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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르삭 Jul 28. 2024

트럼프는 미국의 AI 규제를 어떻게 바꿔놓게 될까

MAIGA? (Make AI Great Again)?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이 치러진다. 올해 글로벌 정치 이벤트 중 가장 중요한 날로 손꼽힐 듯하다. 미국 대선은 전 세계 산업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AI 분야도 마찬가지다. 2014년 7월 현재 공화당 트럼프의 당선 확률이 높아 보인다. 민주당 바이든은 대선 107일을 앞두고 마침내 후보사퇴를 천명했다. 대체자 선정 및 선거 전략 전면 수정이 필요해 트럼프를 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가 현실이 될지는 여전히 지켜봐야겠지만, 확실한 것은 트럼프가 집권하게 되면 바이든 정부의 AI 정책을 뒤흔들어 놓을 것이라는 점이다.



ABB (Anything but Biden), 바이든표 정책만 아니면 돼


과거 2000 선거에서 이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내건 정책은 명료했다. 'ABC', 'Anything But Clinton' 머리글자다. 전임  클린턴 대통령의 정책과 모두 반대로 하자는 것이다. 트럼프의 경우 ‘ABB’ (Anything But Biden) 펼쳐질 것이라 전망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트럼프는 대선에서 승리하면 취임 첫날  바이든 행정부의 AI 관련 행정명령뿐 아니라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친환경 정책을 백지화하겠다고 예고했다. 트럼프의 대선공약집인 “2024 GOP Platform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는 아예  바이든의 ‘위험한' 행정명령을 폐기하겠다고 명시를 해두었다. 급진 좌파의 이념을 AI 기술 개발에 강요하고 AI 혁신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바이든 행정명령 폐기를 천명한 트럼프 대선 공약집



과연 바이든의 AI 정책이 그렇게나 위험했을까


트럼프 진영의 엄포만을 놓고 보면 바이든 정부가 AI 기술을 억압하고 참 못살게 굴었나 싶을지도 모르지만, 전편에서 다룬 EU의 AI 규제에 비하면 상당히 유한 편이다. EU는 강제력이 있는 법이 EU의 모든 회원국에 적용되는 반면, 미국의 경우 연방 차원의 규제법이 없다. 연방주의 전통에 따라 주별로 규제의 유형이나 강도 면에서 재량을 허용하는 편이다. 정부 내 각 기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EU AI 규제법이 모든 회원국 모든 부처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원칙을 천명한 반면, 미국은 각기 다른 규제 기관들이 각 섹터별로 AI의 적용 양태를 고려하여 규제하도록 맡기고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규제 면에서 시장 중심, 분권화된 규제, 혁신 우선, 자율규제, 사후규제 특징을 지닌다. AI규제 역시 이러한 전통을 따라가는 듯 보인다.


문제는 각 주, 각 기관 별로 AI 규제 역량이 다르고 많은 경우 기술적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렇게 분산된 접근으로는 효과적으로 AI를 규제하기 어렵다고 보는 시각들이 있다. EU처럼 강제력이 있는 근거법도 없으니 (비빌 언덕이 없으니) 각 기관의 규제는 EU에 비해 한층 어려워 보인다. 또한 EU가 AI 문제에 대해 기업에 더 많은 투명성을 요구하여 시민 및 정부의 감시를 통해 부작용을 통제하고자 하는 반면, 미국은 AI연구에 투자를 올려 부작용을 막는 ‘기술’을 발전시키려는 기술적 접근 태도를 보인다. 미국의 규제가 지나치게 기업친화적, 기술친화적이며 더 강력한 AI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들이 나오는 이유다.



규제 날개를 꺾으려는 트럼프

AI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바이든


사실 미국 내 AI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되는 징후들은 있다. 지난 5년간 미국의 AI 관련 규제는 2016년 1개에 불과했던 AI 규제가 2023년 25개로, 총개수는 56.3% 증가했다는 추산이 있다. 작년 2023년 7월 바이든 정부는 AI 안전 서약을 발표하게 하며 기업 주도의 자율 규제에 무게를 싣다, 올해 10월에는 본격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최초의 AI 관련 행정명령으로 국가 안보, 건강, 안전을 위협하는 AI 기술 개발과 이용을 규제하는 게 핵심이며, AI 개발 기업의 안전성 평가 의무화, AI 안전성 표준 마련, 콘텐츠 인증표준 수립, 개인 정보 보호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격적으로 연방기관들의 범정부 차원의 AI 규제 프레임 마련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주 차원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선도 AI기업들이 위치한 실리콘 밸리가 있는 캘리포이나 주에서는 지난 2월 AI 제품을 출시하기 전에 안전 테스트를 의무화하고, AI 개발자가 다른 사람이 심각한 해를 끼치는 데 사용되는 파생 모델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발의했다. 트럼프 진영은 이렇게 이제 막 날개를 펴기 시작하는 AI규제들을 혁신을 저해하는 타도 대상이라고 보고 칼을 휘두를 작정인 듯하다.





트럼프의 원대한 계획, AI 맨해튼 프로젝트


워싱턴포스트는 트럼프 진영에서 광범위한 트럼프표 AI 행정명령 초안을 마련 중이라고 보도했다. 이 원대한 계획을 담은 문서에 한 섹션은 “미국을 AI에서 최우선이 되게 만들자 (Make America First in AI)”라는 제목으로 이뤄져 있다고 한다. ‘트럼프 싱크탱크’로 통하는 미국우선주의정책연구소(America First Policy Institute)와 전 트럼프 정권 인사 일부가 이런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고 알려졌다. 미국이 AI 분야에서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술 혁신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 바이든의 무거운 규제들을 철회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AI 자체의 위협이나 부작용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는 것보다 미국이 적보다 더 나은 AI를 보유해야 한다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소련 진영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시행했던 맨해튼 프로젝트를 차용한 것을 보면 그 의도가 더 뚜렷하다.



AI로 뻗어가는 트럼프장벽




트럼프가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경쟁 대상은 단연 중국이다. 트럼프는 최근 페이팔 마피아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삭스가 호스트로 활동 중인 All-in Podcast에 출연해 “실리콘밸리 ‘천재’들에게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 AI 개발에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들었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비록 트럼프 선거캠프에서는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지만() 이미 트럼프 진영의 재집권 프로젝트라고 알려진 헤리티지재단의 ‘프로젝트 2025(Project 2025)′의 AI 정책 중국의 기술 접근을 차단하고 AI 연구 개발을 촉진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여담이지만 현재 부통령으로 지목된 반스(JD Vance)가 프로젝트 2025 책자에 서문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파장이 일고 있다. 부통령의 뇌리에 박힌 정책들이니만큼 향후 트럼프 정권 정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 반추해 볼 수 있다.) AI 기술에 대해 장벽을 둘러 중국의 AI 기술 발전을 억제하려는 것이다. 테크 업계도 중국의 위협을 핑계 삼아 윤리나 안전 문제 해결보다 기술 발전에 비중울 두려는 트럼프 진영의 움직임을 반기고 있는 듯하다.


다만, 대중국 견제는 새로운 게 아니라 바이든 정부 때부터 지속되고 있다는 점은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미 군사적 사용 가능성을 근거로 AI, 반도체, 양자컴퓨터 3개 분야 중국 기업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였고, 최근 저사양 AI 첨단 반도체에 대한 중국 수출 금지 조항과 수출 제재 우회 통제를 추가했다. 의회에서도 중국 AI 기업 견제를 위하여 상원・하원의 빅테크 반독점 주요 법안들을 대부분 폐기하였고, 정책 방향을 자국 빅테크 규제에서 육성・보호로 선회했다는 평가가 있다.



수인의 딜레마 개념도와 수인들 간 싸움을 그린 일러스트



패권에서 무정부상태로, AI에서 재현되는 국제규범의 와해 현상


EU가 AI 규제법을 통해 무분별한 AI 경쟁에 스탑 사인을 꽂으려는 반면, 트럼프가 집권할 경우 미국은 AI 군비경쟁을 가속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모두가 협력하면 AI가 인류에게 더 안전하게 개발/이용될 수 있도록 할 수 있지도 모르나, 타국보다 먼저 기술적 우위를 점하는 배신의 이득이 더 크고 이 이기적인 행동을 억제할 장치가 없기 때문에 결국 모두가 AI난개발에 뛰어드는 수인의 딜레마 상황이 예상된다. 과거 미국은 패권국으로서 국제 규범을 형성, 선도하고 유지하며 이 같은 수인의 딜레마를 해소하려는 지도력을 발휘할 의지가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고립주의 노선은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AI 분야에서도 미국에 이 같은 시혜적 패권국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이미 트럼프는 과거 미국산업 보호주의를 천명하며 국제 자유무역 규범을 상당히 훼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AI 관련 국제규범은 더더욱 확립에 난항을 겪을 듯하다.



AI의 오펜하이머 모먼트



시장에서 가장 앞서가는 미국 기업들이 고삐 풀린 듯 달려 나갈 여지가 크다. 다른 국가들은 기술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더욱 안전을 소홀히 하게 될 유인이 크다. 안 그래도 근본적으로 개별 국가를 통제할 상위 정치체의 부재로 질서를 부과하기 어려운 국제정치의 무정부상태(anarchy)에서, 국가 경쟁력과 안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이 AI기술 분야에서 각자도생을 향한 난전이 예상된다. 핵무기가 처음 개발될 때에도 대규모 살상력과 국제안보에 대한 영향으로 인해 많은 논란이 있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핵무기 개발에 앞서면서도 개발 과정과 이후 사용에 대해 윤리적 고뇌에 휩싸이는 주인공의 모습,  국내외 정치적 동학을 잘 그려낸다. 냉전 때에도 국가 간의 승패 문제는 기술적 안전과 전 인류에 대한 잠재적 영향 문제를 압도했다. 우리는 같은 선택을 반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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