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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Mar 09. 2022

새우깡에게 가는 길

언니들의 톡스와 디톡스

보라보라가 말했다.

 

"톡스가 있어야, 디톡스도 있는 법!"

 

우리 앞에는 기름진 음식과 술이 있었을 테다. 그의 사고의 명쾌함과 신박함에 물개 박수를 치며 웃었다. 마른 몸을 향한 열망으로, 시늉만 하던 마른 몸 판타지 다이어트기를 지나, 각종 사회관계 스트레스 해소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즉효라는 것을 깨닫고 시작한 운동에 대번에 빠져 허벅지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진 몸으로 퇴근 후 구기운동만 하는 라켓 미치광이 시기를 지나, 잠영의 고요함이 좋아 시작한 바다 수영과 서핑에서 좋은 한 시절을 보내다, 밀려드는 일에 축적해둔 배와 허벅지 근육을 다 쓰고, 불면과 불안의 밤으로 허물어지는 몸, 닳아버린 체력을 가지고 찾은 곳은 역시나 체육관이었다. 가진 재산이라곤 몸뚱이밖에 없는데, 그것마저 삐그덕 거리면 삶의 모든 것이 삐그덕 댄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삼십 대 후반에 들어서서였다. 이런 레퍼토리는 주위의 동지가 많은 너무나 흔하고 비슷한 패턴이다.

 

깨달음을 얻은 언니들의 운동은 다르다. 뼈 몸매의 아름다움에서 시선이 이동한다. 잘 잡힌 근육과 꼿꼿한 자세, 바른 걸음걸이, 좋은 식단을 유지해야 오는 반질반질함을 향하고 있다. 우아한 모습이 연상되지만, 실상은 톡스와 디톡스 전쟁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주 진부한 표현으로 철근을 씹어먹어도 소화를 시키는 20대의 소화기가 아닌 설탕을 조금만 더 먹어도, 잠을 조금 못 자도 거칠음이 금세 드러나는 유리 몸뚱이를 반질반질하게 유지하는 일은 고요한 전쟁이나 다름없다. 특유의 노련함으로 다양한 관계 안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법을 언니들은 안다지만, 나이를 먹어도 마음속의 폭풍이 잠잠할 일이 없는 것은 매한가지다. 그저 궂은 티를 안내는 개인기만 레벨 업 한 기분이다. 이쯤 되면, 인생은 그저 수양의 연속이 아닌가 하는 깨달음이 온다. 그럼에도 인생의 각종 상황에 능숙히 대처하며 자신감과 자존감이 올라가는 나이 먹는 일이 무섭지도 슬프지도 않다. (촌철살인 어머니는 '네가 갱년기를 아직 맞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몸을 만드는 운동, 체육관 트레이닝의 종착점은 균형을 위한 근력운동이다. 있는 근육을 교정하는 것은 근력운동이지만, 양질의 근육을 키우는 것은 식이에 있다는 것을 운동을 지속하면서 알게 되었다. 좋은 식단에 대한 생각은 사업장에서 먹을 것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부터 본격 시작되었다. 이렇게 기름지고 무겁고 탐미적인 식사를 매일 한다면, 건강에 분명히 해롭다. 고로 미식은 건강에 해롭다는 2단 논법 정도가 나온다. 그렇다고, 매일 영양이 골고루 담긴 완전한 식사를 만드는 것은 훨씬 고되다. 요리사는 배달음식에 익숙해지고 남이 차려주는 담백한 나물 식사를 갈망한다. 다행히 체육관에서 좋은 선생님들을 만났다. 영양학에 쉽게 접근하도록 가이드를 해주는 철봉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톡스와 디톡스에 대한 지론이 완성되었다.

 

좋은 식단을 동그란 바퀴로 그려 50 채소(무기질 포함), 25 단백질과 지방, 25 탄수화물로 나누는 그림을 보았을 것이다. 여기에 요리사로서 덥석 끼어들어, "그런데, 운동 식단에서 제시하는 식사 사진이 너무 맛이 없어 보여요. 무슨 재미로 먹어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아라 씨가 필요하죠. 단백질과 탄수화물은 우리가 쉽게  끼니에서 충족할  있지만, 여기, 50 해당하는 채소를 맛있게  먹는 ,  부분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맛있는 채식을 만드는 일은 우선 제쳐두고, 영양학에 접근할수록 원시인처럼 먹는 것이 가장 몸에 이상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요리는 일로서 하되, 내가 먹는 것은 재료만 먹는, 완결된 식사가 아닌  끼니  것의 식습관을 한동안 유지하자 확실히 눈에 보일 정도로 체지방이 줄어들었다.

 

고비는 자주 찾아온다. PMS를 겪으면 좋은 식사, 식이가 다 무어람? 계속해서 허기진 입(위장이 아닌)에 각종 트랜스지방을 넣어 와작와작 씹는 주기를 탄다. 적어도 보름 단위로 바뀌며 출렁대는 호르몬의 사주에 영향받지 않는 언니가 있다면 신봉하고 싶을 정도다. 사바세계의 중생인 언니들이 호르몬의 사주에서 정신 승리라도 하고 싶을 때 쓰는 전법이 또한 톡스와 디톡스다.

 

“선생님! 저는 매일 이렇게 먹을 수 없어요! 절대. 술도 마셔야 하고, 과자도 먹어야 하고, 튀긴 것도 먹어야 하고요! 세상에 입에 단 게 얼마나 많은데요! 좀 더 현실적인 방안 없을까요? 저는 그때가 되면 새우깡을 꼭 먹어야 해요."   

    

인자한 표정으로 철봉 선생님이 말했다.

 

"그럼요. 그런데 새우깡으로 가기까지 넘을 둔턱을 몇 개 만드세요."

 

"네???"

 

"자, 새우깡 한 봉지는 당과 트랜스지방 덩어리예요. 독소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그것을 정화하는 것을 넣어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튀긴 음식을 많이 먹는 중국에서 양파를 곁들이고, 차를 많이 마시는 것과 같아요. 새우깡을 먹고 싶으면, 샐러리 한대와 삶은 달걀 2알을 먼저 먹으세요. 그렇게 먹고 나면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먹지 못할 거예요."

 

설마였다. 선생님께 배운 대로 죄책감을 덜기 위해 아주 커다란 샐러리와 반숙란 한판을 들였다. 그날이 왔다. 가장 굵은 샐러리 한대를 꺾어 입에 물었다. 와작와작 씹히며 나오는 물이 짜고 달다! 그리고 질기다! 그래도 샐러리대에서 나오는 향긋한 풍미와 짜고 단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반은 성공이다. 채소 고유의 풍미를 알아채는 혀를 가졌기 때문이다. 짜증스럽게 와구와구 샐러리 대를 씹다보면 자꾸만 뭔가를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조금 가라앉는다. 다음은 삶은 달걀이다. 달걀이든 두부든 볶은 콩이든 좋은 단백질을 잘 채워 허기를 없애고, 공복감을 느끼는 사이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허기가 지면 상비한 삶은 달걀이나 두유를 입에 넣었다. 촉촉한 반숙란은 삶은 달걀을 사랑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했다. 다 먹었다. 이제 내 사랑 새우깡을 넣어볼까. 그래도 새우깡은 맛있다. ‘뱃속의 샐러리가 다 정화해줄 거야’라는 기분으로 한 봉지를 순식간에 비운다. 끙. 계획했던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건강한 뚠뚠이가 일 체력 하난 좋다는 심정으로 뼈몸매 판타지와 헤어진 중년 언니들은 톡스와 디톡스의 순환 고리에서 돌고 돈다.

 

톡스의 고리로 폭주할 때도 있지만, 간식을 고를 때면 이제는 쾌락에만 집중하지 않고, 치킨을 대신할 무엇, 적당히 먹기 힘든 견과류를 대체할 무엇, 아이스크림 한통이 생각날 땐, 대신 무엇 같은 법칙이 생겼다. 후라이드 치킨이 생각날 땐, 30년의 수명을 6개월도 못 채우고 몰살당하는 닭을 생각해, 대체 육류 프라이드를, 설사할 때까지 먹는 견과류 광인에게 볶음 콩을, 유지방 가득 아이스크림보다 저지방 아이스크림에 신선한 올리브유를 둘러서, 새우깡 5번 생각에 4번은 북어포를 나에게 먹인다.

 

간식 습관을 조금 더 몸에 맞게, 혀에는 부족하게 가꾸다 보면, 김혼비 작가가 말한 축구 경기에서 전후반을 다 뛰고도 체력이 남아 철봉에 거꾸로 매달려 몸을 접는 언니들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좋아진다'는 신비한 언니들의 이치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말로 진정한 다이어터, 훌륭한 식단과 운동을 병행하는 자의 삶이다. 20, 30대 때의 몸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 빨리 반응하는 효율 좋은 몸이라 쉽게 언니들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조건은 다 갖추고 있다. 그러나 생전 처음 맛보는 사회적 고통들을 다루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사이, 지구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는 통에 언니들의 꾸준한 근육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그 언니들이 이제는 내가 되었다. 곁에서 보기에 단단하고 유쾌하며 간결한 언니들의 속내란 이런 것일까. 그때나 지금이나 복잡한 속내는 여전하기 때문이다. 그럴 때, 잠시 즐거운 톡스를 하면 된다. 우리에겐 살면서 쌓은 무궁무진한 톡스와 디톡스 비법이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맥주 한잔 해야겠다.  




안아라

남을 위한 먹을 것을 만들다 무엇을 먹는지, 먹을 것은 어디에서 오는지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음식에 담긴 생사를 보고, 건강한 삶에 필요한 "적절한 음식과 자세"에 대해 궁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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