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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무늬가 있는 시(詩)

원평소국

by 보리

원평소국



사랑도 가끔은 이런 꽃일지 모른다.



한 번 마음 옮겨가면 돌아오지 않는,

그 가벼운 결심 위로

속수무책의 꽃송이들이 쏟아져,


사랑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의 온도처럼,

종이컵 안에서 식어가는 커피

낡은 의자에 남아있는 체온같이

아쉬워지는 일.


사랑과 잡초 사이쯤에서

서서히 달라지는 마음의 색.

몇 번을 잘라내도 다시 돋아나

허락 없이 넘어가

쉽게 놓지 못하는 마음일지 모르겠다.



비워 둔 줄 알았던 자리마다

어느새 가득 엉겨 붙은 줄기들.

아무렇게나 꽂아둔 꽃이

터지지 못한 봉오리를 쥐고

잔바람에도 고개를 흔드는

이 작고 환한 얼굴을 어찌하랴.


떠나려 할수록 또렷해지는 흉터들,

사랑받지 못해도

사랑하는 힘으로 버티는

첫사랑이거나,

마지막 사랑이었을지 모를 계절이

끝내 풍경을 바꾸어 놓고,


내가 나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다.





원평소국이 처음 피었을 때, 나는 사랑이 이런 얼굴을 하고 있구나, 했다.

작은 꽃송이가 맨 처음엔 흰빛으로 피어 가장자리부터 천천히 붉거나 분홍으로 물들어 가는 모습은 너무나 매혹적이었다.

아침마다 자잘한 꽃송이를 수없이 매단 꽃무더기 앞에 쪼그려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보곤 했다.


시든 꽃송이를 잘라내면 금세 더 많은 줄기가 올라와 또 다른 꽃다발이 되었다.

한 번 피는 데서 끝나지 않고, 봄부터 초겨울까지 지치지도 않고 꽃을 이어 피웠다.


사 년째,

척박한 땅에서도 스스로 기세를 넓혀가는 꽃무더기가 너무 많아져 꽃송이를 자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씨앗이 영글기 전에 꽃송이를 잘라야 씨앗으로 번식하지 않는다지만 그냥 두다 보니, 가벼운 씨앗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 여기저기에서 제멋대로 싹을 올리고 있다.

한 이태쯤은 원평소국에 빠져 애지중지 돌보고, 물 주고, 사진을 찍으며 지냈다.

많은 사진을 찍었는데 그 사진을 어디 두었는지도 몰라 못 찾았으니....


그러다 문득,

무성해진 꽃 앞에 서서 예전만큼 마음이 설레지 않는 나를 보고, ‘사랑이 시작될 때와 끝날 때의 온도’를 떠올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흰색으로 눈부시게 피어나던 꽃이 서서히 분홍으로 물들다가 떨어지듯, 사랑도 처음에는 순수한 흰빛으로 다가오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과 불안, 기대와 집착이 뒤섞인 색으로 변하고 끝내는, 서서히 식어가는 온도 속에서 마른 꽃으로 자리를 비운다.


사랑이란,

대상이 얼마나 사랑스러운가를 말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은 내가 얼마나 오래, 얼마나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인가로 알게 되는 일인지도 모른다.


사랑의 대상보다 사랑하는 나의 방식,

붙잡고, 욕심내고, 무심해지는 나의 모습이 존재로서의 나를 드러낸다.


어느 곳에서는 원평소국을 잡초라고 한다.

너무 잘 자라고, 너무 빨리 퍼지는 그 무성한 사랑이 잡초라고 불리게 된다.

한때는 선물처럼 보이던 생명이

어느 순간부터는 통제되지 않는 상태가 되는 것처럼

사랑도 그렇게 ‘과한 것’이 되어버리곤 한다.


그럼에도 꽃말처럼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끝없이 고백하는 사랑의 힘.

꽃을 보는 마음이 예전처럼 두근거리지 않고, 사랑의 고백에도 마음이 무덤덤해진 걸 보면 변한 건 꽃이 아니라, 그 꽃을 바라보는 내 마음의 온도라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랑이 식었다는 것은

반드시 사랑이 틀렸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너무 무성해져 버린 마음을 어디까지 남기고 어디까지 덜어낼지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꽃말


사랑과 순수함, 밝은 마음, 성실, 실연, 질투, 가련한 애정 등의 다양한 꽃말을 가지며, 특히 사랑의 상징



이름


원평소국(源平小菊)은 멕시코개망초(Erigeron karvinskianus)를 뜻하며 일본 가마쿠라 막부 시대의 유명한 무사 가문인 '원(源, Minamoto)'씨와 '평(平, Taira)'씨의 싸움에서 유래했다. 이 꽃은 처음에는 흰색으로 피었다가 점차 붉은색으로 변하는데, 마치 흰색의 원씨(源氏)와 붉은색의 평씨(平氏)가 서로 대립했던 역사적 사건을 상징하는 듯해서 '원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다른 이름


오색소국, 오색국화, 미국 좀쑥부쟁이



원평소국에 대하여

원평소국의 학명은 Erigeron karvinskianus DC이고, 영어명은 Mexican fleabane, Mexican daisy, 또는 simply Fleabane로 원래 중미, 특히 멕시코와 과테말라 지역이 원산지이다. 적응력이 강해 잡초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스스로 씨를 뿌리고 척박한 토양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가졌다.

국내 도입 시기는 명확하지 않으며 관상용으로 도입되어 현재는 정원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흰색에서 분홍빛으로 변하는 작은 꽃으로, 봄부터 늦가을까지 피며 생명력이 매우 강해 어디서든 잘 자란다.

원평소국은 여러 문화에서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유럽에서는 특히 사랑의 상징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러한 꽃의 아름다움 덕분에 발렌타인 데이와 같은 특별한 행사에서도 많이 사용된다.

결혼식, 생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정을 표현할 때, 이 꽃은 그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사랑의 메시지로, 특별한 순간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든다.

특히 혼례식에서 원평소국은 신부 부케 그리고 장식으로 많이 사용되며 사랑과 순수한 마음을 대변하며, 화합과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데 최적의 선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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