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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수 Mar 18. 2022

때때로 하이쿠 <119>

2022년 3월 18일











 안개가 낀 밤

 고개를 내밀고서

 안갤 더하네




며칠 전 제주에는 짙은 안개가 꼈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1년여 동안 하지 않던 sns를 다시 하면서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녀의 노래처럼 몇 년 전, 전 이유도 없이 섬으로 들어왔고

그 후로 시간은 흘러

그녀를 처음 만났던 만화책들 사이사이에 테이블이 놓여있던 홍대의 한 가게가 사라진 것과

오랜만에 다시 그녀를 만나 기뻤던 제주 서쪽의 한 가게가 돌연 문을 닫아버린 것과

그날 공연을 마친 후 함께 피웠던 담배가 저와는 마지막 순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있었다면 올해 29살. 심장마비. 그녀가 하늘로 올라간 후 나온 2집 앨범...

뒤늦게야 그녀의 흔적을 쫓아가는 기분으로

새로 나온 음악을 듣고 이전 음악을 들으며

메신저에 남아있던 몇 마디 채 되지 않은 대화를 다시 읽어보면서


도대체 이 기묘한 기분은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또 동시에 그녀가 떠났다는 것은

봄햇살 같은 멜로디에 취해있었다가 비에 젖은 가사는 이제야 보였다는 것은

이따금씩 목인사를 나눴던 그녀가 지금은 전주 어느 납골당에 있다는 것은

느닷없이 닥쳐온 이 안개가 온통 세상을 적시고 있고

할 수 있는 건 그저 안갯속에서 고개를 내밀고

연기를 내뿜으며 안개를 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열일곱자시 #시 #하이쿠 #도마_늙지않는노래 #도마 #한잔의룰루랄라 #제주 #일상 #순간 #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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