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 공(空)헌디. 뭣이 공허냐고
365일이 봄 같은 대학교 1학년 새내기 시절, 많은 경험을 쌓고 도전해봐야겠다는 다짐을 가지고 있었다. ‘운명’과 ‘인연’에 꽤나 심취해있을 당시여서 그런지. 5월의 화창한 봄 학교 게시판에 붙은 요리 경연대회를 보자 어디서 오는지 모를 도전감이 끓어올랐다. 지금은 세부적인 것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사찰 음식과 관련된 ‘채식 음식 경연대회’였던 것 같다. 그 당시도 ‘불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사찰음식 좀 먹어본 사람이란 자부심과 상금에 대한 욕심을 가지고 대회에 자신감 넘치는 도전장을 던졌다.
대회를 한 달 정도의 기간을 가지고 열심히 준비했다. 우선 대회에 적당한 음식으로 감자 옹심이를 준비했다. 한 달 동안 감자를 씻고 벗기고, 강판에 가는 일들을 반복했다. 감자에서 전분이 나온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을 정도로 요리에는 무지했다. 대회에는 ‘요리’만 만들어 내면 끝이 아니었다. 음식을 담을 그릇, 심사위원이 맛볼 수 있는 종지, 수저, 그릇 받침, 테이블보, 심지어 내가 입어야 할 의상까지, 요리의 본질만 생각한 탓에 다른 사람들의 조언과 도움이 없었다면 정말 꼴등다운 꼴등을 할 뻔했다. 그렇게 강판에 감자를 가는 힘이 어느 정도 팔에 붙을 무렵이 되자 대회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경연에 참가한 10팀 가까이였다. 그 중 아무런 상을 받지 못한 팀은 3팀 정도였다. 물론 내가 그 3팀에 속해있었다. 경연은 전문가들의 무대였다. 다들 대학생이지만 TV에서나 보던 셰프 의상에 도마, 칼까지 그 앞에서 요리를 하려니 왠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도 나름 투닥투닥 집중하며 음식을 만들었다. 너무 열심히 만든 탓일까 예상 시간보다 음식이 일찍 만들어졌다. 문제는 심사위원들은 긴 심사시간 속에 차게 식어버린 나의 옹심이를 보고 무의미한 질문들만 던졌다는 것이다. 내 요리를 보러 와 준 친구들은 옹심이 코딱지를 만들었다고 놀렸다.
유난히 눈에 띄는 참가자와 음식이 있었다. 그 사람이 만든 것은 정형화된 틀과 대회용 기준이 있는 것처럼 틀에 찍어낸 듯한 음식이 아니었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경기도에서 전주까지 왔다고 했다. 멋들어진 도자기 플레이팅 접시나 테이블보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정말 맛만 볼 수 있게 작은 소주 종이컵에 두부 스파게티를 담아냈다. 셰프 복장을 입은 것도 아니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차림, 하지만 그 사람의 태도는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내가 느끼기엔 그 당시 어떤 참가자들보다 자신감이 넘쳤다. 비록 두부 스파게티도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에겐 그 어떤 상보다 값어치 있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대회가 끝나 잠들기까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자신감 있고, 당당하고 멋질까?만 생각했다.
내가 처음 불교 용어 ‘공’에 대해 들었을 때, 반야심경의 한글 번역문을 봤을 때는 우울감이 나를 휘감았다. 내가 살아온 순간순간 모든 것이 부정되는 기분이었다. 사실 모든 것은 공하다. 존재하는 것이지 실체가 없다. 참 아름다운 말이고 진리다.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추억을 가지고,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잔인한 말이 아닐까?. 난 아직도 내 삶 속에서 실체였으면 하는 존재가 있다. 나의 노력이 순간들이 ‘공’하지 않았으면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나의 ‘옹심이’다. 비록 상을 받지 못했지만, 차게 식어버렸지만, 나에겐 한 달을 감자만 만지며 살아낸 증표다. 보잘 것 없는 실체가 되어버렸을 지라도 나의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 실체와 추억이 있지 않을까? 그렇기에 살아가는 것에 재미가 더욱 붙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