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블라디보스톡 & 하바롭스크 여행기 3편
극동 러시아 여행 3일차
밤새도록 철커덕 철커덕 하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을 이루었다. 정확히 말하면 눈만 감고 잠을 청하려 노력했다는 표현이 맞을것이다. 위아래로 거칠게 출렁이는 침대칸은 깊은잠을 방해했다. 그러다 살며시 잠이 들었다 싶다가 기차가 외딴역에 잠시 정차하면 그 고요함이 낯설어 잠이 깨고 그런 시간들이 계속 반복되었다.
그러다 잠이 들겠지 싶은 생각이 무의식으로 흐를때 즈음 어둠속에 익숙했던 눈이 빛에 반응해 잠이 깼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창밖을 바라봤고 순간 아프리카의 사바나 평원을 여행하고 있는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바라보자 감동이 밀려왔다. 지난해 미국을 여행하면서 그토록 광활한 대지를 부러운 마음으로 바라봤기에 우리나라와 가까운곳에 이러한 광할한 대지가 있다는것이 놀라왔다. 그리고 오래전에 이땅이 우리의 땅이었다는 사실이 아쉽게 다가왔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 탑승을 결심한 후 인터넷 블로그를 뒤져 내가 탑승하게 될 구간까지의 여행기와 동영상을 살펴보니 황량한 벌판이 지평선 끝까지 이어지는 지루한 풍경의 반복이라고 해서 큰 기대를 접었기에 몇시간을 그런 초원지대를 지나다 가끔씩 나무 몇그루가 모여있는 자그만 숲만 만나도 반갑고 좋았다.
그러나 하바롭스크가 가까와 지면서 시베리아 벌판의 풍경은 갑작스레 변하기 시작했다. 하얀 줄기를 드러낸 자작나무들이 자주 보이기 시작하더니 기차는 자작나무가 빼곡히 들어찬 숲을 몇시간 동안 달리기 시작했다.
시베리아 벌판이 아닌 시베리아 자작나무 숲을 관통하고 있었다.
몇해전 홋카이도를 여행하면서 수킬로 이어지는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감탄사를 연발했는데 시베리아의 자작나무 숲의 규모는 차원이 달랐다
지평선만을 바라보다가 기차여행을 마칠줄 알았기에 예상밖의 풍경을 마주하며 차창밖을 바라보는 시간은 결코 지루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가 타고 가는 구간이 초원지대와 자작나무 숲을 관통하는구나 생각하는 순간 구릉이 보이면서 멀리 높은 산이 펼쳐지고 이윽고 우리나라의 산악지대를 지나는듯한 풍광이 펼쳐졌다.
벌판을 지날때는 차창밖이 갈색 잿빛 이었는데 산악지대에 접어들자 차창밖은 알록달록 단풍의 물결이다. 우리나라로 부터 2천여 킬로 북쪽에 위치한 지역이니 계절적으로 한달은 빠른 만추의 모습이다.
별것 아닌 풍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것 같은 객실 러시아 여행객에게 눈치가 느껴져 객실에서 빠져나와 식당칸으로 자리를 옮겼다. 식당칸은 전체를 전세를 낸것처럼 다른 손님은 보이지 않아 철커덕 거리는 효과음만 있을뿐 이었다.
한쪽 창으로만 풍경을 감상하다가 좌우가 확 뚫린 식당칸 차창으로 단풍으로 물들여진 장쾌한 시베리아 숲 풍경을 바라보니 가슴이 팍 트였다.
아내는 문학소녀가 되어 집에서 가져온 소설책 빨간머리 앤을 펼쳐들고 책속으로 빠져들다가 차창밖 아름다운 풍광에 빠져들다가를 반복하며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즐기고 있었다.
이른 새벽에 일어났는데도 시베리아의 벌판과 숲을 즐기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흘러가 1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목적지인 하바롭스크 까지 2시간이 채 남지 않아 곧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이별을 고해야 한다는 아쉬운 마음이 밀려오는 순간 차창밖으로 철길을 따라 흐르는 강줄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척박하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으로만 생각했는데 강변을 따라 단풍나무 잎들이 물들어가는 아름다운 강까지 만나니 나도 모르게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이토록 아름다운곳을 그동안 나는 왜 몰랐을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과 지금이나마 이런 아름다운 곳을 두눈으로 확인하게 되었다는 감사의 마음이 교차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우리의 완행열차 비둘기처럼 느긋하게 조그만 마을이 있는 역이라도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 쉬었다 갔다를 반복했다. 조금 더 큰 마을역이다 싶으면 그 호흡이 길어졌다.
간간히 작은 집들만 스쳐 지나가다가 아파트들이 차창밖으로 보이는것을 보니 목적지 하바롭스크에 가까이 왔다는 증거다.
이렇게 우리 부부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첫 탑승도 마무리 되어갔다.