이 흑역사가 되지 않고 지금처럼 행복하게 지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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