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씨의 장례식(葬禮式)
풀씨의 장례식(葬禮式)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풀씨 하나의 장례식이 열렸다.
상주는 없다.
조문객도 없다.
검은 상복 대신
낙엽 몇 장이
갈색 어깨를 포개 앉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한 번도
인생을 탓한 적이 없이
자기 안의 초록을 봉투처럼 접어
보이지 않는 약속을
바람 주머니에 넣고
훌훌 떠났다.
우리도 종종
이런 장례식을 치르지 않던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조용히 묻어버리는 꿈들,
괜찮아, 괜찮아 라며
스스로에게 영정 사진을 걸어준 희망들,
누구의 위로도 받지 못한 채
서랍 속에서 사망 신고를 마친
낡은 일기장.
그 모든 것이
풀씨의 관 옆에
나란히 놓여 있다.
언젠가
모두의 기억 속에서조차
사라져버린 이름들,
인사도 없이 떠난 관계들,
끝내 말하지 못한 사랑의 언어들이
우리 안에서
조용히 장례를 치른다.
그러나
장례식이 끝나는 자리에
언제나 그렇듯
작은 초록별 하나 숨어있다.
풀씨의 장례식(葬禮式)을 마치고
허무한가?
그렇다.
오랫동안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살아왔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바로 옆 어딘가에서 죽음이 조용히 서성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철학의 언어로 죽음을 더듬어 보고,
종교의 언어로 죽음을 붙잡아 보았고,
끝내 문학의 언어로 죽음을 어루만져 보았다.
모자란 글쟁이지만, 결국 내 마음을 가장 깊이 울린 건 언제나 문학적으로 만나는 죽음이었다.
천상병의 〈귀천〉을 읽으면, 죽음이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라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느껴진다.
그는 죽음을 ‘소풍 끝내는 날’이라 말하며, 생의 마지막마저도 이슬처럼 맑게 받아들인다.
삶을 괴로움이 아닌 선물로, 죽음을 끝이 아닌 귀향으로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이 따뜻해서 마치 좋은 친구와 마지막까지 나란히 걷는 기분,
이것이 문학이 건네는 가장 다정한 동행 아닐까.
이어령 선생님의 『눈물 한 방울』을 읽고 난 후 나는 비로소 오래된 집착 하나를 내려놓았다.
“의미 있는 삶이 아니라면 모두 허무하다”는 믿음.
그 믿음 때문에 나는 끝없이 ‘의미’만을 좇으며 오늘이라는 소중함을 잊어버리곤 했었다.
그러나 죽기 한 달 전, 떨리는 손으로 눌러쓴 선생님의 육필 원고에서 조용한 해답 하나를 건네받았다.
풀씨를 보며 알게된다.
풀씨는 한 번도 자기 인생을 탓하지 않는다.
자기 안의 초록을 봉투처럼 소중히 접어 보이지 않는 약속으로 만든 뒤 그저 바람에 맡길 뿐이다.
허무한가?
그렇다.
그러나 그 허무의 밑바닥에는 우리가 볼 수 없고, 아직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우리의 실패도, 좌절도, 잊힌 꿈들도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누군가의 봄을 밀어 올리는 보이지 않는 뿌리가 될지 모른다.
허무는 허무로 끝나지 않는다. 그 사실이야말로 삶이 던지는 가장 깊고 조용한 위로이다.
허무한가?
여전히 그렇다.
귀천(歸天)
천상병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어령 선생님의 육필 원고 담긴 마지막 책 『눈물 한 방울』 중에서
이어령의 육필 원고 담긴 마지막 책 『눈물 한 방울』 * 출처 : 채널예스
고 이어령은 “내가 ‘눈물 한 방울’에 대해 말한 인터뷰가 있으니 비교 정리해서 서문에 실어달라”고 말했다.
글: 엄지혜 사진: 출판사 제공
2022.07.01 * 출처 :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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