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느긋하게 흘러가는 가 싶더니, 지난주는 하염없이 일했다. 하염없이 일한다는 것은 눈 뜨면 작업장에 가고, 눈을 감으려고 집에 들어가는 일상이다. 또 가만히 앉아있지 못하는 생업의 성격으로 크고 작은 근육통과 통증에서 비롯한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까이서 일하는 동료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는 동안 글쓰기 과제가 저만치 밀려나 있었고, 마감을 3시간가량 앞둔 상황에서 마지막 종료 선을 보는 심정으로 타자를 정신없이 친다. 마감 후에 마실 맥주를 세워두었고 쥐포를 와그작와그작 씹으며 에너지를 끌어모은다.
국물은 국물을 항상 흥건히 남기는 식습관을 가져 어머니께 꾸지람을 듣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국이 없으면 밥상의 완성이라고 볼 수 없는 식사를 누렸다. 큼직한 국그릇에 담긴 국과 고봉밥이 앞에 놓였을 때, 국 안의 건더기를 다 건져먹고 남은 많은 국물을 들이마시게끔 채근하는 어머니의 말씀이 있었다.
"국물에 좋은 것이 다 있는데, 남기면 어떡하니? 다 마셔라."
"왜요?"
"왜요는 일본 담요고, 어서 마셔라."
"저는 못 마셔요, 앞으론 건더기만 주세요."
그다음부터는 건더기가 가득한 국그릇이 왔다.
지금이야, 국물에 담긴 소금의 양을 걱정하며, 국물을 다 마시지 않는 것이 좋은 식습관으로 자리하게 되었지만, 어릴 때는 그저 배를 가득 부르게 하는 국물이 싫어 마시지 않았다. 그것이 아까운 어른인 아버지가 마시거나, 어머니가 따로 모아 다시 끓이셨다.
요리를 하면서 국물의 중요함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요리의 완성에서 음식의 수분감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또, 어머니가 말씀하신 '좋은 것이 다 있다'는 끓는 물 안에서 재료의 맛있는 맛과 영양이 바깥으로 나와 국물을 만들기 때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가자면, 리소토와 파스타를 만들면서부터다. 리소토와 파스타를 만드는 과정에서 국물이 성패를 크게 좌우한다. 먼저 밑재료를 볶는 과정이 있다. 잘 볶인 밑재료의 맛을 쌀과 면에 배게 하려면 들어가는 국물이 재료 사이의 매개체가 된다. 모든 재료의 조화를 담은 수분 즉 국물이 재료에 다시 흡수되는 과정을 생략하고, 재료를 가미하다 보면 너무 뻑뻑하거나 기름진 파스타와 리소토를 맛볼 것이다. 이것은 기름 국수와 볶음밥이다. 실패한 음식이 나를 위한 한 그릇이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내가 열심히 책임지듯 씹어 넘기면 될 일이지만, 이것이 남의 입으로 들어간다면, 한 그릇은 음식물쓰레기봉투로 가게 되니 전 지구적 낭비일 뿐이다.
재료를 잘 볶았다면, 육수나 채수, 면수를 볶은 재료에 넣어 걸쭉한 에멀션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 맛있는 파스타나 리소토 심지어 스튜를 만드는 법을 사람들에게 알려줄 때에도 이 단계에 별표를 쳐가며 반드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단계"라고 거듭 강조한다. 모든 재료의 맛이 조화로운 진국에 쌀이나 익힌 면을 넣어 국물을 빨아들이며 익게끔 해야 한다. 여기서 또 다른 포인트가 있다. 바로 타이밍.
요리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요리는 한 단계씩 순차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닌, 동시다발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춤추듯이 처리해내느냐가 프로와 아마를 가르는 기준일지도 모른다. 앞서 다듬은 재료의 난장판을 정리하며, 불 위에 올린 재료의 상태를 체크하고, 불 조절을 하거나 뒤적이며 싱크에 쌓인 설거지를 잠깐 하다, 자잘한 손님의 요청에 반응하며 만들어야 하는 사업장의 요리는 적절한 타이밍을 잘 잡아내 순발력 있게 해치우는 철인 4종? 5종? 6종? 경기다. 경기를 여러 차례 뛰어 본 선수들의 여유를 보는 재미도,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가 경기가 종료됐을 때 느끼는 후련함이나 미련도 여기에 있다. 재료를 빨아들이는 쌀과 면의 컨디션은 불 위의 재료 주위로 남아있는 국물의 양을 보고 판단하고, 불에서 내릴 타이밍을 찾는다. 온 신경을 곤두세워 ADHD를 앓는 사람처럼 작은 주방을 날아다닌다. 데워놓은 그릇에 담으면서부터 식고 불기 시작하는 것이 리소토와 파스타라 어느 정도 국물이 있는 상태에서 내려야 적절한 온도와 질감, 습도, 향을 간직한 상태로 손님 앞에 놓여 만족스러운 식사를 선사할 수 있다.
국물 타이밍의 중요함과 내 앞에 놓이는 음식의 정성을 알게 된 뒤로는 국물을 남기지 않는다. 아주 적절한 국물의 양과 온도를 가진 좋은 음식을 사람에 비유하자면, 너무 팍팍하거나 기름지지 않고 적당히 헐거운 구석을 가진, 여유가 느껴지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좋은 어른의 모습이 떠오른다. 몸이 크고, 늙어가지만 그가 달고 짜고 맵고 고소한, 아주 선명한 맛만을 지닌다면, 어딘지 모르게 '그는 솔직하고 순진한 아이 같다'라고 생각한다. 눈앞에 놓인 상대의 상태를 흡수하면서 다소 헐겁지만 편안한 대화를 느긋하게 나눌 줄 아는 사람. 그는 적당한 국물, 즉 촉촉함이자 부드러움을 가지고 상대의 맛을 존중하며 여러 사람을 연결한다. 단순하지만 부족함 없이 빛나는 사람. 온순한 맛으로 술술 잘 넘어가는 리소토와 파스타 같은 어른이고 싶다.
작가 소개
안아라:
남을 위한 먹을 것을 만들다 무엇을 먹는지, 먹을 것은 어디에서 오는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잔칫상에서부터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 생사를 보고, 건강한 삶에 필요한 "적절한 음식과 자세"에 대해 궁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