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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아라 Apr 27. 2022

좋은 하루

오늘은 어쩐지 일어나서 보는 얼굴이 다른 날보다 한결 낫다.

알아챈 순간부터 기분이 좋다.

어제는 함께 일하는 언니가 아픈 몸과 삶을 정비하고자 일을 잠시 멈추고 싶다고 했다. 어떤 종류의 날이 선 말이 오가든 한편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애정 하는 사이의 언니다. 언니의 개인사에 몇 가지 슬픈 일들이 있었고, 심리적으로 아주 불안한 상태에서 모두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가 있었다. 가슴이 철렁하며 이렇게 마치면 안 된다고 잡았다. 2달 여의 시간이 흘렀고, 그때보다 밝은 얼굴로 차분히 이야기하는 언니라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전염병, 전쟁, 물가 상승, 기후 변화는 실은 늘 세상에 일어나고 있던 일이었다. 나와 가깝지 않다는 착각이었을 뿐. 이 모두가 한꺼번에 와닿은 몇 년 간은 더욱 예측할 수 없는 앞으로를 걱정하고, 특히나 가까운 몇 달은 내게 없는 것을 자꾸만 의식하는 시간이었다. 집, 돈, 파트너, 생산적인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는 성실한 직원, 명성 등등등. 써놓고 보니, 별 볼 일 없는 한편, 도시인의 삶에 이것만큼 큰 것이 있나 싶다. 나이를 먹어가니 불안감의 실체를 조금 더 먼 곳에서 파악하고, 자리를 잘 내어주지 않으려고 애쓴다. 오래전 지인이 나지막이 말했던 '나이가 주는 무거움이 있다'가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고 즐겁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취지의 이야기였다. 무엇보다 나고 드는 사람의 마음이 아닌 인지와 지시, 의지에 반응하는 내 몸에 집중해 별 볼 일 없는 불안감에 자리를 주지 않고자 없는 살림에도 운동만은 놓지 않고, 부지런히 이른 아침 눈을 뜨고, 움직이고 개와 산책하며 웃는다. 그래도 어수선한 꿈을 꾼 아침에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질문을 거울 속 부은 얼굴을 보며 자주 던진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얼굴이 괜찮다. '어제 무얼 하고 잤길래, 오늘 아침 얼굴이 괜찮지?' 하며 어제를 복기한다. 언니의 업무 중단과 재정비 이야기를 비교적 마음 편히 듣고, 맥주를 한 캔 하고 베라와 밤 한강으로 나갔다. 베라는 친구와 뛰놀 때와는 다른 신난 얼굴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걷다 뛰다 산에 올랐다 내려갔다. 집으로 가 둘 다 간단히 요기하고 누웠다. 어떤 하루를 살았든 노곤한 몸으로 각자의 자리에 누우면, 금세 눈꺼풀이 무겁다. 마저 보려고 한 드라마나 침대 옆에 쌓인 책의 글 한 줄도 다 내일 아침으로 밀려난다.


대충 얼굴을 닦고, 로션을 바르고 바지를 입고 마스크를 쓰면, 베라가 벌떡 일어난다. 산책 갈 시간인 것이다. 보통보다 늦은 아침에 나선 터라 빌라 밖을 나서자마자 눈이 부시다. 종종걸음의 개가 늘 그렇듯 산 방향으로 향한다. 산책이 지루하지 않게 집을 나서며, '오늘은 가장 일찍 여는 카페에 가서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해야겠어'라고 다짐하면, 자연스레 카페에 가는 길로 산책 루트가 그려진다. '오늘도 늦으신다면 머 어쩔 수 없지'라는 마음도 함께 먹어야, 혹여 불이 꺼진 상점을 보고도 좋은 아침, 기분이 흔들리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카페는 제시간에 열렸고, 아침 시간이 계획대로 채워지는 차에 주인이 말한다.

"아직 달걀을 삶지 못해서 샌드위치가 안돼요~"

가게를 운영해본 자의 여유는 이렇다. 계획한 것이 없으면 다음을 기약하고 아쉬운 대로, 토마토 주스와 식사용 스콘 몇 개를 고르면 된다.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아주 밝은 볕이 쏟아진다. 베라도 나도 익숙한 길을 걸으며 돌아온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어떤 구간은 신나고 어떤 구간은 지루하고, 어떤 구간은 집으로 돌아가기 싫은 기분이 드는 건지 개의 발걸음은 총총거리다 재빠르다 아주 지지부진하다. 작은 존재를 보며, 오늘 하루는 어떻게 가볍고 즐겁게 보낼까, 무슨 숙제를 해야 하나 생각한다.


그중 아주 중요한 과제가 동료들의 끼니를 챙기는 일이다. 다들 '아무거나~'란 말을 입에 달고, 아무거나 잘 먹기에 내 의사가 중요하다. 오늘은 김밥이다. 그냥 김밥 말고, 아주 잘 만든 나물 김밥이다. 집에 돌아와 베라 밥을 챙기고, 조금 먼 훌륭한 김밥집에 전화해 몇 시에 갈 건데 나물 김밥을 몇 줄 준비해주십사 부탁하고 향했다.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기다리기보다, 미리 말씀드리는 편이 좋기 때문이다. 통통하고 따끈한 김밥 그리고 냉장고에 먹음직스럽게 있던 포장돼있던 동그랑땡을 꺼내 들고 출근하러 작업장으로 향했다. 어릴 적 자주 감정을 이입해 듣고 따라 부르던 흘러간 노래가 라디오에서 나온다. 자연스레 흥얼거리며, 도착해선 동료들에게 무얼 사 왔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하고 커피를 마시고 자리에 앉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점심의 빛은 여전히 눈이 부실 정도다.


계절의 여왕, 5월이 이미   같다.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며 하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질문에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답해주는  아주 좋은 날씨다. 그래서 그런지 언니도 나도 걱정을 밀어내며 디저트를 만들고, 5월을 계획한다. 누가 곁에 있든 없든 흔들리지 않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해보는 요즘이다. 어쩌면 오늘 아침, 거울에 비친, 흔들리지 않았던  얼굴이 반갑고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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