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방귀 좀 뀌어봤어?

by 보리

콧방귀 좀 뀌어봤어?


코흘리~개 시절

라떼 이야기다.


우리 세대는 초등학교 입학식에

모두 손수건을 가슴에 달았다.


옷핀으로 옷에 꽂아둔 하얀 손수건.

왜 달았는지도 모르고,

그냥 그게 의무처럼 여겨졌던 시절.

그 시절 아이들은, 콧물을 달고 다녔다.

신호도 없이 쭈욱 흘러내리는 콧물.

훌쩍 들이마셨다가도

코끝에 남은 방울은 손등이나 소매로 쓱 문질러

소매 끝이 반질반질한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다들 그랬으니 별로 흉이 되지 않았다.

너도나도 코찔찔이, 코흘리개, 코줄기요정이었다.


아가 다이버 시절,

나는 코흘리개 시절로 시간여행을 갔다.


필리핀 아닐라우에서,

내 생애 첫 개방수역(바다) 다이빙.

입수 전 가슴은 콩닥콩닥 뛰었고

이퀄라이징도 잘 됐고,

신기한 수중 세상에 넋이 나가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서 정신없이 쏘다녔다.


문제는,

방카 위로 올라온 다음이었다.

마스크를 벗는 순간,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고 빵 터졌다.

내 얼굴에는 누렇고 긴 콧물줄기 하나가 얼굴을 가로질러 귀에 걸려있었던 것이다.

딱 맹구였다.

콧물줄기로 줄넘기도 할 지경이었다.

흥분한 나는 코 닦으라고 옆사람이 말해줄 때까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바닷속에서 콧물 좀 흘리고 나면 이런 멋진 장관도 만날 수 있다._아닐라우에서 젝피시와 춤을_- Video by Suhyung

비행기를 탈 때, 귀가 멍~ 해지는 느낌.

그건 외부 압력과 귀 안쪽 압력이 달라 생기는 증상이다.

침을 꿀꺽 삼키거나, 하품하거나, 껌을 씹거나,

혹은 코를 막고 바람을 살짝 뿜는 발살바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스쿠버다이빙도 마찬가지다.

하강할수록 수압은 높아지고, 귀는 압박을 받는다.


그래서 마스크 위에서 코를 막고 바람을 뿜는 이퀄라이징(Equalizing)을 해야 한다.

귓속과 외부 압력을 같게 만들어주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이퀄라이징 (Equalizing)은 ‘같게 만들다, 균형을 맞추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이걸 이렇게 정의한다.

“바다와 나를 같게 만드는 일.”


그 균형을 방해하는 요소가 콧물이고 코딱지이다.

입수는 했는데 이퀄라이징이 안되어 버둥거리다 결국 물 위로 올라가서 다시 시도하고,

그래서 코와 귀가 뚫리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다이빙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다이빙 풀장에 가서 하는 첫 연습도 이퀄라이징과 숨쉬기이다.

그래서 다이빙 투어를 가기 전에는 코님의 안녕을 위한 감기 관리를 철저히 하는 편이다.

약간의 비염이 있어 비강속에 콧물이 고여있었다는 것을 다이빙을 하면서 다량의 콧딱지를 내뿜고서야 알았다.


다이버마다 숨기고 싶어 하는 흑역사 중에 이 코흘리개 시절 얘기가 꽤 된다.

바닷속에서 가이드가 마스크를 가리키더니 엄지 척을 해서

‘좋다는 뜻인가?’ 했다가 출수해서야

‘너 마스크 안에 코 묻었어’라는 뜻이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다이버

감기 때문에 코가 막혀 안 되는 이퀄라이징을 세게 하다

콧물 로켓을 발사해서

마스크 렌즈 안쪽에

노오란 반투명 콧물 해파리 한 마리가 안착해서 함께 다이빙해야 했다는 다이버


코감기로 줄줄 흐르는 콧물을

마스크에 찰랑찰랑 채우고 다녔다는 다이버

나도 바닷속으로 로그인(Log의 나만의 언어)할 때마다

이퀄라이징을 하면서 뿜어져 나온 콧딱지 혹은 콧물을

마스크 안에 데코레이션으로 장식하고 다녔다.


그런 코흘리개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 바다를 더 사랑할 수 있다.


코를 흘리지 않고,

마스크 안에 노란 해파리 한 마리 안 키워봤다면,

진정한 다이버가 아니다.

바닷속에서 만난 대왕해파리들_설마 코딱지가 이렇게 크다는 말은 아니다. - Photo by Suhyung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위한

첫 관문이 내 콧물과의 만남이며 이퀄라이징이다.

코를 막고 콧바람을 흥흥 내뿜으면

귀에서 ‘딸깍’ 혹은 ‘찌익~’하는 소리와 함께 고막이 움직여서

나의 귀가 바다와 평형을 이루고 접속하는 순간이 바다가 나를 허락하는 순간인 것이다.

코와 귀는 비록 내 몸이지만 강제로 뚫는 게 아니라

천천히 설득해야 하는 대화가 필요하다.


수압에 의해

압력차가 생기면

귀가 먹먹해지고

통증이 생기며

심하면 고막이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버들은 수심이 조금만 달라져도

이퀄라이징을 자주 해야 한다.


나도 여러 번 맹구가 되어 긴 콧물 줄기를 달고 다니고,

또 콧속을 튀어나온 코가 마스크에 달라붙어 시야를 방해하는 자잘한 에피소드를 수없이 겪었다,

니 아직도 진행 중이다.


경력자들은 바닷속에서 마스크를 벗고 씻어서 다시 쓰기도 하지만

바다에서는 아직 겁이 나서 시도해보지 못했다.

마스크 안에 졸졸 물을 넣은 후 콧바람으로 불어내는 정도로 만족하고 있다.

초보와 베테랑의 차이라면 경험이 많을수록

콧물을 재빨리 안 보이게 처리하는 정도랄까?


그래서 나는 오랜 경력의 다이버들을 보면

‘콧방귀 좀 뀌어 봤겠구나.’하고 생각한다.

이퀄라이징 하는 방법이 콧방귀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니들도 코흘리개 시절이 있었겠지?


세상과 내가 눈높이가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당신은 어떻게 맞추는가?


그냥 '흥~ 그래서 뭐 어쩌라고'하며 콧방귀나 좀 뀌어버리면 어떨까?


나는 오늘도 코 좀 흘리고, 콧방귀 좀 뀌러 바다로 간다.

콧물 좀 흘리다 보면 이런 예쁜 아네모네도 만날 수 있다. - Video by Suh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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