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
낮달
나는 지금
내가 아닌 것에 둘러싸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바꾸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선택들과
끝내 낯설기만 했던 얼굴들의 바다 위를
천천히 건너가는 시간이다.
절망은 언제나
제 모습을 다 드러내며
하루의 작은 실패의 조각조차도
쇠사슬처럼 이어 붙여 발목을 감고 있다.
하지만 희망은
늘 이지러진 모습으로만
간신히 반쪽 얼굴을 내민다.
삶과 꿈의 각도가 조금 빗나갔을 뿐,
달은 언제나 둥글고,
한 번도 반쪽이 된 적이 없다는 걸.
낮달을 닮은 우리들의 꿈을
이제는 용서해 주기로 하자.
달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변덕스러운 건
지구 위의 나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삶이 조금 덜 쓸쓸해지고
너도 스스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낮달이 떴다.
사라졌다고 믿기에는
너무 오래 보아온 얼굴이라
한동안
파란 하늘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달은 늘 둥글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양만
매번 다르게 깎여 나갈 뿐.
사라지는 것과
사라져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희망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반쪽 난 적 없는데,
삶과의 각도가 어긋난 날이면
가느다란 조각으로 떠오른다.
단지 내가 서 있는 지구 쪽에서
너의 둥근 몸 가운데
절반쯤밖에
빛을 건네받지 못했을 뿐인데,
인생의 대부분을
조각처럼 머뭇거리며 떠 있는
나라는 존재의 반원을,
나는 얼마나 자주
가볍게 지워버리려 했던가.
희망이 작아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길과
네가 지나던 길이 달랐을 뿐인데,
너에게 닿은 빛을
누군가의 창가로 옮겨
다시 한번 건네줄 수 있다면,
그 정도면 한 사람의 인생으로
충분히 둥글었다.
낮에 반달이 보이는 이유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일 때는 보름달이 보이고
태양–지구–달이 각도가 어긋날 때는 위치에 따라 초승달이나 반달로 보인다.
달은 지구 주위를 공전하며 모양이 변한다.
태양과 지구의 위치 관계에 따라 반달이 낮에 보이는데 보름달처럼 태양의 정반대 편에 위치한 경우, 해가 진후에 달이 뜨지만, 반달은 낮 시간에도 태양과 지구의 위치에 따라 떠 있다.
낮에 반달이 보이는 이유는,
달이 스스로 빛나는 별이 아니라 태양빛을 반사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대낮의 하늘은 태양빛이 대기에서 산란되어 파랗게 빛나지만,
달 표면도 태양빛을 강하게 반사하기 때문에 푸른 하늘 속에서 한 점 더 밝은 얼룩처럼 떠올라 우리 눈에 보이게 된다.
달은 지구 주위를 돌며 모양을 바꾸고,
태양과 지구 사이의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초승달, 반달, 보름달로 보이는 것이다.
보름달처럼 태양의 정반대 편에 있을 때는 해가 진 뒤에 떠올라 밤하늘을 밝히지만,
상현과 하현 무렵의 반달은 낮과 저녁, 새벽하늘에서 해와 나란히 떠 파란 하늘 위에 흰색으로 걸리곤 한다.
그래서 낮달은, 태양의 곁을 떠나지 못한 채,
밝은 하늘 속에서 조용히 빛나는
‘태양빛의 한 조각’이라 할 수 있다.
달은 언제나 둥글지만, 우리 눈에 보이는 모양이 다를 뿐이니
희망과 절망도 그와 같지 않을까?
내 꿈은 작아 보이고, 소망이 이지러진 듯 느껴지는 시간.
하지만 초승달도 보름달도 원래 모습은 둥글다는 사실처럼,
지금 작아 보인다고 해서 원래부터 작은 것은 아니라는 위로를 건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