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리엘의 웨딩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또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부정적인 일들이 모두 나의 잘못과 나의 결함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모두 있다. 지금은 스스로를 쓸모없는 사람이라 감히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가끔씩 일어나는 부정적인 상황들에 대해 나의 잘못과 나의 결함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에 휩싸이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내가 완벽해지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는 한다. 나의 환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 나의 삶을 어떻게 변할까?
호주의 코미디 영화 ‘뮤리엘의 웨딩’ 속 주인공 뮤리엘, 뮤리엘의 아빠는 가족들에게 ‘Useless’라는 말을 달고 살며, 뮤리엘의 친구들 또한 뮤리엘에게 촌스럽고 뚱뚱하다며 뮤리엘을 따돌린다. 결국 정치인 아빠의 비자금을 훔쳐 뮤리엘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뮤리엘은 고등학교 친구 론다를 만나게 되고, 급속도로 친해진 둘은 오랫동안 살아왔던 애증의 고향 ‘포포이즈 스핏’을 떠나 시드니에서 함께 살게 된다. 시드니에서 론다의 도움으로 완전히 새 삶을 살게 된 뮤리엘은 이름을 마리엘로 바꾸고 새로운 삶에 박차를 가한다. 하지만 여전히 결혼이 자신의 행복이 될 것이라 믿는 뮤리엘의 앞에 ‘결혼’이라는 과제만이 남게 된다. 거침없이 환상 속으로 달려가는 뮤리엘, 과연 결혼이 뮤리엘을 행복으로 인도할까?
나에게도 환상이 내 눈 앞으로 다가온 순간이 있었다. 평소 일하던 곳이 마음에 너무나도 들지 않아 더욱 좋은 곳으로 가고 싶었다. 신식 건물에서 일하면 모든 행복이 나에게 다가오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매일 밤 현실이 되길 바라며 꿈을 꾸고 기도하곤 했다. 그리곤 생각했다. “나에게 만약 그 순간이 온다면 내 머릿속에는 ‘캐논 변주곡’이 울릴꺼야.” 그리곤 정말 환상이 현실로 다가온 순간 나는 즐거움과 행복 동시에 쓸쓸함, 섭섭함, 아쉬움과 같은 감정을 느꼈다. 결론적으로 환상이 현실이 되어 나쁜 것은 없었지만, 그 순간 마음에서 일어난 감정들은 나에게 놀라움으로 기억되고 있다.
나는 막상 환상을 마주친 순간 즐거움과 동시에 불편함을 겪었다. 또 그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말 그대로 환상이기에 내가 실망을 할 수 있는 부분은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일지 환상은 환상으로 남겨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환상은 즐거운 상상으로 현실 속에서 잠시의 달콤한 낮잠을 자듯, 도피를 위해 인간이 가진 지능적인 기술이 아닐까? 그렇기에 환상은 더욱 원대하고 가치 있게 꾸어야 한다. 절대 현실과 만나는 일이 없도록, 지금 내 마음과 머리가 미래의 환상 속에 살았지만, 결국 나는 현실에 있다. 현실에 충실하게 즐겁게 살아가려 노력한다면, 조금씩은 다른 시각으로 삶의 길을 찾아간다면 환상에 기대는 일이 조금은 줄어들 것 같다.
삶에도 리셋 버튼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렇다면 일정 시기 속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꼭 그 선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잘 못 살아온 순간들을 되돌릴 수 있지 않을까? 문득 ‘행복한 기억은 절망을 이긴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가슴 깊이 이해가 간다. 지금까지 살아온 나의 삶을 다시 한번 살아보는 것은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현재 내가 만나고 있는 이 행복점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 삶에는 결국 괴로움은 없고 행복만이 존재할까?’라는 의문이 들고는 한다. 매 순간마다 소중한 순간들을 만들려고 노력을 하다 보니, 되돌리기에는 너무나도 아쉬운 순간들이 되어버렸다. 물론 과거로 돌아가면 더욱 좋은 순간들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은 있겠지만, 확신은 들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실을 더욱 소중하게, 순간들을 가치 있게 보내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영화 속 뮤리엘은 환상을 쫓는 중 소중한 것들을 잃게 된다.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현실 속에서 주체적으로 자신을 찾으며 다시 한번 힘을 내기 위해 ‘포포이즈 스핏’을 떠나며 오래된 것들과의 작별을 고한다. 오랜 순간들과의 작별, 그리고 시작, 환상,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만한 주제들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현재 우리는 다가오는 미래를 잘 운영하고, 현재를 소중하게 만들며, 과거의 보물로 남겨놔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