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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진 May 28. 2017

인도의 딸

  인도에 가기로 결정하고 나니 국제뉴스에서도 유난히 인도 관련 소식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출발 몇 개월 전부터 인도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건에 대한 뉴스가 연이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여행을 만류했고 나 역시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행 한 달 전인 1월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성범죄만 해도 세 건이 넘었다.  피해자들은 주로 유럽, 미국에서 온 여성 여행자들이었다. 인도를 여행하던 51살 덴마크 여성이 뉴델리 기차역 부근에서 집단성폭행을 당했고, 두 살배기 아이와 여행하던 폴란드 여성 역시 택시기사로부터 피해를 입었다. 18살 독일 여성이 인도 서부에서 동부로 가는 기차 안에서 성폭행당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인도 당국 역시 잇따른 성범죄 탓에 관광객 수가 급격히 감소하자 최고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는 등 강력대책을 마련에 나섰다고 한다.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결정적으로 관광 수입 때문이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씁쓸하기도 하지만 여성 여행자로서 인도의 성범죄가 하루빨리 근절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쯤 되면 당연히 궁금했다. ‘도대체 왜? 인도에는 이렇게 성범죄가 많이 일어나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것인가?’ 인도를 여행하며 이러한 궁금증을 안고 인도 사회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길거리와 학교의 풍경, 인도 사람들과의 대화, 다큐멘터리를 보기도 했다. 인도를 여행하며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었다. 시골의 작은 학교인데도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의 놀이는 명확히 구분되어 있었고 거의 함께 어울려 노는 경우가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도 그렇긴 했지만 빨간색, 파란색으로 나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내외가 유독 심해 보였다. 줄을 설 때도 남학생, 여학생이 따로 선다. 

  델리에 처음 도착해 놀란 것은 길거리에 죄다 남자뿐이라는 것이었다. 가뜩이나 길거리에 사람이 많아 놀랐는데 그들은 모두 남자였다. 바라나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점 주인은 모두 남자, 길거리에서도 인도의 여성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인도에는 왜 이렇게 남자가 많나요?, 여자들은 어디에 있나요?’ 내가 물었다. ‘여자들은 ‘집’에 있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이지 않는 여성들은 집에 있었다. 인도의 여성들은 대부분 머리를 길게 기르고 전통의상을 입고 다닌다. 여행 중에 단발머리를 한 여성을 찾아보기란 어려웠다. 인도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여성과 남성에 대한 구별이 다른 어느 문화권보다도 강하게 남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성폭행을 이야기하면서 ‘성별의 구분’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은 ‘구별’이 ‘차별’을 낳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여성과 남성이 다르고, 각자의 영역이 있다’는 생각은 얼핏 보면 단순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개인의 다른 어떤 특성들보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보면서 각자의 영역을 고정시키는 ‘구별’은 곧 차별과 폭력으로 쉽게 이어진다. 여성을 우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인식 역시 마찬가지다. ‘여성은 아름다운 존재이기 때문에’, 여성을 꽃이나 다이아몬드 비유하면서 ‘지켜주기 위해’라는 모든 진술 역시 구별이자 차별이다. 여성을 동등한 주체로 인정하지 않은 채 성적 대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뿌리 깊게 자리 잡은 구별적 인식, ‘여성은 생물학 적으로 약하고 예민하며 보호해야 할 대상이다. 여성은 아름다워야 하고 꽃과 같으며 가정에서 좋은 엄마, 아내여야 한다’는 얼핏 ‘긍정적’으로 ‘보이는’ 인식이 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더해 남성의 성은 해소되어야 하며 절제될 수 없다는 환상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위의 진술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다.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누는 것은 생각보다 절대적인 구분이 아니다. 남성 여성이라는 차이보다 때로는 여성들 간의, 남성들 간의 차이가 더 크다. 우리는 왜 인간이 가진 여러 차이 중에서도 ‘성별’에 그렇게도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인도의 성범죄는 외국인뿐 아니라 인도 여성들에게도 심각한 문제이다. 2012년 델리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은 인도인들에게 각성을 촉구했다. 당시 23살이던 의대생이 그리 늦지 않은 시간에 달리는 버스에서 여섯 명의 남성에게 강간을 당해 숨겼다. 인도 전역에서는 전례 없는 저항과 시위가 일어났다. 

  <인도의 딸>은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다. 레슬리 우드윈이라는 영국인 감독이 연출했다. 피해자의 부모, 가해자와 그의 변호인, 피해자의 친구의 인터뷰가 담겨있다. 이 다큐멘터리에는 사건의 주범이자 버스 운전사인 무케시 싱이 모자이크 하나 없이 얼굴을 공개하며 인터뷰를 해 논란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에는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 


"정숙한 여자라면 밤 9시에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 생폭행에서 여자의 책임이 훨씬 크다. 저항하지 않고 성폭행을 받아들였다면 그냥 버스에서 내려줬을 것이고, 남자 친구도 그냥 때리기만 했을 것" 


범죄자의 말보다 더 가관인 것은 성폭행 범을 변호하는 변호사의 말이다. 


"내 딸이 수치스러운 행동을 한다면 불에 태워 죽였을 것", "여성은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 하는 꽃이고, 아무 데나 두면 범죄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다이아몬드 같은 존재"


 범죄자는 차치하더라도 사회의 엘리트이자 법체계를 다루는 변호사들의 가치관을 들으며 우리는 인도 사회의 여성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장면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는 인도 법원으로부터 상영금지 처분을 받았다. 대중의 항의로 인한 긴장과 공포 분위기로 인한 우려 때문이었다. 인도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영국인 여성이 인도 남성들의 세계관에 대해 낱낱이 밝히는 것이 달갑지 않았던 것일까? 

  하지만 다큐멘터리 말미에 등장하는 성폭행에 분노한 시민들의 시위와 투쟁 속에서 인도의 희망과 가능성을 보았다. 이 다큐멘터리가 인도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는 동의할 수 없다. 어쨌든 인도 당국은 시민들이 무섭긴 한가보다. 실제로 인도 나갈랜드 주에서는 분노한 인도의 시민들이 성폭행범을 교도소에서 끌어내 폭행해 숨지게 한 뒤 그 시신을 탑에 매다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인도의 여성들, 인도를 찾는 외국 여성들에 대한 폭력은 유달리 포악한 인도 남성들의 기질이나 넘치는 성욕에 기인한 것이 아니다.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성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세상 그 무엇보다 중요한 차이인 냥 의미를 부여하고, 구별하는 인식체계에서 온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역시 인도는 미개하다’, ‘우리나라 조선시대 같다’며 성급한 일반화와 사안에 대한 단순화를 시도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인도에 저런 변호사들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도의 여성학자들, 시민운동가들, 시민들은 실제로 이 같은 사고방식과 인식에 끊임없이 분노하고,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그 역시 인도다. ‘성희롱’이라는 말조차 없었던 90년대 우리는 저 변호사들의 주장과 비슷한 말을 익숙하게 들어야 했다. 몇 가지 표현만 바꾼다면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말들이지 않은가? 지금 인도의 여성들, 시민들처럼 그에 맞서 싸운 한국의 여성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인도에도, 한국에도 항상 존재해왔다. 무엇을 볼 것 인가, 무엇이 보이는가는 전적으로 상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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