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나서도 작은 집사가 흑백요리사인가 뭔가를 봐야 한다고 이층에 올라가 버린 후 다용도실 문이 열려있자 슬쩍 들어가더니 종이봉투 하나를 가지고 나오더니 조각조각 뜯기 시작했다.
바닥이 밋밋해서 전시회를 하고 싶었나 보다.
또 메리골드 금잔화 꽃이 가득한 화단에 올라가 꽃대를 깔고 앉아 꺾어버렸다.
꽃이 너무 많이 달렸던 꽃나무가 부러져 마당을 향에 엎드렸다.
꽃님의 절을 받고 싶었나 보다.
마당에 있는 큰 소나무를 둘러싸고 화단을 만들어놓았는데 꽃이 키가 커서 바람에 눕자 작은 집사가 플라스틱 울타리를 가지고 꽃을 받쳐놓았다.
그런데 콩엄마가 소나무를 오르내리는 냥이들 쫒으려다 그거까지 부러뜨렸다.
자알한다.
이렇게 사부작사부작 저지레 해놓은 것을 본 작은 집사가 ‘이거 이거 누가 그랬어?’ 물어보면 콩엄마는 먼 산을 아니 뭉게구름을 쳐다본다.
그럼 작은 집사가 나를 째려본다.
억울하다.
저지레 한 놈 아니 한 분은 따로 있는데 내가 만만해 보이냐?
# 에필로그
웰시코기의 특징 중 하나가 활동량이 많다는 것이다.
가을이가 개춘기 때는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물어뜯어서 버린 신발은 열 켤레가 넘는다.
집안 바닥 쪽 몰딩을 물어뜯어 놓은 이빨자국이 선명한 전리품으로 남아있다.
현관 벽지를 다 뜯어서 가을이 키높이까지 아예 나무로 인테리어를 다시 해야 했다.
마당 잔디 곳곳을 파헤쳐놓기 일쑤였고, 꽃밭도 수시로 파헤쳐서 자기 장난감을 숨기기도 하고 괜히 꽃을 뽑아버리곤 했다.
산책을 가다가 힘들다고 드러눕는 것이 주 특기였다.
머리가 좋아 아무 데나 드러눕는 게 아니라 스윽 보고 내리막길 낙엽 위에 드러누웠다.
아무리 달래도 샐쭉 삐친얼굴로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나름 힘들다는 시위였는데, 그땐 ‘개·알·못’의 수준이 높아서 가을이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다.
할 수 없이 목줄채 끌고 오면 줄을 입으로 딱 물어서 목이 졸리지 않게 나름 목을 보호한다.
그 모습을 봤다면 반려인들이 강아지 학대한다고 비난도 할 수 있겠지만 가을이가 내리막길에서만 팍 엎어지는 모습을 보면 머리가 좋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나중에는 그걸 즐기기까지 한다.
어떤 날은 서른 번도 넘게 눕방을 시전 하기도 했다.
산길옆에 우리가 ‘머리카락 풀’이라고 부르는 가느다란 억새풀 모양의 풀이 있는데 가을이는 그 풀을 볼 때마다 달려들어서 영차영차 당겨서 뽑아버렸다.
마치 분풀이를 하는 듯 보였다.
개망나니로 개춘기를 보내는 가을이 흉을 하면 아들이 콩이 어렸을 때도 똑같았다고 말한다.
좁은 원룸을 수시로 초토화시키곤 해서 저녁마다 콩이와 10킬로씩 달리며 사춘기 에너지를 빼느라 힘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온 동네 사람들을 알게 되고 , 예쁘다는 칭찬을 수없이 듣고, 족발집 사장님은 콩이 팬이 되어 늘 고기를 챙겨주셨다고 한다.
그래서 콩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회화 훈련이 잘 되어있다.
웰시코기가 사람을 유난히 좋아해서 웰시코기의 장래희망이 ‘남의 집’ 개라는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이긴 하다.
반면에 가을이는 시골에 다니면서 뒷산만 다니니 사람을 볼 기회가 적어 사람을 만나면 겁을 낸다.
조금만 친해지면 풍성한 꼬리를 풀가동하며 온갖 애교를 다 부리지만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선 경계가 심하다. 특히 덩치가 큰 남자를 보면 어쩔 줄 몰라 꼬리를 내리고 뒷걸음질치곤 한다.
가을이가 개춘기 때, 온갖 사고를 치면 콩이는 묵묵히 바라보며 안쓰러워하는 듯했다.
그런데 올해부터 11살이 된 개르신 콩이가 사부작사부작 저지레를 하기 시작했다.
가을이는 성견이 되어 젊잖아졌는데 박스를 보고 물어뜯는 것도 콩이고 버리려고 둔 쓰레기봉투를 파헤쳐 온 마당에 전시하는 것도 콩이였다.
다용도실 문이 열렸을 때, 슬쩍 들어가서 종이봉투를 가져다 뜯는다.
이게 노화현상인가 걱정도 되지만 저지레 하다 현장에서 걸려도 자기가 안 한 척 가을이한테 떠넘기는 솜씨가 또 예술이다.
머리가 좋아 집사를 조종한다는 웰시코기.
오늘은 안 당하겠지 하면서 또 당한다.
내가 여기서 이걸 할 줄 몰랐다.
에필로그 2
개 ㅡ 개가
엄 ㅡ 엄한 짓하다.
콩 가을이 저질러 놓은 저지레를 보면서 혼을 내기도 하지만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
종이봉투를 뜯던 콩이가 현장에서 잡히자 자기가 안 한 척한다.
눈치 없는 가을이는 그 종이봉투를 들고 가 마저 뜯다 현장범으로 몰린다.
하물며 개도 자기가 잘못한 것을 감지하고 혼나지 않으려 회피한다.
가톨릭 사제단에서 ‘어째서 사람이 이 모양인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을 냈다.
아직 사람으로 인정한 이 관용은 신앙에 바탕한 사랑 때문이리라.
이젠 사람으로 볼 수 없다.
히틀러가 600만 명을 죽이면서도 자기 행동을 합리화했다.
일상이 무너졌다.
나라의 최고 권력자의 악행을 저지레라는 정겨운 우리말은 도저히 쓸 수 없다.
24시간을 선명한 각성상태로 깨어있는 중이다.
10일이 넘도록 잠깐 잠들었다가 화들짝 깨어나고 잠시라도 뉴스를 놓을 수가 없다.
상황이 어떻게 되는지 알아야 대처할 수 있다는 극도의 생존에 대한 긴장감에 스트레스가 쌓이고 아드레날린이 폭포처럼 온몸을 적시는 중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다가 진땀이 흐르다가 울컥 눈물이 흐른다.
이 상황이 열흘이 넘게 계속되면서 살면서 겪었던 사회적인 트라우마와 가정폭력이라는 개인적인 트라우마까지 모두 깨어나 버린 상태다.
물론 전 국민이 비상계엄트라우마에 함께 잠겼다.
더하여 전쟁에 대한 공포까지 덮친다.
소확행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대신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가 2025년 트렌드가 된다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모두가 품고 사는 대한민국에서 보통의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글은 당연히 쓸 수 없었고, 써놓았던 글을 올리기도 힘들었다.
정원에 나가 서성이면서도 뉴스를 듣는다.
나는 우리나라 현대사를 살면서 계엄을 겪은 세대이다.
산업화와 정보화시대까지의 세찬 시대의 물결에 역동적으로 적응하며 살아왔다.
역사를 부전공했다.
불안한 마음에 미셀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꺼냈다.
글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 상황을 납득하기 위해 억지로 몇 장을 발췌해 가며 읽었다.
세계 전쟁사를 쉼 없이 공부했던 이유는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심리학에 접목 하여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응원봉을 든 MZ세대들의 시위를 보면서 자꾸 울컥울컥 눈물이 솟았다.
문화 대국을 꿈꾸었던 백범 김구 선생님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의 희망을 발견한 기쁨과 이 애통할 현실에 대한 깊은 슬픔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대로, 지금까지 해왔던 저항을 하러 떠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계엄'이라는 단어를 다시 듣게될줄 몰랐다.
에필로그 3
가을이 생일이 12월 3일이다.
가족이 다 집에 있는 일요일 12월 1일에 미리 행복한 생파를 했다.
임영웅 가수의 반려견 시월이도 3일이 생일인듯한데 그날 생파사진을 올렸다가 비난을 받고있다.
그런데 12월 3일이 이렇게 역사적인 날이 될지 몰랐다.
백범일지 中 나의 소원
3)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 폐지하면, 모두 성인(聖人)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大韓)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春風)이 태탕(?蕩)하여야 한다. 이것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는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든 일은 내가 앞서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 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한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이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의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일본의 이번 당한 보복은 국제적. 민족적으로도 그러함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실례다. 이상에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옛날 한토(漢土)의 기자(箕子)가 우리나라를 사모하여 왔고, 공자(孔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셨으며, 우리 민족을 인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는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나도 일찍이 황해도에서 교육에 종사하였거니와 내가 교육에서 바라던 것이 이것이었다. 내 나이 이제 70이 넘었으니, 직접 국민교육에 종사할 시일이 넉넉지 못하거니와, 나는 천하의 교육자와 남녀 학도들이 한번 크게 마음을 고쳐먹기를 빌지 아니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