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생이의 추억
#먹는이야기 #매생이
요즘 집에서 건조 매생이 블록을 써 매생이 국을 자주 끓여먹는다.
국 중에는 콩나물국을 원체 좋아하는데, 다진 마늘과 콩나물, 소금만 넣고 끓여낸 맑은 콩나물국 본연의 맛부터 국 안에 계란을 넣어 살살 저어 수란으로 만들고, 국과 함께 건져내 참기름을 잔뜩 뿌려 밥을 말아먹는 부드럽고 두터운 맛까지 다 좋아한다. 이런 국 조리의 마지막 단계에 매생이 블록을 넣고 살짝 끓인다. 시중에 나오는 건조 매생이 블록 한 블록으로는 전라남도 사람이 기본 덕목으로 탑재한 "매생이국이 가져야 할 올바른 밀도"를 절대 만족시킬 수 없다. 국 한 그릇에 적어도 3블록은 넣어야 한다.
(먹는 것만이 내 출생지를 분명히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릴 때, 검은 색에 가까운 짙은 녹색의, 어쩌면 숱이 많은 긴 머리가 잔뜩 들어간 것처럼 보이는, 밀도 높은 매생이국을 호로록 꿀떡꿀떡 드시는 부모님을 보며 한번 기겁하고, 국을 마시고 나서(그렇다 이 국은 숟가락으로 뜨면 미끄러져버리기에 사발 채 마셔야 하는데, 심지어 매생이는 열기를 머금는 성질이라 뜨겁기까지하다) 입술과 치아에 남은 매생이의 자태에 질겁해 입도 안 대던 양반이 지금은 굴국에든, 콩나물국에든 매생이가 붙은 모든 종류의 매생이 음식에서 어릴 적에 경험한 "헤비 매생이" 밀도를 찾는다는 것이 몹시 아이러니하지만, 여하튼 그 냄새와 맛 감별에 있어서 당시 즐기지 않았어도 절로 남도인의 식탐이자 식별력이 체득된 것일지도 모른다.
매생이 블록은 얼마 전, 피크닉, <국내여행> 전시 초대 선물에 든 <매생이 떡국 키트>로 처음 발견했다. 온라인에서 건조 블록만 찾아 주문해 요리조리 맛보고 즐기는데, 생 매생이의 고소하고 향긋한 풍미는 줄었을지언정 부드러운 질감은 다행히 살아있다.
지난 새해에 질이 좋은 생 매생이와 굴을 사다 작업장에서 매생이 굴 떡국을 끓여 스텝들과 먹은 적이 있다. 함께 있던 포항 출신의 스텝은 매생이를 처음 먹는 자리였다. 남이 차린 음식을 아낌없이 맛있게 먹어야 한다는 어른의 마음가짐으로 입을 댔고 묵묵히 다 먹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그때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분명 내가 어릴 때 경험한 헤비 매생이의 경험과 비슷하리라는 추측을 해봤는데, 전라도 출신인 에이코 상과 나는 곤혹스러운 티를 숨기며 열심히 먹는 그의 애로사항을 눈치 못 채고,
“아~ 어릴 때 먹던 농도에 비해 국물이 보이네, 더 진하게 끓일 걸 그랬다!”
했다.
생 매생이의 짙은 밀도는 목을 넘길 때 더욱 절절히 느껴진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목 구녕이 꽉 찰 정도로 차오르는 미끄러운 질감에 숨이 막혔겠다 생각하니, 자못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이 매생이 블록은 그에게도 권해보고 싶다. 매생이 초급자용이다. 앞 둔 행사에 해초를 사용해달라는 메뉴 요청이 있는데, 매생이를 써볼까, 괜찮을까를 놓고 스텝에게 맛 보여주고 결정할 생각이다. 우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