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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Mar 25. 2022

바뀌지 않는 것

무언가를 못가져서 안달나 본 적이 있던가?

온전히 나만 좋아하고 관심갖기를 바라며, 사람에게 욕심을 낸 적은 있다. 상대의 관심과 욕심에 양쪽이 수락한 상태, 교제하는 상태를 두고 우스운 표현으로 "품절"이란 표현을 쓴다. 하지만 역시나 쇼핑에 더 잘 어울리는 단어가 "품절"이다.

물건을 반드시 사야해서 물건이 다 팔리기 전부터 기다려 구매한 경험은 없다. 다만 필요한 물건의 수량이 많아 대량 주문으로 물건을 품절 시킨 적이 있고, 사업장에서 판매하는 식품 생산량에 한계가 있어 품절을 시킨 적도 있다. 품절에 대한 경험을 생각해보니, 품절을 시킬 수 있는 위치였다. '임자가 있다'는 측면에서의 '품절'에 성공하지 "않았지만", 생산자의 입장에서 품절 버튼을 쥐고 있었다. 홈그라운드의 상품 품절은 생산자의 제작 호흡과 일의 균형, 상품의 품질을 맞추기 위한 약속이다.


물건에 안달나 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생각해보자면, 수중에 돈이 별로 없었기에 품절이 빨리 되는 것에 더 관심이 없었고, 갖고 싶은 신발이나 옷이 품절된 상황이라면, 다시 수많은 물건의 바다에서 '나만의 물건'을 찾아 웹서핑을 타고 또 타서 찾아내었다. 이렇게 찾은 것은 주로 품절되지 않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숨은 물건들이다. 숨은 물건들이 하나씩 모여 내 모습의 일부가 되었고, 후에 "취향"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려 '아라의 풍경'을 이룬 것도 같다.


그렇게 숨 쉬듯 밥 먹듯 온라인 쇼핑을 하다 보면, 수많은 선택지 안에서 많은 시간을 들여 고른 하나의 물건도 어떤 일관된 취향 데이터로 분석되어 내가 검색한 무엇과 연관한 상품들이 또 쏟아진다. 그렇다면! 내 취향이 고유의 취향이 맞는 것인지? 길에 다니는 비슷한 연령대의 모습이 다른 듯 비슷한 것처럼 유행의 풍경에 일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정검해보게 된다. 계획이나 예측된 유행 안에 있는 것을 가급적 벗어나고자하는 심리가 품절 상태에서 더더욱 멀어지게 했지만, 멀리서 보면 다 거기서 거기 안에 있었다. 생필품 이외의 소비욕이 사그라진 지금은 품절은 그저 생업으로 하는 제작일을 진행할 때나 꺼내는 단어다. 생산력을 늘려 늘 구매할 수 있도록 상품을 준비했더니, 선물을 많이 하는 명절 특수 시기 이외에는 상품 구매율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매일 소개와 이벤트, 관심 모으기에 열중해야하는 피로감도 느끼던 차에 제작 인원이 줄어들게 되어 한 달에 두번, 사전 예약으로 한정한 수량의 제품을 구매할 수 있게 판매 방식을 바꿨다. 왠걸, 특수기 때의 주문량이 3달이 넘게 이어졌다. 발송 횟수가 줄고 작업장 오픈일도 줄였더니, 주문과 문의, 상담을 요청하는 횟수도 줄어들어 여느 때보다 편안하게 무리하지 않고 많은 주문을 큰 고비 없이 해결하며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상태에 제약을 주자, 그것에 간절해지는 심리란. 결핍이 있어야 충분했을 때 겪은 다양한 긍정적인 경험들을 기억하게 되고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요상한 마음에서 비롯된 상황은 아닐까.


그렇다면, 품절이란 단어를 어떤 결핍과 부재에도 붙일 수 있을까.

매주 일요일,  목욕 봉사를 하고 파주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대게 오후 4-6 사이다. 밝은 하늘에서 출발해 기우는 해가 만드는 노을을 보며 차를 몰고 오는  시간은 음악을 들으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기에  적절하다. 새로 시작하는 일의 순서를 잡기도 하고, 돌아가서 무엇을 먹을지, 집에서 기다리는 베라와 오래 만나지 못한 지인의 소식을 궁금해하기도 한다. 올드팝을 틀어주는 라디오 프로 시간이기도 해서 음악에 맞춰 신나게 드라이브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 봉사 활동 신청 계기가  임보했던 작고 하얀 , 새알이 생각이  난다. '오늘 목욕시킨 개가 새알이와 꼬리가  닮았지, 눈이 똑같았지' 하며. 실수로 놓친 새알이가 차사고로 죽고 기억에 남은 상흔, 죄책감이 가슴을 쿡쿡 쑤시다 울컥 쏟아지기도 하지만. 결핍과 부재가 부정적인 경험만이 아님을 작은 개가 알려준 것만 같다. 험한 환경에서 고통을 경험해  개들을 씻기며 느끼는 온갖 감정과 근육통이 어떨  되려 마음을 정화하는  같다.  다른 결핍이 가져다  혜택? 생각하자면, 경제적으로 넉넉치 않다면 않은 집에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하고싶은 것에 대한 갈망이 컸었다. 커진 욕구에 부응해 원하는대로, 내가 그리는대로 살기위해 중요한 선택들에 신중했고 단호했다. 지지고 는 과정이었지만 결국은 원하는 길로 운전해가고 있음을 알았다. 다양한 종류의 결핍에 부모를 탓하던 유아적인 시기 역시 지나왔음을 지는 해를 보며 돌아오는 길에 생각했다.


'앞으로 결핍을  곁에 두는 친구 정도로 여겨야지. 부족한 것을 받아들이고 무리해서  채우지 않도록 노력해보자.' 같은 간질간질하고 뭉클한 감정이 올라왔다. 내게 한없이 사납고 위축되어 있던 작은 , 결국 험한 꼴로 보내버린 작은 개에게 입은 마음의 상처는 그가 밉고 슬픈 단계를 지나 일련의 고생을 겪게  작은 생명이 내게 가르쳐주는 바를 거듭 생각하며, 미안하고 보고싶어하게 되었다.


살다보니 쉽게 가질 수 없는 품절 상품에 관심없는 사람이 품절을 만드는 사람이 된 것도 아이러니했지만, 결핍을 받아들이고, 조금 모자란 듯 부족한 삶을 살아가고자 마음 먹는 것도 이상했다. 일련의 과정은 어쩌면 생의 자연스러운 수순이자 노화의 단계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 인생이 무릇 평탄해지고, 심심한 듯 평온해지는 것일지도. 어릴 때는 나이를 먹을수록 부를 축적할 수 있어 어른이 되면 여유로운 마음이 생기는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았다. 평정심은 많은 것은 내려놓는 데서 오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늙은이가 된 것 같아 소름이 좀 돋는다. 무엇에도 욕심을 내지 않으면 호기심과 열정에서 멀어지는 것이기도 하니까. 젊은이들의 야망과 호기심, 에너지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가 노인인 것이다.


그렇다고 노인의 시선으로 남은 삶을 견지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가져도 갖지 않아도 바뀌지 않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오래 전부터 내려온 지혜로운 삶의 비법들, 요리법과 살림법, 꾸준한 생활 습관과 같은  , 도움이 필요한 곳에 눈길을 거두지 않으려는 의지와 실천력, 작은 화면에 갇혀 함부로 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앞의 상대를 향하는 사랑의 눈길처럼 아무리 써도 품절되지 않는 것들이 있음을 오늘도 개를 씻기며 생각한다. 빛나는 , 좋은 냄새, 한결 가뿐한 얼굴, 깨끗한 뒷모습까지 힘든 목욕과 드라이 후에  정도 고생은 고생도 아니라는 의연한 자태의 개들이 처음 구출된 곳을 생각하면 그들은  빛이 난다. 도살장 철장 안에 구겨져 죽임을 당하는 동족을 지켜보던 , 오물이 가득한 견사에서 썩은 음식으로 연명하던 , 사람 가족의 손으로 강가에 버려진 개들이다. 물건의 품절, 관계의 품절, 마음의 부상같은 부재와 상처가 생존이라는 문제 앞에서개미만해짐을…  앞의 존재를 보자면, 무엇이 아무렴 어떠냐의 자세로 매일을 충실히 채우자는 마음이 선다. 즐겁게 건강히 함께 사는 일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들은 요즘 나의 선생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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