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하지 않은 AI도 문제라고요? Part.2
악하지 않은 AI도 문제라고요? Part.2
매트릭스(Matrix)의 전쟁도 다 전력 탓이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버린 영화 매트릭스(Matrix). 중심 줄거리는 발달된 기계가 인류를 사육하기 위해 만든 가상현실 프로그램인에서 탈출하기 위한 주인공들의 사투이다. 기계가 인간들을 사육하려는 목적은 인간들의 몸에서 발생되는 생체전기를 통해 자신들의 연료인 전력을 얻기 위함이다. 영화에서 모피어스는 주인공 네오에게 배터리를 보여주며 이 사실을 설명하기도 했다. 자의식을 갖게 된 고도의 기계들이 인류를 지배하는 악몽, 왠지 익숙하다. AI에 대한 우리의 공포와 유사하게 들린다. 그 악몽의 근원에 ‘전력'이 있다.
전기 먹는 하마, AI
AI의 전기 사용량은 엄청나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쓰이는 고성능 AI 반도체의 경우 일반 반도체에 비해 많은 전력이 소모된다고 알려져 있다. 엔비디아의 AI 반도체인 H100을 돌리기 위해선 일반 반도체의 4배에 이르는 700W 고출력이 필요하다. 개별 반도체 하나하나도 더 많은 전력이 소모되는데, 한 AI모델을 훈련시키는 데 수만 개가 필요하다고 추정된다. 미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GPT-3와 같은 초거대 AI 모델을 훈련하는 데에는 1287 MWh에 이르는 전력량이 필요하다. 넷플릭스를 185년 6개월(162만 5000시간) 동안 시청하는 데 필요한 전력량과 맞먹는다고 한다. 수많은 테크 기업들이 AI모델 개발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그 경쟁의 이면에는 엄청난 전력소모 경쟁이 자리하고 있다.
학습만이 아니다. AI는 사용 시에도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한다. 챗GPT 같은 생성형 AI를 통해 검색을 할 때 일반 구글 검색보다 3∼30배나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카네기멜론 대학교 연구진의 연구에 따르면 AI를 통해 이미지 하나를 생성하는 데 필요한 전력으로 스마트폰을 완전히 충전할 수 있다고 한다.
AI 학습 및 구동을 위한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쉼 없이 가동되며 막대한 전력을 소비한다. 데이터센터는 서버, 네트워크, 스토리지 등 AI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장비를 한 곳에 모은 시설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간한 ‘2024년 전기에너지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AI 데이터센터에서 사용 전력량은 약 460 TWh로 추정된다. 전 세계 전력 사용량의 약 2%에 육박한다. 한국의 경우 2021년 전국 데이터센터 142개의 전력 사용량이 4006 GWh로 서울 강남구(4625 GWh) 전력 사용량에 이른다고 추정된다. 이런 엄청난 양의 전력 소모 때문에 데이터센터의 탄소발자국은 항공업계를 이미 넘어섰다.
물도 먹는 하마
물 또한 문제다. 데이터센터를 냉각하기 위한 담수 소비도 급증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가동 시에 보통 섭씨 30도가 넘는 열이 발생한다. 데이터센터 서버는 온도와 습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과열로 부품을 망가뜨리지 않으려면 20-25도로 낮춰야 한다. AI 열풍이 불기 이전엔 환풍기와 에어컨을 이용한 ‘공랭식’ 냉각이 일반적이었다. 기온이 낮은 북유럽 국가에 데이터센터 건설 수요가 많은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공랭식 냉각의 효율성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에 컴퓨팅 장치 주변에 배관을 두고 냉각수를 흘려보내 열을 빼앗고, 뜨거워진 냉각수를 열교환기를 통해 다시 식히는 수랭식 냉각이 부상했다. 전력 사용도 공랭식보다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수랭식 냉각에 필요한 물 사용량은 상당하다. 한 연구에 따르면 ChatGPT는 20-50개 사이 문답으로 구성되는 대화 한 번에 약 500ml의 물을 소모한다. GPT3를 훈련시키는 데 185,000 갤런 (70만 리터)의 물이 소모되었다고 추정된다. 구글의 냉각수 소비량은 2021년에서 2022년 사이 20%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동기간 34% 증가했다. 상향 추세는 지속 예상된다. 전 세계의 인공지능 서비스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2027년까지 매 해 영국 취수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의 물이 필요하다고 한다.
문제는 부식이나 박테리아 번식 우려 때문에 깨끗한 담수만 냉각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깨끗한 물은 희소한 자원이다. 음용수와 생활용수로 쓰일 만한 수자원을 소모한다. AI경쟁에서 우위 선점에 목이 타는 기업들이 목마른 사람들에게 필요한 수자원에 손을 뻗치고 있다. 우루과이, 칠레를 비롯한 일부 남미 지역에서는 이에 대한 우려로 데이터센터 건설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대중들은 ‘데이터 식민주의'를 염려했다. 정부들이 경제적 이유로 빅테크 기업들에게 수문을 열어주면서 일반 시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수자원을 고갈시킨다는 비판이 일었다.
오염물질도 뿜는다?
기후변화와 직접 연관성은 없지만 데이터센터에서 발생되는 각종 오염물질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산화탄소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데이터센터에서 나오는 오존, 질소산화물, 미세먼지 등이 폐질환이나 심장질환 등 질병을 유발할 수 있다는 염려도 있다. 한국에서는 네이버가 용인에 데이터센터를 세우려다 ‘전자파'를 염려하는 주민들의 반대로 좌초된 적이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전자파 우려는 적다고 이야기하지만, 데이터센터로 인한 환경적 피해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증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편익은 사유화, 부작용은 사회화
AI라는 기술 자체가 초래하는 환경적 부작용에 대해 알아보았다. 탄소배출 저감, 에너지 효율화 등 많은 노력이 있지만 여전히 기업들이 AI기술 개발과 사용으로 초래되는 환경적 영향에 대해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 않다는 우려가 많다. AI기술이 기후 변화나 오염물질 저감을 위한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며 환경보호 면에서도 AI에 대한 장밋빛 기대가 제기되고 있기도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의 편익에 비해 지금 당장 초래되고 있는 환경적 영향은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술적 낙관론 대신 날카로운 감시와 견제의 시각이 필요하다. AI 기술개발의 편익은 일부 선진 기업에게 사유화될 것이지만 부정적인 환경적 영향은 사회화될 것이라는 말에 깊은 공감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