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달은 계속된다
29살이 되어 지난 20대를 돌이켜 본다. 역시나 생각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나의 20대는 어떤 한 가지에 몰두해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가지를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그런 시간에 '한 가지라도 제대로 하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들려준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은 모두 다른 방식으로 의미 있는 삶의 스타일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나의 경우에는 20대가 그런 다채로운, 일관성 없는 경험들로 가득 차게 된 것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운이었다. 잘 된 것도 있었지만 좋은 결과를 거두지 못한 것들도 있었다. 돈이 되는 것들도 있었지만 쏟아붓기만 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원하는 것, 하고 싶었던 것들을 '했다는 것', '해봤다는 것' 그 자체가 나를 가득 찬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퇴사하던 순간부터 그려왔던 두 달의 여행도 그러할 것이다. 여행을 다녀왔다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고 일상의 고민, 먹고사는 문제도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났던 사람, 맡은 냄새와 느꼈던 기운, 멋진 그림과 음악을 만나 충만했던 기억들,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로부터 오는 경이로움, 인간의 잔혹함이 만들어낸 역사에서 느끼는 절망과 슬픔, 처음 보는 것들에 낯설어하고 상상하던 경험들, 혼자가 되어 겪었던 외로움, 고독, 자유, 다른 사람에게 받았던 호의와 위로, 따뜻함. 그런 것들이 새롭게 나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세상 어딘가 곳곳에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들의 방식으로 만들어간 서로 다른 세계를 보면서, 나는 그것들을 참조해가며 내가 살아가는 이곳을 더욱 멋진 곳으로 만들어가며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생각보다 내가 사는 이곳도 새롭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을 느끼고 돌아왔다. 다른 세상, 새로운 삶이 있음을 안 것만으로 나에게는 그런 가치가 있었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아도 이미 다른 ‘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런 내가 되어 다시 일상으로 돌어가 열심히 살아가려고 한다. 하지만 언제든 또 나만의 방학이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어느 멋진 달'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올 수도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다. 20대의 어느 시기에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