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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현 Dec 15. 2019

나만의 개성이 있는 스냅사진을 찍고 싶다면

현대 사진의 대가, 구본창은 스냅을 어떻게 찍을까

 21세기 사진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셀카(Selfie)일 테다. 셀카만큼이나 무섭게 성장하는 장르가 있는데 바로 스냅사진(Snapshot)이다. 돌스냅, 웨딩 스냅, 커플 스냅, 우정 스냅 등 스냅이 뒤에 붙은 단어만 수십 가지. 하지만 이런 스냅도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찍는 사진이라는 점에선 셀카와 유사하다. 단지 사진을 찍어 주는 사람이 내가 아닌 전문 사진가라는 점만 다를 뿐이다.


 그러나 오늘 얘기하려는 스냅사진은 그런 스냅들은 아니다. 본래 스냅사진은 연출을 가하지 않고 우연적으로 찍은 사진을 뜻한다. (‘-스냅’ 류의 사진은  엄밀한 의미에서 원래의 스냅사진과는 다르다. 자연스러운 인물 사진을 찍기 위한 작가의 연출이 어느 정도 들어가기 때문이다.) 쉽게 생각해서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우연히 마주치는 피사체들을 촬영하는 행위를 떠올리면 된다. 특히 스냅사진은 어떤 부가 장비도 필요 없이 오직 카메라 1대만 있으면 된다는 점에서 아마추어 사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아마 내가 찍은 사진의 99%는 스냅사진일 것 같다.


 문제는 진입 장벽이 낮은 만큼 스냅사진을 잘 찍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보다 정확히는 나만의 개성이 있는 사진을 찍기가 어렵다. 대다수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스냅사진 찍기 좋은 여행지 9곳” 같은 곳을 찾아 떠나지만, 대개의 결과물들은 기존에 유행하는 스타일의 반복일 뿐 독창적인 사진들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프로 사진가들은 스냅사진을 어떻게 찍을까? <비누>, <백자> 등 매번 그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선보여 현대 사진의 대가에 오른 구본창 작가의 스냅 사진전 <Incognito>가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운 좋게도 구본창 작가와의 Artist Talk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그가 스냅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의 촬영법은 내가 알고 있던 기존의 상식들과는 분명히 달랐다.


구본창, <긴 오후의 미행>


1. 무의식적으로 찍는다.


 구본창 작가의 첫 스냅사진 시리즈인 <긴 오후의 미행>은 독일에서 유학 생활을 마치고 85년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의 불안하고 우울한 감정들을 기록한 작품이다. 그는 이때 거리를 다니면서 최대한 무의식적으로 찍으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 작품은 구성이 거칠고 때론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긴 오후의 미행>에는 군부 정권 아래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반항감,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같은, 방황하는 청춘의 느낌이 사진에 자욱하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봐도 현대적이고 독창적인 사진들이다.


 그가 굳이 무의식적으로 찍으려 했던 이유는 뭘까? 어떤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한다는, 촬영에 대한 이성적인 태도가 때로 사진의 독창성을 저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특히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안정적 구도, 적절한 빛, 이에 알맞은 조리개 값과 셔터 스피드로 완벽한 순간을 담아내려 한다. 대다수가 그렇게 사진을 배우기도 하거니와 그게 틀린 접근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사진의 개성은 사진의 기술적 완성도와는 별개의 문제다. 나만의 색깔이 있는 사진을 찍는 좋은 방법 중 하나는 피사체를 맞닥 뜨렸을 때 느끼는 나만의 감정을 담는 것이다. 그 내면의 감정은 너무 순간적이어서 때론 프로 사진가도 알기 어렵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찍어야 하는 것이다. <긴 오후의 미행> 연작의 시초가 된 사진을 찍었을 때, 구본창은 제주 탑동 앞바다에서 뭍으로 기어오르던 아이의 모습이 당시 자신과 비슷해 보인다는 그 느낌 하나에 셔터를 눌렀다고 한다.


2. B컷을 지우지 않고, 나중에 다시 찾아본다.


 옷장에 자꾸만 쌓여 가는 옷들처럼 사진도 찍다 보면 어느새 짐이 된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하드디스크의 용량도 감당이 안 되고, 장수가 너무 많아지다 보니 사진을 분류하고 다시 찾아보는 것도 어렵다. 필름과 다르게 디지털카메라는 이미지를 바로 확인할 수 있어, 최근에는 찍고 나서 애매해 보이는 B컷들은 바로바로 삭제하는 게 습관이 됐다. 그러나 구본창은 정반대였다. 그는 B컷들도 웬만해선 지우지 않고, 나중에 다시 찾아보는 편이라고 말했다.


 그가 B컷을 지우지 않는 이유는 명료했다. 셔터를 누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막상 사진을 찍고 나선 바로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서 B컷들을 다시 돌아보면, 자신이 어떤 피사체와 어떤 순간들에 관심과 흥미를 느끼는지 알 수 있고, 그게 다음 작품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도 예전에 찍었던 사진들을 다시 쭉 꺼내보았는데, 평소 찍었던 스타일과 달리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의 사진도 종종 찍었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론 우울한 스타일의 사진들도 좀 더 찍어볼 것 같다.


다시 찾아봤던 B컷 중 한 장

 

3. 무조건 혼자 다닌다.


 구본창이 Artist Talk에서 청중들에게 강조했던 점은 “사진은 꼭 혼자 찍으러 다니세요.”였다. 유명한 출사지들에 가 보면 큰 카메라와 삼각대를 들고 우르르 몰려다니는 사람들이 꽤 많다. 하지만 똑같은 피사체를 똑같은 상황에서 찍다 보니 비슷한 사진들만 나오게 된다. 구본창은 과거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여러 사람과 동행했을 경우, 지금 현실에 빠져 촬영하는 대상과의 이야기를 만들어 낼 기회가 없어 단지 대상물의 겉모습만을 기록하는 사진으로 남게 됩니다. 촬영하는 대상물과의 소통을 위해서는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 피사체와의 교감으로 촬영에 몰입해야 합니다.”


 사진 동호회를 오래 하고 있는 입장에서, 맘에 맞는 친구들과 함께 출사를 다니는 즐거움을 버리는 게 쉽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돌이켜 봐도 개성 있는 사진들은 대부분 혼자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을 때가 많았다. 남들과는 다른 사진을 찍고 싶으면 되도록 혼자 다니자. 출사를 꼭 같이 다녀야 한다면 동행에게 양해를 구하고 따로 쪼개져서 다니자.




 이번 토크에서 구본창 작가는 80년대 독일에서 한참 사진을 공부할 때 찍었던 유럽 사진들을 최초로 보여주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랄프 깁슨 등 20세기 대가들의 스타일이 묻어 나는 좋은 사진들이었다. 그는 이 사진들을 들고 한 번 평가받고자 독일의 어느 사진가를 직접 찾아갔다. 그 사진가는 구본창의 사진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네가 찍은 사진은 꽤 좋아. 하지만 네가 찍어야 할 건 유럽 작가처럼 찍는 게 아니라, 너 자신처럼 찍는 거야.” 나만의 색깔이 있는 스냅사진을 찍고 싶다면 구본창의 3가지 조언을 우선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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