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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Feb 22. 2022

때때로 하이쿠 <117>

2022년 2월 22일











흩어졌어도

혹 흩뿌려졌어도

하나의 씨앗




 평소와 같이 회사에서 손님맞이로 분주하던 어느 날, 내내 잠잠하던 제 핸드폰에 별안간 알람이 계속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화면을 보니 어느 단톡방에 제가 초대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름, 얼굴, 사진들을 살펴보다가 반가움에, 그리고 밀려드는 기억에 한동안 저도 모르게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20년 전, 하루가 멀다 하고 자주 만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눴었지만 주로 아이들과 종교, 신앙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한 명이 '2022년 2월 22일에 만나자'는 의견을 냈고, 저는 당시에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나중에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이 날 어디 어디로 나오라고 했었지요. 2022년... 2002년 20대 초반이었던 저에게는 마흔이 넘어있을 '2022년'은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는, 마치 미래 영화의 배경으로나 나올 듯한 아득하게 느껴지는 연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 후로 시간은 흘러 그 아득하게 느껴지던 2022년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마흔이란 나이도 모두 제 앞에 다가왔습니다. 분명 한 순간에 일어난 건 아닐 텐데, 느닷없이 그날이 다가온 것만 같은 기분은 무엇 때문일지요... 바로 등 뒤에서 커다란 종이 울린 듯 얼얼하기만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지날 동안, 참 바뀐 것이 많더군요. 다른 지역에서, 또는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 연락이 끊긴 사람, 그리고 아쉽게도 먼저 하늘나라로 올라간 사람...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살았지만 그렇게 일부는 흩어졌고, 또 어떤 이는 먼저 흩뿌려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20년 전의 시간을 되돌아보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누군가가 떠날 때마다 함께 부르던 노래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우리들은 민들레 씨앗 한 꽃 속에 머물다

  이제 바람이 불어오면 온 땅 위로 흩어져 가네

  다른 곳에 떨어져 헤어져 피어난데도

  똑같이 하늘 우러러 향내음을 풍길 꽃송이라오"


                                                                                     -가톨릭 청소년 성가, <송가>-



 같은 줄기에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 민들레 씨앗처럼 같은 봄볕을 맞다가 어느 날 바람이 일어 흩어지고 말았지만, 비록 흩어졌어도 혹은 이미 흩뿌려졌어도 각자의 서로 다른 자리에서, 여전히 같은 봄볕을 기다리는 하나의 씨앗들. 을 그려보았습니다.






#열일곱자시 #시 #하이쿠 #씨앗 #민들레 #봄볕 #일상 #순간 #찰나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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