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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상현 Feb 25. 2020

플레이드 인수에 6조를 베팅한 비자의 빅 픽쳐

지불 결제의 공룡, 비자(VISA)가 꾀하는 변화 

 올 1월, 비자(VISA)가 핀테크 회사 플레이드(Plaid)를 6조원에 인수했다. 최근 국내에서 가장 화제였던 배달의 민족의 매각액 5조 원보다 1조 원이나 높은 가치다. 플레이드의 연 매출은 1,000-2,000억 규모로 추정되는데, 비자는 플레이드의 기업 가치를 매출의 최소 30배 이상으로 판단한 셈이다. 플레이드는 뭘 하는 회사고, 비자는 그들을 인수해 뭘 하려 하길래 6조란 거액을 베팅한걸까.


Plaid는 미국판 오픈 뱅킹이다


 플레이드가 하는 일은 쉽게 말해 은행과 핀테크 업체 간의 API 중계업이다. 토스가 초창기 펌뱅킹을 뚫기 위해 고생했던 것처럼, 은행 특유의 보수적 문화와 폐쇄적인 IT 시스템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플레이드의 창업자 잭 페럿과 윌리엄 하키는 가계부 앱을 첫 사업 아이템으로 구상했는데, 은행 계좌 연결 작업이 너무 어렵다는 걸 느끼고선 API를 통해 연동 업무를 수월하게 만드는 사업으로 방향성을 틀었다. 핀테크 회사들은 플레이드의 서비스를 활용해 은행과의 제휴 및 연동 작업을 줄이고,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금융서비스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플레이드의 서비스는 지난 12월 국내에 출범한 오픈 뱅킹이 하는 일(금결원이 운영한다)과 개념적으로 동일한데, 규모 면에선 차이가 크다. 오픈뱅킹을 통해 연결할 수 있는 국내 은행은 18개, 오픈뱅킹 서비스를 이용 중인 핀테크 업체는 88개다. 반면 플레이드와 연결된 금융기관은 11,000개, 플레이드 API를 이용 중인 핀테크 업체는 2,600개 수준으로 압도적인 규모다. 국내에도 많이 소개 된 미국의 대표 송금앱 Venmo가 플레이드의 대표적인 고객이다. 플레이드는 고객이 계좌를 연결할 때와 연결된 계좌에서 거래가 발생할 때 핀테크 회사들로부터 수수료를 받는다. 


 플레이드의 사업 모델은 단순하고 고객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플레이드의 가치가 높이 평가 받은 건 그들의 플랫폼이 갖는 교차 네트워크 효과 때문이다. 교차 네트워크 효과란, 양면 시장에서 한 쪽의 참여자가 많아질수록 다른 쪽 참여자도 늘어나고 동시에 참여로 인한 효용도 커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러한 플랫폼을 가진 회사들은 시장을 차츰 독점하는데 페이스북이나 아마존이 대표적인 사례다.


  플레이드도 비슷한데, 핀테크 회사 관점에선 수 백개 은행과 제휴하는 대신 수수료를 주고서라도 플레이드를 이용하는 게 효율적이다. 이렇게 플레이드를 쓰는 핀테크 회사들이 많아지면, 은행들 또한 핀테크 사들과 개별적으로 연동할 유인이 점점 떨어진다. 플레이드와 연동하면 운영 리소스가 확 줄기 때문이다. 그렇게 플레이드의 네트워크는 점점 더 커지고, 핀테크 회사와 은행 모두 플레이드 없이 서비스를 운영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고객의 은행 계좌를 연결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Plaid가 하는 일이다.


핀테크 시대를 대비하는 VISA

 

 잘 알려져 있듯, 비자는 상점, 고객, 은행을 잇는 카드 기반의 지불 결제 네트워크를 구축해 엄청난 수익을 내고 있는 지불 결제 산업의 공룡이다. 비자 또한 앞서 말한 네트워크 효과를 톡톡히 누린 기업 중 하나다. 2018년 기준 비자의 거래액은 82조원, 거래량은 1,243억 건, 매출은 22조 원에 달한다. 고객들은 비자카드 하나로 전 세계의 상점에서 결제할 수 있고, 상점은 오는 손님 모두가 돈을 쉽게 지불할 수 있도록 비자카드를 받을 수 밖에 없다. 은행은 별도의 결제망을 구축하는 대신 비자망을 이용해 자사 고객들에게 원활한 결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핀테크 산업이 성장하면서 비자의 독점적 지위도 조금씩 위협 받고 있다. 최근 한중일 간편결제 사 간의 해외 결제 제휴가 대표적인 사례다. 각 국의 간편결제사들이 자체 구축한 모바일 결제 네트워크를 직접 연동하면 비자의 네트워크를 충분히 우회한 크로스보더 결제가 가능하다. 물론 절대적인 결제 가맹점 수는 아직 열세지만 가맹점을 확보하려는 간편결제 사들의 투자 또한 만만치 않고, 비자 대비 저렴한 수수료도 강점이다. 비자의 고객들을 빼앗으려는 핀테크 회사들의 시도는 계속될 것이다. 


 비자는 핀테크로의 시대적 흐름에 저항하는 대신, 그 흐름에 올라탈 수 있는 회사를 적극 인수하고 있는 모양새다. 이미 지난해 비자는 Earthport를 인수하면서 "Beyond the Card", 카드를 넘어선 결제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비자의 미래 전략 관점에서, 핀테크의 핵심 기반 네트워크를 가진 플레이드의 인수는 6조라는 거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는 중요한 결정이었던 셈이다. 또 플레이드의 사업 모델이 기존 비자의 사업 모델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비자는 그들이 가진 성공 경험과 역량을 활용해 플레이드를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라인은 네이버페이(한)-위챗페이(중)-라인페이(일) 제휴를 통해 본격적인 크로스보더 결제 사업 진출을 예고했다.



VISA가 추진할 플레이드의 성장 전략


 비자가 단기간 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크게 2가지가 있을 것 같다.


 첫째, 전세계에 확보한 비자의 제휴 네트워크를 활용해 플레이드의 사업을 해외로 빠르게 확장할 수 있다. 비자는 현재 6개국, 200여개 국가의 수 많은 은행들과 제휴를 맺고 있을 뿐 아니라, 플레이드와 같은 스타트업이 은행을 상대로 가지기 어려운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 (은행들 대다수가 막대한 수수료를 매년 비자에 지불한다.) 비자의 이런 제휴 역량은 아직 북미 대륙에 한정되어 있는 플레이드의 해외 진출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둘째, 플레이드의 핀테크 고객들을 대상으로 오프라인 결제 기능을 제공할 수 있다. 예를 들면, Venmo를 이용하는 고객이 비자 가맹점에서 QR코드나 NFC로 결제하고, 결제 금액은 Venmo에 연결된 계좌에서 빠져나가는 그림이 가능하다. 오프라인 결제 가맹점, 특히 해외 가맹점 확보가 어려운 핀테크 회사들에게는 사업 확대를 위해 꽤나 매력적인 서비스가 될 것이다. 플레이드는 늘어나는 거래액의 수수료를 수취할 수 있고, 비자는 자신들의 결제 네트워크 이용 기관을 핀테크 업체까지 확장할 수 있다. 물론 가맹점 일부가 모바일 결제를 지원하지 않는 문제는 있겠지만 충분히 진행 가능한 사업 모델이다.  


 몇 년 전부터 국내 금융권을 휩쓸었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핀테크 산업의 성장에 따라 이젠 정말 바뀌어야 살아 남는다는 불안감이 작용한 결과다. 하지만 대다수 금융기관이 무의미하게 앱을 새로 출시하고 갈아엎기를 반복하는 '디지털 흉내내기'에만 그쳤고, 근본적인 사업 모델 변화를 추진한 곳은 드물다. 반면 비자는 전통적인 카드 기반의 결제 사업을 지켜 나가는 동시에, 모바일로의 변화 또한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금융사들이 참고해야 할 중요한 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다. 비자와 플레이드가 앞으로 만들어 갈 새로운 지불 결제 네트워크의 모습이 궁금해진다. 



시장의 빠른 변화에도 불구하고 VISA는 탄탄하게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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